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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19일자 오피니언면 '시론'란에 이 신문 이신우 논설위원이 쓴 글입니다. 네티즌 여러분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김정일 위원장. 지난 13일 제주도에서 열린 제17차 남북장관급회담을 기억하시겠죠. 그 자리에서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북한 대표단을 맞이하며 ‘동지’라는 인사말을 썼습니다. 북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김 위원장은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한국 사회에서 통일부 장관이라면 나라를 이끌어가는 주요 지도자 중 한 사람 아닙니까? 그런 분에게 북한체제 고유의 칭호를 사용토록 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김 위원장의 수완은 평가받을 만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북한 정부가 줄기차게 선전·선동해온 ‘남북공조’ 내지 ‘우리 민족끼리’도 요즘들어 그 효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지난 8일부터 3일간 서울에서 개최된 북한인권국제대회를 비판했던 열린우리당 소속 중진 의원들의 목소리가 그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북한 당국에 의한 인권 유린에 문제를 제기하자 “전쟁이라도 하자는 것이냐”고 되받아치면서 여차하면 북한 무력을 동원할 수도 있다는 엄포를 늘어놓더군요. 남북공조라는 말은 결코 헛소리가 아니었습니다.
“파시즘에 항상 필요한 잠재적 무력은 북한이 제공하고, 한국의 좌파는 그 도덕적 분식을 위해 민주와 인권을 주장하지만, 이들 서로가 필요할 때는 역할 분담을 하는 남북공조가 일어나고 있다”(홍성기 아주대 특임교수)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죠.
정말이지 이렇게 완벽하게 2300만 북한 주민이 아니라 이들을 철권통치하는 ‘김정일 체제’의 수호세력을 한국 사회에 구축해놓을 수 있는 비결은 과연 무엇인지 한 수 배우고 싶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이를 어찌하겠습니까. 한국사회에는 가르친 대로 하지않고 삐딱하게 구는 이들도 의외로 많습니다. 게다가 이런 부류가 아주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뉴라이트 운동’ 역시 그 중의 하나입니다. 북한 언론마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서인지 지난 3일자 노동신문은 사설까지 집필했더군요. ‘신보수세력의 야합은 통일운동에 대한 도전’이라는 제목의 글이었습니다. 이 글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남조선에서 신보수(뉴라이트) 세력의 야합은 2007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노린 극우 보수 세력들의 필사적인 몸부림”이라는 글귀였습니다.
한국의 현 권력 집단이 고스란히 자신의 전위 부대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사설까지 동원하는 것을 보니 꽤나 신경이 쓰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의식의 흐름은 불행히도 뉴라이트 운동에만 국한되는 게 아닙니다. 한국사회 전반의 문제입니다.
문화일보가 얼마전 톱기사로 보도했으니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국회운영위원회(위원장 정세균)가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국회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가장 큰 특징이 전반적 보수화 흐름입니다. 자신의 이념적 성향에 대해 23.4%가 진보를 선택한 데 비해 보수는 36.7%에 이르렀습니다. 현 정부 집권 초기에 비하면 완전한 역전인 셈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대북인식의 변화입니다. 국가보안법에 관한 폐지론은 9.1%에 지나지 않는데 반해 유지가 57.6%, 개정후 존치는 33.3%나 되더군요. 대북지원조차 현재보다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할 정도입니다. 심지어 지난 15일자 문화일보에 따르면 현 정권의 교체 목소리가 73%나 됐습니다. 민심이 김정일 독재정권에의 아부 세력과는 전혀 따로 놀고 있더군요.
이쯤되면 남북공조는 말 그대로 파산입니다. 아무래도 김 위원장께서 북한 인민의 행복과 자유는 집단수용소에 처박아둔 채 그저 남쪽을 향해 불평 불만이나 늘어놓을 계제가 아닌 듯 싶습니다.
‘남북공조’나 ‘우리 민족끼리’는 남한은 물론이요, 2300만 북한 인민이 스스로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을 때나 비로소 가능한 영역입니다. 북쪽의 전체주의 정권과 남쪽의 특정 정파가 갈취·독점하거나 끼리끼리 주고받을 수 있는 덕목이 아니라는 얘기죠. 부디 깊이 통찰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