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9일자 오피니언면 '중앙시평'란에 칼럼니스트 변상근씨가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정부의 '민족외교'에 안팎으로 빨간 불이 켜졌다. 유엔 안보리 결의로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북한 대 미국이 아닌, '북한 대 국제사회'의 구도로 바뀌면서 '민족끼리 공조'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앞으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에 연동해 매번 행동을 같이하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국제사회의 흐름을 거역하며 북한을 마냥 감싸고 나설 수도 없는 심각한 딜레마에 봉착한 것이다.

    사실 안보리 대북 결의는 비록 '물타기'는 했어도 그 강도는 의외로 강하다. 북한에 대해 6자회담으로 들어가는 길만 열어놓았을 뿐 그 밖의 어떤 도전적 행위도 제재가 따르도록 다자틀에 의한 '그물망'을 촘촘히 씌워 놓고 있다. 한국의 중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고, 북.미 대화나 금융제재 완화 같은 전제조건도 더 이상 들먹일 상황이 아니다. 핵.미사일 문제와 별개로 남북 간 경제협력사업이 지속된다 해도 그 투명성에 대한 국제적 주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안보리 결의에 이어 G8 정상들의 대북 촉구 성명 등 국제사회의 단호한 대처로 북한은 벼랑 끝으로 몰렸고, 막판까지 설득에 안간힘을 쓴 중국 또한 체면을 크게 구겼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속으로 가장 멍든 쪽은 한국의 노무현 정부다. '북한 미사일 발사는 어느 누구도 겨냥한 것이 아니며 안보상의 비상사태가 아닌 정치적 사건'이라는 청와대 쪽 강변은 두고두고 국제사회의 웃음거리다. 미사일을 발사한 북한보다 그에 대한 일본의 과민 반응을 질타하고 문제 삼은 어처구니없는 본말 전도에 노 대통령과 외교안보팀은 국민의 신뢰는 물론 대외적인 신뢰까지 함께 잃었다.

    노 정부의 '민족외교'는 누구로부터도 환영 못 받는 '따돌림 외교'로 귀착되고 있다. 북한 미사일의 최대 당사자는 한국인데도 미국과 일본은 대북 결의안 입안 과정에서 이렇다 할 사전 협의도 없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저들끼리 수정결의안을 만들어 놓고 우리 정부에 지지해 달라는 사후 통보가 고작이었다. 북한은 핵.미사일은 미국과의 문제라며 우리 쪽과는 경협 문제만 논의하자고 고집한다. 미.일도, 중.러도, 우리가 껴안으려는 북한마저도 우리 편이 아닌 것이다.

    민족공조의 햇볕정책은 북한을 변화시키기보다 남한의 안보의식과 국가정체성을 뒤흔들어 남남갈등을 조장한 측면이 더 크다. 마치 남한 인민의 적화가 다된 것처럼 북한이 갈수록 오만하고 기고만장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은 남북 해외 7000만 겨레와 민족의식을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점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한 민족 두 국가 간 공조는 민족의식이나 민족정서가 아닌 국가 대 국가 간 게임 룰이 바탕을 이뤄야 한다. 동족 간 감성적 접근은 실체가 아닌 맹목에 가깝다. 민족은 있되 나라 없는 설움을 겪어 민족이란 말에 유난히 약해진 사회일수록 감성적이고 정치에 악용될 위험성이 높다.

    분단 시절 동.서독은 일정한 규칙 아래 자유롭게 드나들고 경제 교류의 폭을 넓혀나가다 어느 날 갑자기 '통일에 기습'당했었다. 중요한 것은 이 규칙이다. 서독의 동방정책은 통일을 겨냥하지 않은 평화정책이었다. 또 동독은 예측 가능하고 국제조약을 이행하는 정상국가였다. 서독은 동독의 국가예산에 자금을 공식 지원하고 동독은 정치적으로 양보하는 주고받기로 긴장완화와 협력을 이뤄냈다.

    이에 반해 북한은 파산 상태에다 외교적으로 고립돼 있고 국제조약을 위반하는 예측 불능의 국가다. 규칙에 따른 국가 대 국가 간 외교가 어려운 상대를 민족공조로 보듬는 과정에서 노무현 외교의 갖은 난센스와 무리가 빚어진다. 민족이라는 배타적 단일성보다 다민족.다언어.다종교의 열린 다양성이 조화될 때 국가의 활력이 극대화되는 글로벌 시대다. 민족보다는 인류로 접근하고 인권을 중시할 때 외교의 품격도, 나라의 격도 높아진다. 민족공조가 더 이상 우리 삶의 바탕인 대한민국을 흔들고, 대한민국 외교를 국제적 웃음거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한민족보다는 국가, 대한민국이 먼저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