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시론'입니다. 네티즌 여러분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헌법재판소 행정도시 합헌 결정”이라고 선명히 튀어나온 TV 자막 뉴스를 접하면서 떠올린 것은 박정희 정권 말기 대법원의 인혁당 사건 판결이었다. 생때같은 목숨들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대법관들도 평생을 법조에 바친 직업인으로서의 자부심과 명예, 소신과 양심을 지키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의 ‘시대정신’에 저항하는 것은 무력한 지식인으로서는 불가항력이었다. 그들은 인혁당 사건의 가위눌림에 평생을 고통스러워 했을 것이다. 

    헌재 재판관들도 합헌 결정이 내려지면 노무현 정권이 궁극적으로는 수도 분할을 넘어 수도 이전으로 몰아칠 것이라는 ‘권력의 탐욕과 오기’를 모르고 그런 결정을 내렸을 리가 없다. 자부심과 명예, 소신과 양심을 지키려 했지만 두번씩이나 ‘노무현의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것은 노 정권이 만개했다고 주장하는 민주주의에서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헌재 결정이후 국민은 ‘저항할 수 없는 침묵’을 지키면서도 각하 결정을 내린 헌재 재판관들을 향해 측은지심의 동정을 보내고 있다. 역사는 이들을 ‘불운한 법관’으로 기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손을 번쩍들어 ‘수도=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을 인정할 수 없다고 외치면서 노 대통령의 속을 개운하게 했을 3명의 재판관은 더 측은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희망을 걸고 대한민국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행정도시 부지인 ‘충남 연기’를 똑같이 고향으로 갖고 있는 2명의 재판관이 위헌을 주장한 대목에 있다. 고향을 기만할 수는 없다. 역사는 반전을 허용하는 것이며, 이들을 정권의 국가적 일탈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킨 ‘기념비적 재판관’으로 기록할 것이다. 충남에 세워질 행정도시 건설은 결국 ‘제2의 새만금’이라는 방정식을 따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의 18년 집권이 재현될 수 있고 김정일 정권식의 ‘주민소개령’이 먹혀드는 한국이라면 행정수도도 만들 수 있다. 철권으로 국민을 누르고 충남에 내려가는 공무원과 그 가족이 서울에 올라오지 못하도록 여행증명서를 발급하는 사회라면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새만금 하나도 아직 결말을 보지 못했다. 한국 사회가 그 엄청난 수도분할의 대가를 뻔히 내다보면서 다음 정권에서도 이를 묵인할 만큼 지성과 저항의식이 결핍되지는 않았다. 노 대통령 후계자가 재집권하거나 헌재결정을 환영한 한나라당이 집권한다해도 행정도시 건설의 비효율에 대한 국민의 저항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결국 헌재 결정의 유효기간은 노 정권 잔여 임기 2년3개월로 끝이 나며, 행정도시 건설은 노 정권의 단기과제로 효력을 다하게 된다. ‘제2의 새만금’, 노 정권의 국정실패를 압축적으로 설명해 주는 ‘노무현 정권 기념 박물 도시‘로서만 형태를 유지할 것이다. 

    ‘유효기간 2년3개월’이라는 상표 표시는 현 정권의 북한인권 유엔결의안에 대한 기권 사건에도 달라붙어야 한다. 김정일 정권의 폭정으로 수백만명의 동포가 이미 아사했고, 지금도 굶어죽으며 공개 총살형을 당하는 지구상 최악의 생지옥 현실을 ‘반기문 외교통상부’는 국제무대의 한복판에서 보란듯이 외면해 버렸다. 이 사건은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서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로 시작하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건국 이후 가장 난폭한 방식으로 파괴한 외교적 사건으로 역사에 분명히 기록돼야 한다. 수많은 동포들이 생죽음을 당해도 ‘제2의 김종빈 검찰총장’이 단 한사람도 나타나지 않고 일제히 기권의 당위성을 합창하는 것이 반기문 외교의 적나라한 실상이다. 외교의 달인이 아니라 대통령을 쳐다보는 처세의 달인이 펼치는 정권의 ‘하수인 외교’는 한국 외교를 세계적 보편가치인 인권을 외면하는 북한과 동렬에 서도록 만들었다. 이 또한 노 정권의 ‘과거사’로 기록돼야 한다. 

    거기에 송기인 신부를 필두로 한, 그 이름도 숭고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수명도 얼마남지 않았다. 그리고 과거사위의 과거사 재규명 자체가 또다시 과거사 재규명의 과제가 되는 것은 숙명이다. 이 모든 것을 노 정권이 대한민국의 정부라는 이름으로 벌였던 수도, 헌법,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파괴적인 공습의 한 장으로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이미 노 정권은 자신들의 손으로 ‘노 정권 과거사’를 앞당겨 정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