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누적 中 편향 외교의 후과美·日과 대비된 서툰 단교의 원죄中 양해에도 스스로 컵 비운 韓'비공식 관계' 틀에 갇힌 경직성文·尹 등 역대 정부 저자세 고착미봉책으론 반도체·안보 연대 요원李, '국익 중심 실용주의' 되새겨야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일 경북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과 전통 한복 목도리를 하고 단체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일 경북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과 전통 한복 목도리를 하고 단체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뉴시스
    1992년 대만과의 서툰 단교가 남긴 외교적 부채의 청구서가 34년 만에 '남한'이라는 명칭 보복으로 돌아오고 있다. 대만 정부가 한국 전자입국신고서의 '중국(대만)' 표기 시정을 요구하며 이달 31일까지 한국이 응하지 않으면 대만 전자입국등기표상 '한국' 표기를 '남한'으로 변경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25일 외교가에 따르면 미국·일본·유럽 주요국은 대만과 정식 외교 관계를 맺지 않았음에도 전자 비자·입국 시스템에서 대만을 '타이완' 단독 항목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법무부가 지난해 2월 전면 도입한 전자입국신고서에서 출발지·목적지 선택란의 대만 표기를 '중국(대만)'으로 설정하면서 대만은 스스로를 중국의 하위 범주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대만은 이미 지난 1일 대만 외국인 거류증 상의 '한국' 명칭을 '남한'으로 바꾼 데 이어 한국 측이 시정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대만 전자입국등기표상에도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리자오훙 대만 외교부 동아시아·태평양사(국) 사장(국장)이 전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한국 측이 기한(3월 31일) 내에 긍정적 답을 하지 않으면 대만 정부는 4월 1일 대만 전자 입국등기표 상 출생지·거주지 항목의 한국 영문 명칭을 (한국을 뜻하는) 'Korea, Republic of'에서 (남한을 뜻하는) 'KOREA(SOUTH)'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린자룽 대만 외교부장은 지난 22일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한국 측이 10여 년 전 대만에 '한성'을 '서울'로, '남한'을 '대한민국'으로 불러 달라고 요청해 모두 협력했는데 한국은 대만의 요구를 내버려두고 상관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외교부는 "정부는 한국·대만 간 '비공식 실질 협력'에 대한 기존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며 "이러한 입장 아래 제반 사안을 다뤄오고 있다"라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 ▲ 노태우 대통령이 1992년 8월 24일 한중수교에 즈음한 담화문을 발표하는 모습. ⓒ대통령기록관
    ▲ 노태우 대통령이 1992년 8월 24일 한중수교에 즈음한 담화문을 발표하는 모습. ⓒ대통령기록관
    ◆'1992년의 원죄'… 美·日·사우디와 대비되는 서툰 단교

    1992년 8월 당시 노태우 정부는 43년 혈맹이던 대만(당시 중화민국)에 한중 수교를 불과 6일 앞둔 8월 18일부터 20·21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일방적으로 '단교'를 통보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도 옛 친구를 버리지 않는다"던 노 대통령의 사전통보 약속은 임기 1년을 남긴 상황에서 한중 수교를 무리하게 추진하며 지켜지지 않았다.

    국제 정치의 현실 속에서 1971년부터 주요국과의 단교 사례를 이미 지속적으로 겪어 온 대만은 노태우 정부의 북방 정책에 일관되게 이해를 표명하면서 "한중 관계에 진전이 있으면 사전에 알려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청해 왔다. 한국은 대만 측에 "중공과 수교 교섭이 절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으며 만약 있게 되면 완전히 상세히 우리에게 통보해 주겠다"고 보장했다.

    그러나 심지어 단교 통보를 앞두고 이뤄진 진수지 당시 주한 대만 대사와의 면담은 보안을 명목으로 외교 공관이 아닌 호텔에서 이뤄졌고 이에 존중 받지 못했다고 느낀 대만 측은 강한 불신과 불만을 표출했다.

    당시 중화민국(대만) 한국대사관 1등서기관이던 조희용 전 캐나다 대사는 저서 '대만 단교 회고: 중화민국 리포트(1990~1993)'에서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나오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최대 지원국이자 43년 간의 우방국에 대해 국제 관례에 따른 최소한 도리이자 우호의 표현으로서 단교 전에 대통령 특사를 파견해 대통령 친서 전달과 함께 한중 수교와 한 중화민국(대만) 단교에 관해 정중히 설명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동 기회에 미래 관계 협상을 담당할 전권 위임을 받은 외무부 고위 인사를 공식적으로 소개하고 양국 간 교섭을 일단 시작했더라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한국 정부의 태도는 주변국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미국은 1979년 단교 15일 전에 레오나르 웅거 당시 주대만 주재 미국 대사가 장징궈 총통을 예방해 사전 통보했다.

    일본도 1972년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가 방중 전 장제스 총통에게 시이나 에츠사브로 특사를 파견해 친서를 전달하며 사전 설명을 했다. 대만과 특별한 역사적 관계가 없는 사우디아라비아조차 1990년 7월 단교 4일 전에 특사를 파견하고 국왕의 친서를 리덩후이 총통에게 전달했다.

    단교 과정에서 한국이 범한 결례에 대해 노태우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중국과 수교하면서 왜 의리 없이 대만 측에 사전 설명을 해주지 않았느냐고 비난하는 이도 있지만 그것은 사정을 모르는 말"이라며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내세우며 보안을 유지해 달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때문에 대만 측에 이야기해 주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중국은 '북한에 사전 통보하지 않을 테니 한국도 어느 나라이건 알리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중국은 수교 1개월여 전인 1992년 7월 15일 북한에 이미 수교 사실을 공식 통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북한이 이미 사전에 통보받았다는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대만에 8월 18일부터 20·21일에 걸쳐 단계적으로 공식 통보를 진행했다.
  • ▲ 주한 타이베이 대표부. ⓒ타이완톡
    ▲ 주한 타이베이 대표부. ⓒ타이완톡
    ◆中 앞에 서면 작아지는 한국의 대만 전략 부재

    단교 이후 노태우 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부는 이 원죄를 청산하기보다 중국 눈치 보기로 일관하며 관계 회복의 기회를 방치했다. 단교 시점(1992년 8월 24일)으로부터 약 11개월이 지난 1993년 7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뒤에야 양측은 비공식 관계 수립에 합의했고 서울에는 '주한 타이베이 대표부', 타이베이에는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부'가 설치됐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대만 소유의 비외교 재산에 대한 불간섭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사실상 대만의 기존 소유권을 인정하고 1949년 10월 1일 이후 대만이 구매한 부산영사관저를 중국에 이양하되 대만 측에 보상했다.

    이를 두고 대만 측은 미수교국과의 관계 중 '최고 수준의 관계'라고 공개 표명했지만 한국 측은 중국 측에 '합의된 한·대만 관계가 대만과 다른 나라의 비공식 관계에 비해 높은 수준이 아니다'라고 설명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한국이 수교 교섭 과정에서 중국 측으로부터 대만과 '최고 수준의 비공식 관계'를 수립할 수 있도록 양해까지 얻었음에도 중국에 저자세를 취하다 국익을 훼손한 것이다. 

    제3차 예비회담에서 한국 측이 대만과 가능한 최상의 관계를 유지하기를 희망하자 중국 측은 "컵이라는 프레임만 합의해 주면 한국이 얼마만큼 물을 채울지는 한국 재량으로 할 사안이다. 민간 형식이라고 하면 한국이 원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좋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한다.

    당시 대만은 남북 관계, 한·대만 간의 역사적 특수 관계를 고려해 완전한 비공식 관계가 아닌 '준공식 관계' 수립을 내심 기대했지만, 한국은 끝끝내 그 컵을 제대로 채우지 않았다. 결국 한국과 대만의 정상적 호혜 관계 회복은 2004년 9월 항공협정이 체결되기까지 약 12년이 걸렸다.
  • ▲ 2021년 12월 13일 미국 주도의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대만 탕펑(영어명 오드리 탕) 디지털 정무위원(장관급)이 참석한 모습. 발표 당시 영상 캡쳐사진. ⓒ뉴시스
    ▲ 2021년 12월 13일 미국 주도의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대만 탕펑(영어명 오드리 탕) 디지털 정무위원(장관급)이 참석한 모습. 발표 당시 영상 캡쳐사진. ⓒ뉴시스
    ◆ 34년의 방치와 '대중 저자세 외교'가 만든 구조적 균열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외교부 내에서도 대만과의 교류 지침을 고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중국 눈치를 보는 내부 반발에 막혀 번번이 묻혔다"며 "우리가 그동안 대만에 섭섭하게 한 게 많다. 단교 당시도 심각했지만 그 이후에도 다른 나라들이 다 하는 것을 우리는 중국 눈치를 보느라 대만과의 관계를 '최고의 비공식 관계'라는 테두리 안에서조차 착실하게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의 지적처럼 한국은 59개국과 20여 건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통상 강국이지만 5·6위권 교역 대상국인 대만과는 투자보장협정조차 체결하지 못했고 공식·공적 차원의 공동 연구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2016년 국회 산업통상자원부 청문회에서 조경태 의원이 "대만은 우리나라의 6위 교역국인데 왜 아직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느냐"고 지적했을 때 우태희 당시 산업부 통상차관보는 '국교가 단절된 상황에서 바로 FTA를 추진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로 답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대만 총통이나 행정원장급의 공식 방한은 이뤄지지 않았고 한국이 대만 총통 취임식 등에 보낼 대표단도 공식 정부 인사가 아닌 국회의원급 인사가 참석하는 데 그쳐 왔다.

    반면 일본은 2023년 대만 행정원 부원장의 방일을 허용한 데 이어 2026년 3월에는 대만 행정원장(총리 격)의 방일을 사실상 용인하며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미국도 '미·대만 21세기 무역 이니셔티브'를 통해 실무·정책 협의를 강화하는 가운데 한국은 중국을 의식해 스스로를 비공식 관계라는 틀에 가둬온 측면이 크다.

    ◆초청 당일 취소·면담 거부 … 역대 정부의 '대만 홀대' 사례

    이러한 대중 저자세 외교는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더욱 고착화 됐다. 2021년 12월 문재인 정부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탕펑(오드리 탕) 대만 행정원 장관(디지털 담당 정무위원)을 콘퍼런스 화상 연사로 초청했다가 행사 당일 새벽 이메일로 일방 취소 통보했다.

    탕 장관이 다른 경로를 통해 들은 취소 이유는 "대만해협의 여러 상황 고려"였다. 외교부 대변인은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된 것"이라고만 했다. 중국 관영매체는 이를 "올바른 결정"이라 추켜세웠고 대만 외교부는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부 부대표를 초치해 강력히 항의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8월 대만을 방문한 직후 한국을 찾은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권력 서열 3위)과의 면담을 '휴가'를 이유로 거부했다.

    펠로시 아시아 5개국 순방 중 정상이 직접 만나지 않은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었다. 일본 기시다 총리는 도쿄 수상 관저에서 조찬 회동을 가졌다. 그 배경에 중국 눈치가 있었다는 것은 이후 외교가의 공통된 평가다.
  • ▲ 중국을 국빈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지난 1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식 만찬을 마친 뒤 시진핑 국가주석,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경주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에게 선물 받은 샤오미폰으로 셀카를 찍는 모습. ⓒ뉴시스
    ▲ 중국을 국빈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지난 1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식 만찬을 마친 뒤 시진핑 국가주석,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경주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에게 선물 받은 샤오미폰으로 셀카를 찍는 모습. ⓒ뉴시스
    ◆李 대통령, '국익 중심 실용주의' 되새길 때

    현 이재명 정부도 표기 문제를 인지하고도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실질적인 상호주의 구현을 방기하고 있다. 대만 외교부는 지난해 12월부터 공개적으로 시정을 요구했고 라이칭더 대만 총통까지 직접 나섰지만 외교부는 '비공식 실질 협력 유지'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결정을 미뤄 왔다.

    대만에 대한 지난 34년간의 외교 결례는 지난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도 되풀이됐다.

    린자룽 외교부장은 지난 19일 현지 취재진과 만나 관련 질문에 "당시 한국 정부는 주한 타이베이 대표부(주한 대만대사관에 해당)와 소통하지 않고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부(주대만 한국대사관에 해당)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했다"며 "상대가 좀 높은 곳에 있었다(高高在上)"고 한국의 고자세를 비판했다.

    이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기간 일부 분쟁과 관련해 대만 측에서는 예의를 다했다"며 "결국 상대도 문제를 인식하고 비로소 대표성을 갖춘 관료를 파견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현행 시스템을 유지한다고 해서 중국이 우리를 특별히 평가하지도 않는다"며 "APEC에 대만 대표단이 '타이완'(TAIWAN)이라는 이름으로 참석해 왔고 이에 맞춰 비자·출입국 관련 서류에서도 '타이완'(TAIWAN) 표기가 사용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전자입국신고서의 '중국(대만)' 표기를 수정해 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한중 관계에 정통한 한 중국 전문가는 "이재명 정부는 중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을 때도 중국 눈치를 보는 것이 문제"라면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중 강경 기조로 중일 갈등이 고조되며 중국이 한국을 상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시점임에도 한국은 당당하게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한국은 대만인들이 직접 '타이완'(TAIWAN)이라고 쓰고 입국할 수 있도록 종이 입국카드를 병행하기로 했지만 이는 미봉책일 뿐 실질적인 해결책은 아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 전직 외교관은 "34년 만에 돌아온 청구서는 단순한 표기 갈등이 아니다"라면서 "표기 하나 고치지 못하는 나라가 대만해협 유사시나 반도체 공급망 위기에서 대만과 실질적 연대를 구축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은 그래서 뼈아프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