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연희 성추행’ 사건으로 정치권이 벌집 쑤셔 놓은 듯 뒤숭숭하다. 이번 사건은 정치권내 뿌리깊이 박혀 있는 남성 위주 성문화를 재인식시키며 성폭력 관련 법 제정에만 열을 올리던 정치인들에게 자성의 기회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말 정치권이 이번 사태에 대해 제대로 반성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일이 2일 국회에서 벌어졌다.

    열린우리당은 5·31지방선거를 앞둔 미묘한 시점에서 터진 ‘최연희 성추행’ 사건의 주인공이 한나라당 지도부였다는 점에서 야당 공격의 좋은 호기를 잡은 듯 연일 파상공세를 퍼붓고 있다. 이날도 국회에서는 여지없이 열린당의 공격이 이어졌다.

    정청래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한나라당의 사건 은폐 의혹을 지적하며 당시 술자리에 동석했던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을 향해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그는 “평소 술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이 대변인이 모든 것을 다 아는 증인”이라며 사건 발생일인 지난달 24일부터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 전인 26일까지 있었던 일을 공개하라고 했다.

    그는 또 “동아일보와 한나라당 양쪽에서 (성추행 사건을) 기사화하지 말자는 합의가 없었다면 어떻게 26일 민주노동당 전당대회에 한나라당 대표사절로 최씨를 보낼 수 있었느냐”고 비판했다. 정 의원은 이어 “개인적으로 여기자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며 심심한 위로를 드린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정 의원은 그보다 앞서 현안관련 브리핑을 마치고 기자회견장 밖에서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이 대변인을 찾아와 한나라당의 사건 은폐 의혹을 추궁하기 시작했으며 곧 둘 사이의 공방전으로 이어졌다. 이 대변인이 당시 술자리에 동석했던 만큼 증인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 의원과 동석하긴 했지만 최연희 전 사무총장의 성추행 장면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다는 이 대변인 사이에는 실랑이가 오고갔다.

    “최 전 총장은 뒤 쪽에 있었고 난 다른 기자들과 앞쪽에 있어서 당시 상황을 보지 못해 어쩌다가 (가슴을) 만진 것인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는 이 대변인의 말에 정 의원은 “뒤에서 겨드랑이 사이로 양팔을 넣어 이렇게 만졌다는데 무슨 이야기냐”며 몸소 재연까지 해 보였다. 두세 번 반복되는 정 의원의 재연을 50센티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근접한 거리에서 지켜봐야 했던 본 기자는 여자로서 느껴지는 수치심을 감출 수 없었으며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최 전 총장의 행동을 성토하는 정 의원의 눈은 벌겋게 충혈돼 있었으며 입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했다. 술자리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에 대해 술 냄새를 풍기며 비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정 의원이 재연을 통해 최 전 총장의 성추행 사실을 강조하려 했다면 그 효과는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당시 상황을 여러 사람 앞에서 생동감 넘치게 재연하는 모습에는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등 제 2의 피해를 감수하고 용기를 낸 피해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최 전 총장의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가 이번 사건을 성추행 근절의 계기로 삼기 위함인지, 아니면 단지 자신들의 정치적 이용가치 때문인지 정 의원은 스스로부터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