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9일자에 실린 사설입니다. 네티즌 여러분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열린우리당 정세균 당의장이 18일 “소수 기득권 세력만을 위한 수구 우파가 다음에 집권한다면 그것은 역사의 후퇴이며, 재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망언’에 가깝다. 정 의장은 이날 대선 승리 3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당·정·청 등 현 집권세력의 실세들이 총집합한 자리에서 이같은 ‘수구우파 집권 재앙론’을 거침없이 펼쳤다. 정 의장이 말하는 수구우파란 물어보고 말고 할 것 없이 한나라당과 노무현 정권의 국정 운영방식에 비판적인 국민 등 비판세력을 총괄하는 의미일 것이다. 야당과 비판적인 국민을 ‘기득권 수구우파’로 갈라세우며 몰아치는 그의 인식체계야말로 ‘수구 좌파 발상법’의 전형에 가깝다. 

    집권당 당의장으로서 야당을 건전한 집권 경쟁상대로 인식하고 비판적인 국민을 통합의 울타리 안으로 아우르려는 겸허한 접근 자세나 의지는 찾아보려해도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달 27일 “(열린우리당의) 신강령을 통해 과격한 구 좌파세력과는 분명한 금을 긋겠다”고 말한 정 의장이지 않은가. 그런 정 의장이 채 한달도 지나지 않아 현 정권에 비판적인 세력을 수구 우파로 매도하며 “미래세력, 평화세력, 민주개혁세력 등 3대 세력이 연대해 적어도 10년은 정권을 재창출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날 모임이 집권세력의 ‘자축 파티’이기 때문에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을 포함해 ‘20년 집권론’을 소리높여 외치는 것쯤은 못들은 체할 수 있다. 그러나 현 정권에 비판적이면 수구 우파이고, 그 반대로 우호적·협력적이면 ‘미래·평화·민주개혁 세력’이라는 망언까지 못들은 체 넘어갈 수는 없다는 것이 우리 판단이다. 정 의장의 배타적 이분법이야말로 요즘 ‘수구적 구 좌파세력’이 벌이는 거리투쟁의 구호와 달리 들을 이유가 없다. 

    정 의장은 “수구 우파 세력이 집권하면 남북평화와 번영은 후퇴하고, 조세체제와 부동산시스템은 상위 2%만을 위한 것으로 재편될지 모른다”고도 했다. 야당이 집권하면 남북관계 악화로 한반도에 전쟁이 나고, 국민 중 소득 ‘상위 2%’만을 위한 세상이 되어 나머지 ‘98%의 국민’은 현 정권이 요즘 유달리 부각시키고 있는 ‘빈곤의 세습화’로 인한 희생양이 된다는 얘기를 굳이 에두르지도 않고 직설화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역대 권위주의 정권시절에 야당이 집권하면 곧 공산화된다고 국민을 위협하곤 하던 색깔론을 격세유전으로 부활시킨 ‘역(逆) 색깔론’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