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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3일자 오피니언면에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상임대표인 조전혁 인천대 교수가 쓴 시론 '김진표식 교육정책의 종착역'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1998년 정부 보고서 첫 장에서 “교육은 우리가 준비하는 최고의 경제정책이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교육열에서라면 세계 최고인 우리 국민들에게 블레어 총리의 이 선언은 오히려 더욱 절실하다. 경제관료 출신인 김진표씨가 교육부총리로 기용될 때 많은 국민들이 다소의 기대를 걸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취임 후 김 부총리의 행보는 실망을 넘어 배신감까지 느끼게 한다. 김 부총리는 평소 자립형사립고 확대를 입버릇처럼 주장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당이 벌인 ‘교육양극화 정치 쇼’의 선봉장을 자처했다. 소신을 버리고 자립형사립고를 늘리지 않겠다고 공표한 것이다. 생뚱맞게도 이번에는 외고지원자격 제한 조치까지 발표했다. 김 부총리의 딸이 서울 D외고를 졸업하고 모 대학 경영학과에 진학했고 현재 하버드대에 재학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아버지 김진표’와 ‘교육부총리 김진표’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부모의 입장에서 좋은 교육은 공직자의 입장에서도 좋은 교육이다. 오늘날 교육이 국민의 최대 불행요인이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좋은 것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 때문이다. 김 부총리도 “교육계에 와 보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규제가 많더라”며 혀를 내두르지 않았나.
지난 달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1분기 가계수지 통계에 따르면 가계소비지출 중 교육비 비중이 사상최고를 기록했다. 증가율 또한 사상최고다. 이 기간 중 월평균 소비지출은 지난해에 비해 3.9% 증가했지만 교육비는 9.9% 증가했고, 학원·과외 등 사교육비 지출은 15.9%나 늘어났다. “아이들 교육비 대느라 등골이 휜다”는 국민의 원성이 빈말이 아닌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교육비 지출이 전체적으로 크게 늘고 있는 가운데 계층별 사교육비 지출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소득 상위계층의 교육비 지출은 하위계층의 6.3배(작년 1분기)에서 10배(올 1분기)로 늘었다.
사교육이 이렇게 기승을 부리는 것은 학교가 좋은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부유하든 가난하든 모두 사교육에 기댄다. 좋은 것을 찾아 ‘스스로의 교육개혁’을 하는 것이다. 자사고 확대금지, 외고지원자격 제한으로 학교교육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영어과외, 조기유학은 더 기승을 부리고, 더 늘어날 것이다. 기러기 아빠, 가정파괴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원칙적으로 좋은 것은 마음껏 추구하게 해야 한다. 좋은 것을 금지한다면 어떠한 정책도 실패한다.
현재 진행되는 교육문제의 근원은 학생·학부모의 교육수요는 21세기 지식정보시대에 가 있는데, 학교의 교육공급은 아직 20세기 산업화 시대에 머물러 있는, 이른바 ‘시대지체(時代遲滯)’에 있다. 지식정보시대의 키워드는 다양성과 창의성이다. 외고, 특목고, 자사고를 만든 것도 바로 이런 이유 아니었던가. 평준화를 고수하려 규제와 개입을 강화하는 한 시대지체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교육과정, 교과서, 교육시설, 학생선발 등 모든 면에서 국가가 개입·간섭하는 국가독점 평준화 교육의 부작용은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전가된다. 서민들은 부유층에 비해 규제를 피할 수단이 적다. 규제가 클수록 가난한 집 ‘똘똘이’ 자녀가 부잣집 ‘띨띨이’ 자녀와의 경쟁에서 밀린다.
교육구조에 대한 근본철학부터 달라져야 한다. 좋은 것을 규제하지 말고 마음껏 추구하게 하라. 경제적 배경에 관계없이 모든 자녀들에게 중산층 자녀들이 누리는 다양한 사교육 이상의 교육을 학교가 제공하도록 하라. 가난한 집 ‘똘똘이’ 자녀들이 다양하고도 수월한 교육을 향유하고 성공의 기회를 보장받는 사회가 최고의 복지사회다. 교육은 ‘최고의 복지정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