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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5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백화종 편집인이 쓴 '뽑아놓고 금방 후회하는 까닭'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골프를 흔히 심리상태에 의해 좌우되는 멘털 스포츠라고 한다. 그래서 골퍼들 사이에 회자되는 블랙 유머가 있다. 상대방을 흔들려면 우선 R씨 얘기를, 그걸로 안 되면 L씨 얘기를 한다. 그래도 효과가 없으면 다른 R씨 얘기로 옮겨간단다. 이들은 여권의 핵심들이다. 이쯤 되면 열 중 아홉은 기분이 언짢아 골프가 제대로 안된다는 것.
지난번 지방선거에는 이처럼 여권 핵심들의 이름만 들어도 골프가 흔들리는 사람들이 주로 참여했던 모양이다. 집권당 최악의 참패를 기록했기에 말이다.
웃자는 얘기이고, 국민은 이번에 선거탄핵을 통해 현 정권의 국정 실패에 대한 책임을 여당에 물었다. 하지만 그 원초적 책임은 그들에게 정권을 위임한 우리들 국민에게 있다. 우리의 최근 투표 행태를 보면 이해가 한층 빨라진다.
우선,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 초반 지지율 5%를 밑돌던 노무현 후보는 무려 50%에 육박하는 득표율로 당선됐다. 물론 그 과정에 국민경선에 의한 후보 선출, 정몽준씨와의 후보 단일화, 이회창 후보의 아들들 병역시비 등이 있긴 했다. 그러나 국민경선과 후보 단일화 등은 흥행성 이벤트였을 뿐 후보의 인물 자체를 바꾸는 것은 아니었다. 또 병역시비는 그 전 선거에서 이미 거른 사안으로 이씨의 높은 지지율을 흔들 변수가 아니었다.
다음, 2004년 총선. 당시 분위기는 노 대통령의 “못해먹겠다. 재신임을 묻겠다”는 등 극단적 발언과 불안정한 국정 운영으로 집권 열린우리당의 존립 가능성 자체가 의문시될 정도였다. 그러나 선거는 야당들이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돼 여당이 과반 의석을 얻었다.
그리고, 그 후에 실시된 수십 군데의 재·보선에선 거꾸로 여당 후보들을 전원 낙선시켰다.
이번 지방선거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춤추는 여론에 따라 준비도 안했던 다크호스들이 후보로 나서고 그들의 지지율이 하늘과 땅을 오르내렸다. 박근혜 대표 피습 사건 후에는 대전시장 선거의 경우 배 이상 차이 나던 후보 간 지지율이 며칠 사이에 역전됐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지금은 열린우리당이 지탱하기 어려울 것처럼 보이나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국면이 바뀌지 말라는 법도 없다.
3김 시대가 끝나면서 유권자들의 특정인과 정당에 대한 충성도가 약해져 후보 예측이 어렵고, 지지율이 합당한 이유 없이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리는 게 우리 정치의 한 특색으로 자리잡았다.이는 물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고 무명인사가 자고나보니 스타가 돼 있더라는 시대적 배경과도 연관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국민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으로 장기간 일관성 있게 후보와 소속 정당을 평가하여 선택하기보다 그때그때 정치꾼들이 이벤트 등으로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감성에 휘둘린다는 측면이 강하다.
이처럼 감성적으로 투표를 하기 때문에 금방 후회한다. 또 정당과 정치인들은 ‘위아래 없이’ 국민을 얕잡아 보고 ‘싸가지 없이’ 독선적이고 극단적 행태를 보인 뒤 선거 때 바람몰이 등 기술과 흥행으로 유권자를 유인하기 위한 꼼수 궁리에 몰두한다.
이제 국민도 정치 수업료를 치를 만큼 치렀다. 싸가지 없는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농락당하지 말아야 한다. 빈 깡통 들고 대박을 노리면서 국정을 농단하려는 꾼들을 걸러냄으로써 삼류 정치를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누구보다도 차기 대통령을 향해 뛰는 지도자들이 이 일에 앞장서줘야 한다. 예정된 정계개편 과정에서 국민은 지도자 본인의 사람됨도 보겠지만 그 주변에 싸가지 없는 꾼들이 설쳐대진 않는가도 그에 못지않은 선택의 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국민이 국정 혼란이라는 비싼 수업료 내고 현 정권으로부터 얻은 학습효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