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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한국철도공사) 여승무원의 열린우리당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 선거사무실 무단 점거 농성 나흘째인 9일.
갈 길 바쁜 강 후보가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점거 농성 중인 선거사무실에서 5·31 지방선거를 치러야 할 판이다. 가뜩이나 낮은 당 지지율이 강 후보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어찌보면 이번 KTX 여승무원의 점거 농성 사태도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과 현 정부의 위기해결 능력부재가 강 후보에게 결국 부메랑이 돼 돌아온 모양새다.
강 후보캠프 관계자는 연신 “곤욕스럽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지난 6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강 후보 선거사무실을 점거, 현재까지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KTX 열차승무지부 손지혜(29) 상황실장은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는 더 이상 갈 곳도 없다”고 했다. 손 실장을 직접 만나봤다.수척한 모습의 손 실장은 “강 후보에게 감정이 있다거나 이번 선거를 망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문을 열면서 강 후보측에 연신 “죄송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사태가 오기까지에 대한 과정을 설명하면서 집권 여당인 열린당과 현 정부에 강한 불신을 내보였다. 신뢰를 저버린 열린당과 정부의 태도가 결국은 열린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사무실을 점거 농성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다는 설명이다.
손 실장은 “그간 열린당과 총리실을 굉장히 여러 차례 면담을 요구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정동영 의장 보좌관이 공식 면담 서류를 제출하면 만나게 해주겠다고 해서 공문까지 발송했는데 면담 일정도 안잡고 피했다. 우리의 문제가 사회 이슈화되는데도 정부 쪽에서 누구하나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아 답답했었다. 한국철도공사 이철 사장을 비롯해 감사까지 모두 열린당 출신이다. 집권여당인 열린당에 와서 얘기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디가서 얘기하라는 것이냐”면서 흥분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그럼 왜 열린당 당사가 아니라, 강 후보 선거사무실을 점거 농성장으로 택했느냐’는 질문에 손 실장은 “강 전 장관이 열린당 후보이자 유일한 여성후보다. 그가 사회 양극화 문제를 얘기하면서 여성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손 실장은 이어 “여기 오니까 그렇게 만나기 어려웠던 열린당 국회 환경노동위소속 의원들이 다 와서 우리 얘기를 듣고 적극적으로 정 의장에게 얘기해 주겠다고 하더라. 철도공사 노무팀에서도 와서 동태파악하고 예민하게 신경을 쓰더라. 가만히 있으면 누가 관심이라도 가져 주겠느냐”고 설명했다.
손 실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몽골 등 3개국 순방에 앞서 7일 수석·보좌관들과의 간담회에서 KTX 여승무원들의 점거 농성과 관련해 '선거기간을 이용해 집단적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벌이는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법질서 유지 차원에서 엄격히 대처토록 하라'고 지시한 데 대해서는 “기사를 보고 당황했었다”면서 “그러나 이 문제를 방치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점거 농성 강행 의지를 피력했다.
손 실장은 “선거대책본부장 김영춘 의원 등이 점거 농성 철회를 전제조건으로 정동영 의장과 강 후보와의 면담을 주선하겠다고 했다”면서 “우리가 이때까지 오는 과정에서 열린당이 신뢰를 주지못했는데 농성을 깬 다음에는 어떻게 면담이 성사될지 믿을 수 있겠느냐”면서 구체적인 문제 해결안 없이는 점거 농성 철회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강 후보가 KTX 여승무원의 문제에 대해 나서서 할 수 있는 것도 없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손 실장은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강 후보가 가서 정 의장과도 얘기해보고 정부쪽에다가도 얘기를 해 달라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면서 “이 자리에서 정규직안을 내놓으리라고는 생각도 안한다. 다만 오는 15일자로 해고가 되는데 정리해고를 철회한다든지, 교섭석상 자리라도 마련해 주는 등의 그런 정도는 보여줘야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손 실장은 마직막으로 ‘KTX 여승무원들의 철도공사 직속의 정규직’ 요구조건에 대한 강한 관철 의지을 내보이면서도 이번 사태가 강 후보의 서울시장 선거에 미칠 영향을 적잖이 우려했다. 손 실장은 연거푸 “너무 죄송하다. 선거에는 차질을 주고 싶지 않다. 보통 농성장에 가면 구호를 외친다던지 노래를 하는데, 보시다시피 우리는 아무것도 안하고 책을 보거나 십자수를 하고 있다. 조용히 있다”고 농성 방식도 설명했다.KTX 여승무원 42명은 지난 6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 있는 강 후보 선거사무소 회의실을 점거, 8일 오후 현재까지 점거 농성을 풀지 않고 있다. 이들은 ‘KTX 여승무원들의 철도공사 직속의 정규직’ 요구조건이 관철되지 않는 한 점거 농성을 계속한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열린당 관계자들은 철수를 전제조건으로 KTX 여승무원들의 의견을 당에 전달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강 후보 캠프 관계자는 “선거를 앞두고 강 후보가 이들과 만나서 얘기하는 과정에서 자칫 논란이 일 수 있다”면서 KTX 여승무원들과의 면담 자체에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보이기고 있다.
한편, 점거 농성 중인 KTX 여승무원들은 강 후보의 선거운동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10여평의 회의실에서 책을 보거나 십자수를 하며 ‘침묵의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화장실과 쓰레기 분리수거 등의 청소도 자체적으로 실시한다. 손 실장은 사진 촬영 요구에는 연거푸 손사레를 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