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일자 오피니언면 '포럼'란에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이 쓴 칼럼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살아난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기러기족으로 알려진 조기 유학생 수가 2만명에 이르고 있다. 높은 교육열을 인정하면서도 국내에서 충족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 선택은 우리의 치부가 아닐 수 없다. 국민소득의 증가에 비례하여 조기 유학도 늘어나게 돼 있다는 현실이 한국 특유의 딜레마이다. 

    ‘기회의 평등’을 기준으로 한국의 가장 최악의 불평등 시스템은 교육제도이다. 강남과 비강남, 지방의 중심도시와 소도시의 거주지에 따른 불평등, 조기유학 가능 여부를 가르는 소득수준에 따른 불평등의 현실은 허울뿐인 평준화의 파산을 단언하기에 충분하다. 

    교육기회의 평등 보장은 투표권의 평등과 더불어 근대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만든 2개의 축이다. 교육의 기회는 가난한 부모를 만나더라도 능력과 노력에 따라 지위 상승이 가능한 길을 열어주었고, 봉건적 신분제도는 비로소 보통교육의 일반화로 그 끈질긴 잔재를 척결할 수 있었다.

    평준화야말로 교육 평등을 보장할 수 있다는 신화는 통상 진보라고 불리기를 바라는 세력들에 의해 지지돼 왔다. 평준화가 입시경쟁과 고교의 차별화를 완화할 수 있다는 이들의 믿음은 그 반대의 충분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이념이 아닌 정책이나 가설이 현실과 유리되어 이처럼 완강하게 고집된 사례는 보기 어렵다. 

    정부는 자립형 사립고의 확대, 일부 지역의 국제학교 설립 허용과 같은 보완책을 들고 나오지만, 전교조는 이마저도 거부하는 극단을 고집하고 있다. 비강남 지역이나 지방에 자립형 사립고를 만드는 것은 교육환경이 좋은 곳으로 거주지를 옮길 형편이 안 되는 가난한 인재들에게 혜택이 가겠지만,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전교조가 불평등한 교육제도를 수호하면서 수구집단이 된 것은 이상만 앞세우는 현실의 무지나 정책의 빈곤뿐만 아니라 철저한 사적이익 추구와 관련돼 있다는 의심이 가능하다. 전교조는 최소한으로 완화된 교원평가제를 거부하고, 최근에는 교육부의 수준별 이동수업 확대조차 전면 거부 의사를 밝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 외에는 어떠한 교육제도 개선에도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대학교수나 일반 공무원들이 받고 있는 평가를 왜 교사들만 특별히 면제받아야 하며, 학력이 뒤처지는 학생도 혜택을 볼 수 있는 수준별 이동수업을 누구를 위해 반대하는지 납득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이런 전교조가 사학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사학법 개정의 선두에 선 것은 이율배반이다. 

    평준화 고수를 외치는 여당의 일부 의원이 자기 지역구에 특목고를 유치하기 위해 뛰는 것처럼, 필자가 아는 전교조 교사들도 자기 자식의 교육환경을 위해서는 이사를 하고 대안학교를 찾거나 조기유학을 보낸다. 자신들도 결코 믿지 않는 평준화제도를 남에게 강요하는 이런 기만이 우울하게 만든다.

    정부 예산의 20%가 투입되고 있으며, 가계 소비지출의 11%가 넘는 교육분야는 평등의 기준 외에도 소비자의 만족도나 효율성으로 보더라도 고비용 저효율의 전형이다. 이런 낙후된 시스템에서 얻어진 기득권을 지키려는 전교조의 영향력을 약화시키지 않고서는 우리 교육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해찬 세대’라는 말도 있듯이 교육정책은 다른 분야와 달리 정책의 오류가 사후에 교정되기 어렵고 낙인처럼 지워지지 않는 속성이 있다. 더구나 높은 교육열과 우수한 인력으로 빈곤 탈출과 산업화의 기적을 만든 한국에서 퇴행적 교육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는 것은 치명적 약점이다. 

    비강남 지역과 지방도시에 자립형 사립고 설립을 활성화하고, 조기유학을 국내로 흡수할 수 있도록 영어나 중국어 등으로 수업하는 국제학교 설립이 자유화돼야 한다. 적어도 학습능력이 있고 열의가 있는 학생이 돈 때문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사회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