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 명으로 시작해 281만 명 돌파, 손목닥터9988 필수 앱 안착외래·입원비 증가폭 26만 원 ↓…예방 행정 효과 입증치료 중심 복지에서 사전 예방으로 패러다임 전환만성질환 예측 플랫폼으로 서비스 고도화 계획데이터 검증과 개인정보 보호 신뢰 확보가 관건
  • ▲ 손목닥터9988 이용자가 걸음수를 확인하고 있다. ⓒ서울시
    ▲ 손목닥터9988 이용자가 걸음수를 확인하고 있다. ⓒ서울시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40대 A씨는 헬스장 등록을 몇 번이나 미뤘다. 아이 등하원과 가사, 일을 병행하다 보니 따로 운동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대신 최근에는 장을 보러 갈 때 일부러 조금 먼 길을 돌아가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는 날이 늘었다. 서울시의 스마트 건강관리 서비스 '손목닥터9988'을 시작하고 나서다.

    처음에는 포인트를 모으는 '앱테크'에 가까웠다. 걸음 수를 채우면 포인트가 쌓이고 이를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동기가 됐다. 하지만 식단과 걸음 수가 기록으로 남기 시작하자 하루 생활을 돌아보는 기준이 생겼다. A씨는 "운동을 새로 시작했다기보다 원래 하던 일상 속에서 조금 더 움직이게 됐다"고 말했다.

    A씨 같은 시민이 281만명을 넘어섰다. 서울시가 2021년 11월 5만명 규모의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손목닥터9988의 누적 참여자 수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참여자는 281만7135명으로 올해 들어서만 16만5042명이 새로 가입했다.

  • ▲ 손목닥터9988 참여자 8만 7090명, 비참여자 87만 900명 대상 조사(국민건강보험데이터), 성향 점수 매칭(PSM) 기법 사용 ⓒ서울시
    ▲ 손목닥터9988 참여자 8만 7090명, 비참여자 87만 900명 대상 조사(국민건강보험데이터), 성향 점수 매칭(PSM) 기법 사용 ⓒ서울시
    ◆ 걷기 보상 '앱테크' 형식의 예방행정 실험…병원비 증가폭 낮췄다

    손목닥터9988의 기본 구조는 단순하다. 하루 8000보 이상 걸으면 서울페이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가 적립된다. 

    시민 입장에서는 걸음 수를 채우고 포인트를 받는 앱이지만 서울시 입장에서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시민이 병원을 찾기 전에 일상에 건강 습관을 만들도록 유도하는 예방 행정의 실험이다. 운동하라고 권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걷고 기록하고 보상받는 구조를 설계해 행동 변화를 끌어낸 것이다.

    효과는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1월 손목닥터 9988 참여자 8만여 명과 비참여자 87만여 명을 비교한 결과 주 3회 이상 8000보를 실천한 참여자는 비참여자보다 외래·입원비 증가폭이 26만 7593원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허리둘레 정상 비율은 역시 참여자에서 0.4% 올랐고 비참여자에서는 0.4% 내렸다. 혈당 정상 비율도 1.3%p 차이를 보였다. 

    참여자 22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는 85%가 "건강에 대한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답했다. 건강 지표 개선 뿐 아닌 건강을 대하는 인식에 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는 뜻이다. 

    생활 속 체감 효과가 알려지면서 입소문을 타고 참여자도 빠르게 늘었다. 2021년 5만명 규모 시범사업으로 출발한 손목닥터9988은 2022년 23만명, 2023년 44만7921명, 2024년 163만204명, 2025년은 265만2093명이 이용했다. 지난 23일 기준으로는 281만7135명을 기록하며 시범사업 도입 이후 4년5개월 만에 참여 규모가 56배 넘게 불어났다. 
  • ▲ 손목닥터9988 100만 명 이용 기념행사에 참석해 걷는 오세훈 서울시장 ⓒ서울시
    ▲ 손목닥터9988 100만 명 이용 기념행사에 참석해 걷는 오세훈 서울시장 ⓒ서울시
    ◆ 걷기 보상 앱에서 생활형 건강관리 플랫폼으로

    손목닥터9988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출범 당시 시의회에서는 "걷기에 세금을 쓰느냐", "포인트를 뿌리는 게 선심성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예산은 깎였고 사업 출범도 수개월씩 밀렸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발간한 저서 '서울시민의 자부심을 디자인하다'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물러설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손목닥터9988을 "예방 행정의 미래로 내딛는 첫발로 봤다"며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서울에서 시민들이 아프기 전에 미리 건강을 챙기게 돕는 것이 장기적으로 사회비용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투자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논란 속에 출발한 손목닥터9988은 이제 걷기 보상 앱을 넘어 시민 건강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생활형 건강관리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다.

    2024년 개편에서는 우울증·스트레스·조울증·중독 등 10종 마음건강 자가검사가 추가됐다. 이상 징후가 있으면 보건소 전문상담으로 연계된다. 2025년 말에는 보험료 할인과 대중교통 마일리지 적립, AI 트레이너 맞춤 운동 제안 기능이 붙었고 올해 3월에는 적립 포인트로 스마트워치를 할인 구매할 수 있는 이벤트도 진행됐다. 

    신체 건강에서 정신건강으로 범위가 확대되고 편의점 등에서 사용되던 포인트도 다시 건강 관리에 쓰이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중인 것이다.
  • ▲ 손목닥터9988 '내 손안의 건강 주치의' 개편안 ⓒ서울시
    ▲ 손목닥터9988 '내 손안의 건강 주치의' 개편안 ⓒ서울시
    ◆ 아프기 전에 알려주는 앱을 꿈꾼다…예방행정 지속 가능성 검증대

    서울시는 올해부터 손목닥터9988을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로 고도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목표는 '내 손안의 건강 주치의'다. 단순히 걸음 수와 식단을 기록하는 데서 나아가 건강검진 결과와 생활습관, 질병 이력 등을 바탕으로 개인별 건강위험을 예측하고 관리 방향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대한의료정보학회와 건강점수 산출 모델, 만성질환 예측 모델, 중대질환 예측 모델을 연구 중이라는 설명이다. 건강검진 결과를 바탕으로 건강나이를 산출하고 개인별 걷기 목표를 제시하는 한편, 고혈압·당뇨나 심·뇌혈관질환 위험을 미리 파악하는 것이 목표다.

    이제 손목닥터9988에 필요한 과제는 더 확실한 효과 검증과 데이터 신뢰 확보다. 이용자가 늘수록 소요 예산도 커지는 만큼 참여자 확대가 실제 건강 개선과 의료비 부담 완화로 이어지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서비스 고도화 과정에서 질병 이력 등 민감한 보건의료 데이터까지 활용하게 돼 개인정보가 안전하게 관리된다는 신뢰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시는 지난 2월부터 서울형 헬스케어 중장기 효과성 분석을 위한 학술용역 절차를 진행 중이며 오는 7월에는 민간 연구기관을 추가 선정해 교차 검증 방식으로 분석 결과의 신뢰성을 높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손목닥터9988을 단순 참여자 수 확대 사업으로 보지 않고, 실제 건강 개선과 의료비 부담 완화 효과를 검증하겠다는 취지다.

    손목닥터9988은 걷기 포인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서울시가 시민의 생활 데이터를 바탕으로 건강정책을 설계하는 대규모 실험에 가까워지고 있다. 시민에게는 매일 걷는 이유를 만들어주고 행정에는 사후 치료 중심의 복지에서 사전 예방 중심의 건강관리로 넘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서울시의 실험이 실제 의료비 절감과 건강 지표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손목닥터9988은 이제 예방 행정의 지속 가능성을 검증받는 단계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