• 중앙일보 14일자 오피니언면에 김경민 한양대 정외과 교수가 쓴 시론 '전쟁 억지력은 없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남북한 군사력을 비교해 보면 한국이 우세하다 할 분야가 있다. F-16 전투기나 들여오기 시작한 F-15 전투기는 미국의 첨단 전투기들이기 때문에 북한의 구식 전투기들이 대항하기 어렵다. 수상 함정 분야도 우세하다. 새로이 건조된 3000t급이 넘는 구축함과 앞으로 들여올 세 척의 이지스함은 척당 1조원 안팎의 돈값이 말해주듯 한국이 분명 우세하다.

    그러나 세밀히 들여다보면 한국은 북한을 대적할 전쟁 억지력이 없다. 한국이 북한으로부터 치명적으로 느끼는 위협 가운데 으뜸은 대량살상무기에의 공포다. 핵무기를 개발했다고는 하나 미사일에 올릴 만큼 소형화에 성공했는지는 미지수라 하더라도 6자회담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세월을 벌고 있다. 북한이 미사일 탑재를 완료하면 한국은 즉각 핵무기 위협하에 놓이게 된다. 미국이라는 동맹 파트너가 없으면 그때는 속수무책으로 북한이 하자는 대로 휘둘리게 될 것이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으로 15만 명, 나가사키 7만5000명이란 희생자가 남의 나라 숫자 놀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생화학무기로부터의 위협인데 북한은 2500t에서 5000t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정도 양을 그들 뜻대로 간섭받지 않고 사용할 수 있게 되면 한국의 인구는 문자 그대로 절멸한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신경가스탄은 투하되면 그 지역의 모든 생명체를 죽이게 돼 서울에 떨어질 경우 수백만 명의 목숨이 일거에 사라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량살상무기에는 대량살상무기로 대응한다는 전략 원칙이 있기에 대량살상무기 보유국들이 서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대량살상무기가 없다. 부득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전쟁 억지력에 협력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보다 훨씬 우세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이 신방위계획 대강에 '중국 위협론'을 거론하며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일본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리하는 것이다. 눈치 빠른 일본이 중국의 급부상에 미리 손을 쓰는 안전보장책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전자전 능력이다. 아군의 전투기가 적지를 공략하기 위해 침투하려면 상대방의 미사일 공격에 격추되지 않기 위해 전자교란용 항공기가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휴대용 전자방해장치 이외에는 대비책이 없다. 일본에도 없는 전자전 장비를 미국이 한국에 넘겨줄지는 의문이다. 이 밖에도 선군정치로 상징되는 북한의 군사력은 서울 이남까지 날아오는 700여 문의 장사정포로 인구 1200만 명의 서울을 위협하고 있고, 여기에 대한 대비도 독자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한국 깊숙이 침투하여 송전선 절단 등 특수작전을 감행할 수 있는 10만 명 규모의 특수작전부대원, 30년이나 앞선 잠수함 전력은 한국이 혼자 감당하기에 국력 소모가 너무 크다.

    동맹관계가 약해지면 될 일도 어긋나는 법이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는 미국이 한국에서 별로 할 일을 없게 만들고 결국 "나가라"는 분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미군이 계속 주둔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지만 미국 의회와 국민은 그들의 자식들이 눈치 보며 주둔하도록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준비 없는 전작권 환수는 미국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하고, 이것이 미군 철수로 이어질 때 한국이 감당할 전쟁 억지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현행의 전작권은 국가 자존심을 구기는 문제가 아니고 실사구시의 실용적 선택이다. 진정으로 주권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면 미국을 붙들고 있어도 자존심 상할 일이 아니다. 전작권 환수는 누구보다 북한이 소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