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3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대중 고문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정치의 계절이 왔습니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향한 한판 승부가 벌써부터 시동(始動)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정치의 계절, 승부의 계절은 비판신문에는 커다란 시련의 계절입니다. 권력은 비판을 싫어하는데 신문은 비판을 생명으로 하기 때문에 충돌은 어차피 불가피하겠습니다마는 권력은 때로 비판을 싫어하다 못해 비판을 목 조르고 부수는 것도 서슴지 않는 속성을 지닌 것 같습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오는 9월쯤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특정 신문을 거명하지는 않았습니다마는 정상적 세무조사라면 그런 소리가 국세청에서 나와야지 청와대에서 나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두고보면 곧 알겠지만 목표는 비판신문일 것입니다. 이주성 국세청장의 느닷없는 사퇴는 언론사에 대한 2차 세무조사와 관련해 청와대-당-국세청 간의 견해차이에서 빚어졌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29일 새 신문법에 대해 일부 조항을 헌법불합치로 포장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승인해준 것이나 마찬가지인 선고를 했습니다. 특히 언론사의 고의나 과실이 없어도 정정보도를 청구할 수 있게 한 조항을 합헌이라고 한 선고는 기자들을 크게 위축시킬 것입니다. 같은 날, 5년 전 조선일보에 대한 초강력 세무조사의 결과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이 있었습니다.

    5·31지방선거에서 선거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참패한 집권세력은 그 패인을 여러 가지로 분석했을 것입니다. 각종 여론조사도 참고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갸우뚱했을 것입니다. 적어도 홍보차원에서는 자기들의 매체 장악력을 믿었는데 조선·동아 두 신문의 ‘비판’이 그렇게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에 침통해했다는 얘기도 들렸습니다. 그렇다면 권력의 진퇴를 넘어 사활이 걸린 내년의 대선에서 비판신문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판신문을 최대한 불편하게 하고 무엇을 못하게 하는 쪽으로 가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조선일보는 5년 전 유례가 드물 정도의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았습니다. 당시 6·15선언 이후 북한 김정일의 답방을 놓고 비판적 기사를 실은 조선일보에 40여명의 국세청 직원이 들이닥쳐 142일에 걸친 세무조사를 벌였습니다. 잘못된 관행과 세법의 편의적 해석에 기대온 조선일보는 ‘탈세’의 철퇴를 맞았고 발행인이 석 달간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습니다. 신문사의 간부와 주요 필진은 가족까지 계좌추적당하는 엄청난 고통을 겪었습니다. 재정적으로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 세무조사에 따른 대법원의 판결이 헌재의 신문법 선고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이루어졌다는 것이 왠지 마음에 걸립니다. 조선일보는 그날 또 한 번 ‘탈세 신문’으로 언론의 각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대법원 판결과 헌재의 신문법 판결에 따라 조선일보의 발행인이 바뀌었습니다. 게다가 먼저번 세무조사에 대한 최종 판결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어쩌면 또 다른 세무조사를 맞을지도 모르는 사태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신문의 생명은 누가 뭐래도 비판입니다. 권력이 잘한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잘못한 것을 비판하더라도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겠습니다마는 신문은 잘한 것에 대한 ‘칭찬’보다는 비판의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 본업이라고 배웠습니다. 과거 비판의 날을 세우지 못한 것을 비판하고 나무라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러니까 너희는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논리나 ‘지금도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접근법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권력이 자기들을 비판한다고 해서, 그 때문에 권력에 금이 가는 것을 막으려고 비판 신문을 흔들고 옥죄고 겁주는 경우입니다. 비판신문은 과거와 다르게 나가려고 하는데 권력은 과거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조선일보의 필진에 대한 유형무형의 폭력적 또는 작위적 겁주기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권력에 의한 것이 아니겠지만 전화폭력, 인터넷 폭력 등이 간간이 등장하더니 지난 시절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한 일들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들판에 우리 혼자 서 있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 요즘입니다. 정치의 계절, 아니 정치투쟁의 계절에 비판신문은 시련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김대중 ·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