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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기자 여러분!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국민이 답답할 때 믿을 수 있는 최후의 희망처(希望處)가 언론사 기자들이 아닌가요?
국민들이 숨 막힐 때 호흡하기 위해 찾게 되는 마지막 안식처(安息處)가 언론사 기자들이 아닐까요?
국민들이 죽기일보직전에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싶은 마지막 피신처(避身處)가 언론사 기자들이 아닐까요?
왜 이렇게 원로 언론인인 조갑제 선생께서 ‘한국의 기자들은 다 죽었는가?’ 라는 제하의 글을 꼭 써야만 되었을까요? 아니 왜 조갑제 선생께서 기자들을 향한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상황이 되었을까요?
국민의 일원인 저는 오늘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습니다.
저는 자유를 사랑합니다.
저는 자유를 속박하는 그 어떠한 권력에도 목숨을 바쳐 항거하고 싶습니다.
자유가 없는 대한민국이라면 무엇 때문에 발버둥 치며, 땀 흘리며, 고민하며 살아야 합니까?
자유를 얻기 위하여 기나긴 투쟁의 여정을 살아온 것이 인류역사가 아니었던가요?
기자들께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주어야 할 위대한 사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대한민국 기자들은 그토록 자유로움 속에서 대한민국을 향유(享有)하며 자유롭게 호흡하고 계시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국민의 답답함을 풀어주지 않습니까?
국민들이 알아야 할 진실과 정의의 사실에 대하여 왜 침묵하고 계십니까?
오늘 조갑제 선생의 글을 읽고 충격 속에 사로잡힌 것은 비록 저만은 아닐 것입니다.
조갑제 선생은 “국민행동본부의 오늘자(2006년 6월 8일자 조선일보) 광고특종을 읽고도 부끄러움이 없는 기자는 기자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자질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6월 8일자 조선일보에 난 경천동지할 특종 광고를 보고서도 침묵하고 있는 대한민국 기자들에 대한 언론인 조갑제 선생의 답답한 흉금을 글로서 표현한 기사가 현대판 게오르규 “25시”의 절규가 아니겠습니까?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 속에서 한 인간이 외칠 수 있는 한계의 무능함에 대한 자책과 조직 속에서 서있는 나의 박탈된 자유와 모든 불합리한 상황들로부터 오는 죽고 싶을 정도로 분노하고 싶은 그 무엇 - 지금 나는 분노해야 합니까? 아니 분노하고 있습니까?
어제 조선일보 30면에 실린 국민행동본부 광고를 일독하셨을 기자들께서는 그 광고로부터 “특종감”이라는 사실에 대한 호기심을 발견하지 못했습니까? 특종 기사 감을 아무리 알려주어도 다루어주지 않으니까, 국민의 성금으로 광고를 해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울분을 기자 여러분들께서는 행여 헤아리고 계십니까?
‘국가 보안법’이 엄존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에 가장 나쁜 해악을 끼쳐주는 자는 두말할 것도 없이 대한민국을 해체하고 있는 간첩(間諜)입니다.
재범(再犯)한 간첩을 사면으로 풀어주고, 또 조총련 간첩이 자유롭게 무상으로 대한민국을 출입할 수 있도록 대한민국 문이 활짝 열렸다는 사실이 특종감이 아니라면 무엇이 특종감이란 말입니까?
왜 이렇게 침묵해야 합니까?
대한민국 기자 여러분!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하여 침묵을 거두어 주시고 국민이 알아야 할 사실을 진실 되게 알 수 있도록 선처해 주십시오.
대한민국 기자 여러분!
국민들이 하소연하고, 답답함을 풀어놓을 수 있는 위로의 제단과 안식의 제단이 기자 여러분들의 뜨거운 가슴에 달려있습니다.
오늘 조갑제 선생의 글을 보면서 ‘위대한 한국 언론’의 모습을 새롭게 찾고 싶어 합니다.
새삼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한국 언론의 자유와 책임’에 대해서 깊은 시름으로 번민의 늪을 향하여 걸어갑니다.
<객원 칼럼니스트의 칼럼은 뉴데일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