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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악할 정보'거짓땐 김한길 정치생명 끝나야

입력 2006-04-18 09:07 | 수정 2006-04-18 11:30
조선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에 언론인 류근일씨가 쓴 칼럼 <'경악할 정보'가 허위일 때>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국 정쟁사(政爭史)에서 단단히 한 몫을 한 것 중 하나가 다름 아닌 ‘중대정보 입수’라는 수법이다. 자유당 말기 3·15 부정선거가 있기 직전, 당시 치안국장은 어느 날 “아시아 국제공산주의자들이 모종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중대정보를 입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고, 그 치안국장 역시 그 이후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유당 권력자들은 부정선거를 음모하는 한편, 예(例)의 ‘공산주의 음모론’으로 사회분위기를 싸늘하게 얼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음모론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상대방 이름을 꼭 집어서 말하는 ‘함상훈 발언’ 같은 것이었다. 역시 자유당 때 신익희(申翼熙)씨가 야당 지도자로 부상했을 무렵, 함상훈이라는 정치인이 느닷없이 “신익희씨가 뉴델리에서, 납북된 조소앙씨와 비밀리에 만났다”는 ‘중대정보’를 발설해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 온 정계가 벌집 쑤신 듯 “신익희씨는 진실을 밝히라”느니 “천인공노할 중상모략…”이라느니 하며 난리법석들을 피웠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고, 함씨도 더 이상의 ‘중대정보’를 내놓지 못했다.

제3공화국과 유신시절에도 ‘중대정보 입수’는 권력자들의 상투적인 단골 메뉴였다. “북괴가 6월 녹음기를 틈타 남침할 것이라는 ‘중대정보’를 입수했다”는 식이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런 ‘중대정보’는 집권측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김대중씨 같은 ‘중대정보’의 피해자들도 다급하면 그런 수법을 곧잘 애용했던 것이다. “집권측이 무엇 무엇을 꾀한다는 중대정보를 입수했으며, 그것을 곧 폭로하겠다”는 요지의 폭탄발언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 ‘중대정보 입수’는 흐지부지되곤 했다.

민주당의 설훈 전 의원도 이회창 후보의 부인과 관련해 “10억원을 받았다”는 ‘중대정보’를 발설해 선거판의 풍향을 바꾼 적이 있다. ‘김대업’씨의 병풍(兵風)으로 불린 ‘중대정보’ 역시 김대중·노무현 후보의 2대에 걸친 승리에 메가톤급 기여를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실제로 없었고, 그 때문에 설씨와 김씨는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처럼 불발탄으로 끝난 ‘중대정보’는 나중에는 물론 발설자들의 거짓증언임이 드러나 단죄를 받았다. 그러나 ‘폭탄발언’ 좋아하는 대중관객들의 취향이 건재하는 한, 일단 핵폭탄이 터진 직후 한동안은 그 버섯구름이 온 세상을 통째로 삼켜 버린 것 또한 사실이다.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는 식으로 ‘폭탄발언’은 가깝고 ‘사실규명’은 멀었다.

엊그제 열린우리당의 김한길, 안민석 의원이 터뜨린 한나라당의 ‘경악할 비리’에 관한 ‘중대정보’가 과연 명중한 직격탄이 될지, ‘제2의 설훈·김대업’ 전례를 따를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나타난 것으로는 ‘불발탄’ 쪽으로 가고 있다. 정치인의 발언이 사실에 근거한 책임 있는 것임을 보고 싶다는 점에서, 그리고 안일한 한나라당이 허벌나게 터졌으면 하는 심정에서는 이 두 사람의 ‘중대정보’가 진짜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라면 발설자들의 정치생명도 당연히 끝나야 한다.

흑백이 가려지기 전의 시점에서도 한 가지만은 분명히 했으면 한다. 정치인들은 앞으로 확고하게 입증된 ‘중대정보’만을 발설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미확인 ‘중대정보’는 ‘단정(斷定)’에 앞서, 사실여부부터 ‘질문’하고 확인하라는 것이다. “기다, 아니다” 하면서 정략적인 장군멍군을 즐기던 과거의 ‘중대정보’ 소동은 사실규명은커녕 끝없는 진흙탕 개 싸움만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집사람이 받았다”와 “돌려줬다” 사이를 오가는 공천헌금 사태를 보면 한나라당은 아직도 쓴 맛을 더 봐야 한다. 이렇게 무감각하고 한심한 야당은 우리 정치사상 일찍이 없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도 ‘중대정보 입수’보다는 ‘중대정보 확인’을 전제로 발설해야 한다. 중대정보나 중대사안의 결말은 피의자나 발설자 둘 중의 하나는 반드시 단죄를 당하고 응분의 처벌을 받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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