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2일자 오피니언면 '시론'란에 이 제성호 중앙대 교수(법학 전공)가 쓴 글입니다. 네티준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북한인권 국제대회가 '서울선언'을 채택하고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인 10일 폐막했다. 이번 대회는 지난달 유엔 총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북한인권 개선 촉구결의안이 통과된 후 북한인권과 관련해 국내외 인권단체들이 연대해 공식적으로 거행한 첫 국제행사였다. '서울선언'은 북한인권에 대한 국내외적 관심을 고조하고, 국제 연대와 대북 압력의 추동력을 확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당장 내년 상반기에 벨기에와 노르웨이에서 북한인권 공론화를 위한 후속 국제회의가 열린다고 한다.

    정작 북한인권의 핵심 당사자인 한국 정부는 '무시'와 '회피'로 일관했다. 정부는 이번 국제회의에 실무자 선에서의 단순 '참관'만을 허용했다. 대한민국 인권대사와 여성인권 대사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통일부 장관은 미국 북한인권 담당 특사의 면담을 거부하기도 했다. 일부에선 국제회의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단정한다. 그러나 독재자가 인권과 민주주의를 스스로 실현한 역사적 사례는 없다. 인권에는 정공법이 효과적이다. 즉, 인권은 '거론'할 때만이 '진전'이 가능하며, '침묵'하면 '억압'의 연장만이 있을 뿐이다. 

    그간 국제사회가 꾸준히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한 결과 북한은 헌법과 형법을 개정했고, 탈북자 처벌을 완화했다. 일본인 납북 사실을 인정하고 '사실상의 송환'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인권문제를 걸어 김정일 정권에 모욕감을 주거나 압력을 가하면, 북한이 전쟁으로 응수하거나 조기 붕괴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있다. 1995년 가을 유엔 총회 연설 때 당시 공노명 외무장관이, 또 지난 3년간 유럽연합(EU)과 미국 등이 북한인권 문제를 따졌지만, 북한이 전쟁을 공언한 적은 없다. 전쟁은 곧 북한체제의 종말이란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예상되는 '반발'을 전쟁이란 자극적 단어로 호도하려는 저의가 의심스럽다. 

    인권은 인류 보편의 가치다. 유엔체제와 현대국제법 하에서 인권은 더 이상 국내문제가 아니다. 이념과 체제의 차이를 불문하고 모든 국가가 지켜야 할 인권의 '국제적 최소기준'은 세계인권선언과 국제인권규약에 명시돼 있다.

    문화상대주의자들은 북한체제의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 말은 독재정권의 인권탄압에 눈 감겠다는 태도의 위장일 뿐이다. 그런 반면 이들은 식량권.생존권 보장을 위해 아무 조건 없이 대북 지원을 지속해야 한다고 말한다. 

    북한인권을 인위적으로 쪼개 우선순위를 설정하려는 데 동의할 수 없다. 식량난.정치범수용소.공개처형 등은 모두 수령절대주의, 강고한 독재체제, 인권경시 문화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식량난 발생 이전인 50년대 말부터 이미 정치범수용소가 북한에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사실 민주주의 하는 나라치고 기아 상황에 빠져 있는 경우는 없다. 

    "국제적 '평화'와 국내적 '인권'은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러시아 출신 국제법학자 미르킨 구에체비치의 명제는 여전히 타당하다.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북핵문제의 근본원인은 김정일체제의 독재성과 호전성에 있다. 봉쇄나 제재 등 외부요인 때문이 아니다. 정치적 반대가 존재하는 민주화된 나라와는 합리적인 대화협상을 통해 얼마든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북한인권은 생사가 걸린 절박한 문제다. 지금 '조용한 외교'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기에 '인권의 빛'을 갈구하는 북한 주민의 절규에 귀 기울이고 북한인권 개선(생명과 양심)의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 정부는 대북정책에 인권 개념을 조속히 도입해 인도적 지원과 북한인권 개선을 병행 추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