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대웅 서울 구로구청장(한나라당)이 가족사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양 청장의 형이라고 주장하는 양재성씨가 25일 동아일보 10면 5단 광고를 통해 “양재양(양 청장의 동생)과 절연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 광고에 따르면 양 구청장 형제들은 어릴때 부친이 사망해 어렵게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었던 재성씨는 두 동생들을 대학교까지 마치도록 뒷바라지 했다.

    재성씨의 뒷바라지 덕분에 대학교를 마칠 수 있었던 양 구청장은 교사, 서울시청 공무원 등을 거쳐 지난 2002년에는 구로구청장에 당선됐다. 재양씨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유한양행에 입사했고 현재는 자기 명의의 회사도 두개나 경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동생의 뒷바라지를 했던 재성씨는 최근 동생 재양씨에게 "큰 형 몫인 땅과 귀중품등을 돌려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광고에 나타나있다. 그러나 동생 재양씨는 오히려 역정을 냈다고 한다. 

    이에 재성씨는 “참으로 천하가 공노할 일이다”라며 “이제 오늘부터 형제의 인연과 내왕을 절교하고 이를 지상(紙上)으로 고한다”고 광고에서 밝혔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너의 자식과 너희 주변지인들에게 인식될 때까지 때까지 계속 지상으로 고하겠다”고 추가 광고의사까지 밝혔다.

    양대웅 구청장은 이런 형제간의 다툼에 대해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전후사정을 묻기 위해 25일 전화 통화를 시도했으나 양 구청장의 비서진은 “양 구청장이 직접 관련된 것도 아니니 할 말이 없는 것으로 안다”며 전화를 바꿔주지 않았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2004년 10월 숙부의 소송 제기로 난처한 입장에 빠졌었다. 정 전 장관의 숙부가 “35년전 중고교시절, 7년간 먹여주고 재워준 대가 7500만원을 지불하라”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결국 지난해 5월 전주지법 민사11단독 이민호 판사는 “정 장관은 숙부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다.

    과거 이 사건이 화제가 됐을때 관련 기사를 본 네이버 뉴스 게시판의 네티즌들은 '수진제가치국평천하라고 자기 가정부터 잘 다스려야지…’(mbcxman), ‘7년동안 숙식제공을 하는게 쉬운 일인줄 아느냐, 도대체 어떤 식으로 했길래 숙부가 저런 소송을 냈을까’(danmugi0)라며 한마디씩 일침을 놨었다.

    양재성씨가 동생 재양씨에게 보낸 글

    경남 남해군 창선면 출신 양재양에게 고하노라

    옛날을 돌이켜보면 양재양이 7세, 양대웅(현 구로구청장)이 13세때 부친이 돌아가시어 참으로 호구지책도 어려워 길거리에 헤매야 될 처지였다는 것은 자타가 다 공인하는 사실 아닌가?

    46세된 어머님께서는 순수한 농촌 가정주부였던 탓으로 어떻게 살아갈 길이 너무 막막하여 이 장남격인 나만보면 “너 아니면 어디 의지하고 어디 말 한마디 호소할 데가 있느냐” 하시며 매일 눈물로 세월을 보내셨다. 

    장남격인 이 사람은 부산 충주 서울 등지를 전전하는 동안 40세가 되어 나의 직계 가족도 5남매가 되며 집 한채 없는 남의 셋방, 방 한칸을 얻어 40세가 넘도록 살아왔다.

    얼마되지 않은 월급을 3등분으로 나누어 각기 생활하고 보니 이 사람의 처는 길거리에서 만화가게, 담배장사를 하면서 그날 그날 생계를 꾸려왔다. 한마디로 말하면 두 남동생들에게 나의 청춘을 바쳤다.

    이러한 여건하에 행복한데는 비할바 아니더라도 너희 동생들은 내 그늘 밑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졸업한 것이 아니냐! 특히 양재양은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유한양행에 취직까지 한 것 아니냐!

    금일에 이르러 양재양은 외제 승용차에 가끔 골프도 치고 회사도 2개나 경영하면서 자기를 키워주고 이끌어준 80대에 이르른 장남인 형이 가져야 될 제호답 및 귀물 등을 가져가고서도 이 형에게 반환할줄 모르고 얼마 전 “이제는 부유하게 생활하고 있으니 얼마 되지 않은 제호답과 귀물 등의 대가성을 돌려달라”고 처음으로 말하였더니 오히려 역정을 내었다. 참으로 천하가 공노할 일이지. 이에 오늘부터 형제의 인연과 내왕을 절교하고 이를 지상으로 고하노라.

    이러한 사실을 너희 자식들과 너희 주변지인들에게 인식될때까지 계속 지상으로 고하고져 한다.

    2006년 1월 25일 양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