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산 아래서 움직이기 시작한 자본덴마크 연기금의 경고, 기관 '도미노 매도' 신호탄?'美 국채 최대 보유그룹' 유럽…'안전자산 신화' 흔드나그린란드發 자본전쟁…헤지펀드 대부도 예의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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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각)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게시한 합성 이미지. 사진 속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덴마크령 그린란드에 성조기를 꽂고 있다. 그의 옆에는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 J. D. 밴스 부통령이 서 있다. 출처=도널드 트럼프 트루스소셜 갈무리ⓒ연합뉴스
'그린란드 문제'는 영토 매입을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과 관세 분쟁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글로벌 금융시장에 근본적 충격을 줄 수 있는 '자본전쟁'으로 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외교 갈등의 수면 아래에서 거액의 자본들이 조용히 방향을 틀기 시작한 것이다.총성 대신 자본 흐름이 무기가 되는 새로운 국면의 전조가 감지되고 있다.이번 사태의 출발점은 덴마크 연기금의 미국 국채 전량 매각 선언이다. 20일(현지시각)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덴마크의 연기금인 아카데미커펜션은 보유 중인 약 1억 달러(약 1470억원) 규모의 미국 국채 전량을 이달 말까지 모두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금액 자체만 놓고 보면 글로벌 채권시장에서는 크지 않은 규모다.그러나 시장이 이를 단순한 투자 판단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 결정은 유럽 자본, 특히 장기 안정성을 중시해 온 연기금이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아카데미커펜션은 매도 명분으로 미국의 재정 건전성 악화를 들었다. 천문학적으로 누적된 재정 적자와 부채 증가, 반복되는 정치적 혼란이 '무위험 자산'으로 불리던 미국 국채의 전통적 지위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여기에 그린란드 확보를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압박과 관세 위협이 겹치면서, 정치적·지정학적 불신도 매도 판단에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시장에서는 이 사태가 유럽 연기금의 '발 빼기 도미노' 사태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연기금은 단기 수익보다 안정성과 제도 신뢰를 중시하는 대표적 장기 자본이다. 이런 자금이 미국 국채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금융시장에 강력한 메시지로 작용하게 된다. -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출처=EPAⓒ연합뉴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유럽이 미국 국채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다.유럽은 영국과 유로·비유로존 국가 전체를 합산할 경우, 미국 국채 최대 보유 그룹 중 하나로 꼽힌다.미국 재무부 국제투자통계(TIC)와 각국 공시를 종합하면 지난해 기준 유럽계 자금이 보유한 미국 국채는 약 3조5000억~3조70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전체 외국인 보유 미국 국채 약 9조 달러의 40% 안팎에 해당한다.국가별로 보면 영국이 약 7800억~8500억 달러 수준으로 유럽 내 최대량을 보유하고 있다.이어 벨기에와 룩셈부르크가 각각 3000억 달러 안팎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으며, 아일랜드·프랑스·독일 등 유로존 핵심 국가들도 상당한 물량을 쥐고 있다.여기에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정부연기금 펀드 글로벌(GPFG)은 유럽 자본의 영향력에 방점을 찍는 존재다.이 연기금의 총 운용자산은 1조9000억~2조 달러에 이르며, 채권 포트폴리오의 30% 이상이 미국 국채로 구성돼 있다.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국채 보유액은 약 1360억 달러 수준으로 추정된다. 단일 연기금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이처럼 유럽 각국 연기금, 국부펀드, 기관투자자의 미국 국채 보유 규모를 합산하면, 유럽은 단순한 투자자로 보기 힘든 '큰 손'이다.이 자금이 일제히 '셀 아메리카'에 나설 경우, 그 파급력은 중국이나 일본의 일부 매도와는 다른 차원의 파장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
- ▲ 유럽연합(EU) 깃발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실루엣 일러스트. 출처=로이터ⓒ연합뉴스
문제는 이 자본이 이제 정치적 변수를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그린란드 사태는 이제 외교 마찰을 넘어, 미국과 유럽의 80년 '혈맹'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이슈가 됐다. 미국이 엄포한대로 관세 위협과 경제 압박이 현실화하면, 유럽 입장에서는 경제 보복뿐 아니라 금융 자산 운용이라는 더욱 정교한 카드가 존재한다는 점이 시장의 긴장감을 부채질하고 있다.실제로 유럽연합(EU)은 회원국을 위협하는 제3국에 대응하기 위한 통상위협대응조치(ACI), 이른바 '무역 바주카포'를 검토 중이다.여기에 미국 국채 카드가 결합하면 명실상부한 '자본의 무기화' 국면이 완성될 것으로 보인다.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창립자 레이 달리오는 이날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무역 적자와 무역 전쟁의 반대편에는 자본과 자본 전쟁이 있어 이런 갈등을 감안할 때 자본 전쟁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그러면서 그는 "미국 국채 매입에 대한 관심이 이전과 같지 않을 수 있다"고 미국 국채를 정조준했다.최근 미국 국채 금리는 연일 불안정하게 출렁이고, 달러 강세 흐름도 이전만큼 확고하지 않다.반면 금 가격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며 안전자산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덴마크 연기금의 1억 달러 매각 계획은 숫자로만 보면 미약하다. 그러나 금융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방향이다.작은 균열이 대형 구조물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유럽 자본이 미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고 있음을 알리는 첫 경고음에 가깝다.만약 유럽이 미국 국채를 전략적 카드로 사용하기 시작한다면, 이는 세계 금융질서의 근간인 '미 국채 안전자산 체제' 자체를 흔드는 사건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내포한다.자본전쟁의 충격은 관세의 여파보다 오래갈 수 있다. 세계 금융시장이 이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