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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6일자 오피니언면 '포럼'란에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가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1960년대초 100달러가 채 안되던 우리의 1인당 소득은 이제 1만4000달러까지 증가하여 국민총생산 규모로 세계 11위에 이르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불과 45년 만에 이뤄낸 쾌거이다. 이 기간에 이러한 눈부신 성장을 한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이 눈부신 경제성장의 과정은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을 가능케 한 역사였던 것이다.
수출주도형 불균형 성장이라는 단어로 요약되는 우리의 경제성장 전략은 엄청나게 성공적이었다. 수출주도형 전략은 밖에 있는 시장에 주목하고 이 시장을 대상으로 활로를 개척하자는 얘기다. 그야말로 블루오션 전략이다. 불균형 성장전략은 무언가? 모든 산업 모든 기업을 지원할 만큼 여건이 되지 않으니 잘 될 것 같은 몇몇 기업과 산업을 선별하여 집중적으로 지원하자는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에 자랑할 만한 내로라 하는 우리 기업들이 대부분 이 시기를 통해 성장하고 발전하여 지금에 와서 우리 경제를 대표하여 경제전쟁을 수행하는 막강한 전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1964년에 1억달러였던 수출은 올해 2800억달러를 내다보고 있다. 성장률이 2800배이다.
1950년대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솔로 교수가 주창한 ‘경제성장론’에 따르면 경제성장이 지속될 경우 국가들의 1인당 소득이 비슷해진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시카고대학을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된 ‘신성장론’은 경제성장 과정이 지속돼도 국가 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신성장론이 태동된 배경에는 한국과 필리핀이 있다. 1960년대 초반 우리보다 훨씬 잘살았던 필리핀이 1980년 들어 한국에 오히려 뒤처지는 모습을 보면서 최고의 경제학자들이 과거 성장론에 회의를 품게 된 결과 새로운 성장론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공을 기록하면서 경제성장론을 다시 쓰게 되는 계기를 제공할 만큼 화려한 우리의 경제성장 과정은 초중고교 경제교과서에서만큼은 별로 대접을 못 받고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편협하고 왜곡돼 있다. “경제 교과서가 지나치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기업은 영리추구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공익추구 기관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권남훈 건국대 교수)는 것이다.
기업의 일차적 책임은 이윤 창출이다 호흡이 끊기면 생명체가 사망하듯 이윤을 내지 못하는 기업은 결코 법인체로서의 생명을 이어나갈 수가 없다. 이윤을 제대로 내면서 계속 유지되고 성장하고 발전하는 기업은 그 자체가 사회적 자산이다. 마치 큰 나무에 수많은 새들이 깃들이고 살 듯 기업을 통해 수많은 근로자의 고용이 이뤄지면서 임금이 지급되고 세금이 납부된다. 사적이익의 추구가 그대로 공적이익으로 연결되는 고리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는 기업이 살아 있을 때의 얘기이다. 이윤의 창출은 기업가의 피와 땀과 눈물이 필요한 과정이다. 이를 견뎌내면서 제대로 굴러가는 기업을 꾸려내는 기업가들은 그것만으로도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이제 우리의 초중고 경제교과서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경제성장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기적같은 일들을 자세히 기록한 역사 교과서가 돼야 한다. 반만년이라지만 그 유구한 역사 속에서 한번도 세계사의 중심에 서 보지 못했던 우리나라가 눈부신 경제성장을 토대로 세계사의 중심 근처로 다가가는 과정을 자랑스럽게 기술한 교과서가 돼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미래 한국을 책임질 차세대들이 왜곡되거나 편협되지 않은 시각으로 자랑스럽게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초중고교 경제교과서의 내용과 비중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통해 교과서의 전면적인 혁신이 필요한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