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업대가 운동장에 들어서자 독신자 막사 앞에는 드럼통들이 놓여 있었다. 그 안에선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불통 옆에는 꺼멓게 구워진 돌들이 수용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돌 앞에 줄지어 서 있었다. 각자 분조별로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들것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 얼굴들은 온기보다 차가움이 잠시 덜해질 수 있다는 안도의 표정들이었다.

    "분조별 돌 두 개씩!"

    2작업반 반장의 목소리가 어둠을 가르고 울렸다. 반장의 눈이 무심히 흘러가다 도성진의 눈과 마주쳤다.

    "저 9분조는 세 개 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불조 조원이 삽을 들어 뜨겁게 달아오른 돌을 퍼 담기 시작했다. 가수와 주둥이가 양쪽에서 들것을 들고 다가섰다. 삽 끝에 실린 시커먼 돌이 들것 위로 옮겨질 때마다 작은 금속음과 함께 김이 피어올랐다. 눈을 녹이는 김은 아무 냄새도 없지만 잠시라도 손끝을 녹일 수 있는 향처럼 모두의 시선을 빨아당겼다.

    막사로 들여온 그 돌로 몸을 덥히는 방법은 간단했다. 우선 침대 위에 들것을 통째로 올려놓았다. 그런 다음 분조원들이 담요를 뒤집어쓰고 그 돌 주변에 모이는 것이다. 그 열기 하나에 9분조도 담요를 이어 붙이고 앉았다. 작은 천막처럼 만들어낸 그 아래서 사람들은 서로의 숨결을 느끼며 몸을 녹였다. 비록 담요 안은 비좁았어도 함께 한다는 따뜻함은 넉넉했다.

    "어, 얼라반동. 빽이 쎈데."

    좋은 일이 있을 때면 도련님이 항상 먼저 반응했다.

    "발이 아파요."

    도성진이 응석받이처럼 말했다. 가수는 그런 성진의 발끝을 힐끗 곁눈질했다.

    "발 얼면 잘라야 해."

    "우리 조는 아직 햇병아리들이야. 10년 넘은 조에선 발가락 숫자가 제일 적은 놈이 분조장 맡아."

    주둥이 말에 담요 안에서 킥킥대는 숨죽인 웃음이 번졌다. 도성진은 검은손의 발끝을 흘깃 바라봤다. 발가락이 다 있었다. 검은손은 발을 곰지락거렸다.

    "축구선수에겐 발이 얼굴이야. 난 목숨으로 지켰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가수가 불쑥 물었다.

    "근데… 옹헤야는 왜 안 보여?"

    그 시각 옹헤야는 운동장 한구석에 있었다. 이상하게 균형이 맞지 않는 한 사람과 마주 서 있었다. 팔짱을 끼고 뭔가 '있는 척'하는 미꾸라지였다. 반면 옹헤야는 팔 하나만 들어도 바람 방향이 바뀔 것 같았다.

    미꾸라지는 발끝으로 바닥을 톡톡 쳤다. 눈빛은 아래에서 위로, 다시 위에서 아래로 자꾸 움직였다. 실은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 계속 시선이 방황하는 것이었다. 그 짧은 키로는 옹헤야의 어깨까지 겨우 보였다. 그 때문에 더 열심히 고개를 까딱이며 까치발로 존재감을 내보이고 있었다. 옹헤야는 움직이지 않았다. 팔을 허리에 자연스럽게 얹고 그냥 서 있었다. 그게 다였다. 그런데도 어쩐지 '벽' 같았다.

    "너를?"

    미꾸라지가 먼저 큰 소리로 물었다. 옹헤야는 헛기침하며 고개만 끄덕였다. 말하지 않았는데도 미꾸라지 목소리보다 더 크게 공기를 흔들었다.

    "그래. 너희 감시반에 들어가고 싶어. 니가 반장이잖아. 힘 좀 써."

    미꾸라지는 상대의 생각을 짜내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는 눈집게로 끄집어냈다는 눈웃음을 지었다.

    "왜? 9분조를 극진히 보살펴주려고?"

    옹헤야는 단숨에 받아쳤다.

    "못이 아니라, 너처럼 망치가 되고 싶어서."

    그 말에 미꾸라지가 잠깐 눈을 껌뻑였다. 자기를 정말로 존경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눈빛이었다.

    "네 눈에도 망치가 멋있어 보였어?"

    이에 옹헤야는 망치로 그의 정수리를 한 대 때리는 말투로 응수했다.

    "넌 솜방망이잖아. 나 같은 주먹이 있어야 너도 어디 가서 안 맞고 다니지."

    그 말이 정말로 아팠는지 미꾸라지는 딱 3초간 침묵했다. 그러고는 안 아픈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입꼬리를 최대한 들어 올렸다.

    "싫은데!"

    미꾸라지는 잘난 놈처럼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고 몸을 홱 틀어 뛰어갔다. 마치 그 행동은 휴식종이 울리자 제일 먼저 교실문을 박차고 나가는 초등학생 같았다. 저만치서 바짓단이 발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그때부터는 팔을 크게 휘저으며 뛰어갔다.

    옹헤야는 그런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잠시 시선만 따라가다가 결국 코끝이 한 번 들썩였다. 그건 '야, 저걸 때려서 말 듣게 할까' 하는 표정이었다.

    그 길로 옹헤야가 향한 곳은 최종배 사무실 앞이었다. 풍차가 서 있는 곳이었다. 옹헤야는 자기 그림자까지 어둠에 숨기며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재빨리 몸을 굴려 차 밑으로 들어갔다. 그는 손을 뻗어 차체 하부 곳곳을 더듬었다. 만져보고, 힘껏 당겨보기도 했다.

    그때 군화 한 쌍이 바로 옆으로 걸어왔다. 운전병이었다. 옹헤야는 반대편으로 기어가려다가 그쪽에서도 다가오는 또 다른 군화에 막혔다. 최종배와 후방국 군인이었다. 둘의 발소리는 가까워졌다. 차체를 스치는 그림자와 함께 낮은 목소리들이 귓가에 닿았다.

    "간부들이야 뭔 걱정이야. 집에 전화가 있으니 비상 연락망 전화 따르릉 하고 한번 울리면 그만인데. 밑에 놈들 사정은 어디 그러냐고? 자전거 고장 나서 뛰어갔는데 연락받을 놈은 술 처먹고 정신도 없어. 또 누구는 계집질 갔는지 밤새 안 들어오지…"

    최종배의 불평이었다. 옹헤야는 숨을 고르고서 뒤쪽으로 발끝 방향을 가늠했다.

    “상위 동지, 몇 시 출발하겠습니까?”

    "여기서 새벽 3시는 출발해야 해. 내일 열 시까지 본부에 도착해야 하니까."

    후방국 군인은 대답하다가 라이터를 떨어뜨렸다. 그걸 보는 옹헤야의 눈동자가 긴장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손만 내려와 라이터를 집어 올렸다.

    "종배야. 너흰 두 시간이면 빨리 모인 거야. 우리 부댄 비상 연락망 발령 떨어진 그날 네 시간 걸렸어."

    술병을 든 운전병이 따라붙고, 최종배와 군관은 웃으며 걸어갔다. 그들의 발소리가 흙길 저편으로 사라졌다. 차 밑에서 바퀴를 따라 옹헤야가 굴러 나왔다.

    그는 이번엔 최종배 사무실 안쪽으로 스며 들어갔다. 방 안에 들어선 그는 움직이지 않고 잠시 숨을 죽인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리된 것 같았으나 어딘가 무질서가 은밀하게 눌려 있는 공간이었다. 시선이 책상 위를 스쳤다. 그는 소리 없이 다가가 서랍의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 안에 작은 상자가 들어있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부서진 세이코 시계였다. 시간이 완전히 멈춰 있었다.

    서랍 안쪽엔 줄 처진 양식지에 최종배가 자필로 쓴 노동당 입당 청원서도 있었다. 그 밑에는 또 다른 종이 뭉치가 있었다. 외국 잡지에서 뜯어낸 낯선 종이 재질이었다. 마치 창피하다는 듯이 어설프게 반으로 접혀 있었다. 펼쳐보니 여자 나체 사진들이었다.

    누렇게 빛바랜 사진 한 장도 있었다. 도성진의 가족사진이었다. 사진 속 아버지의 눈빛은 서글펐다. 그 옆에서 웃고 있는 어린 성진은 귀여웠다. 또 다른 서랍을 열던 옹헤야의 손이 멈췄다. 15호 관리소 5개 리 전체가 표시된 지도였다. 지뢰 매설 구간, 철조망, 감시초소, 잠복초소들이 빠짐없이 표시돼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쾅, 쾅— 바깥에서 군화 소리가 들렸다. 창밖을 확인하니 최종배가 돌아오고 있었다. 술을 마시던 중에 시계 소리가 불쑥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후방국 군인은 청진의 유명한 시계 수리공이 자기 옆집에 산다고 했다. 그에게 평양에서도 시계 고치러 간부들이 찾아온다고 자랑했다.

    최종배는 사무실 문 앞에서 열쇠 뭉치를 꺼냈다. 열쇠를 구멍에 넣고 돌렸다. 자물쇠가 헛도는 감각이 들었다. 그의 동공이 한순간 멈췄다. 뭔가 이상했다. 그는 문을 조심스럽게 밀고 들어왔다.

    방안에 들어선 그는 불을 켰다. 밝아진 조명 속에서 의심 가득한 눈으로 방 전체를 훑었다. 반듯한 책상, 높지 않은 침대, 구김 없는 커튼, 그 모든 것들이 오히려 더 인위적으로 정돈된 것 같았다.

    한편, 옷장 안에 숨은 옹헤야는 숨을 참으며 틈 사이로 방안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최종배는 책상 쪽으로 다가가더니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시계 부속이 담긴 작은 상자를 꺼내 확인하고 있었다. 돌아서서 나가려던 그가 문턱 앞에서 문득 옷장을 바라봤다. 옷장 문틈 아래로 아주 가느다란 물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물은 옷장 안에 있는 옹헤야의 신발에서 눈이 녹아내린 흔적이었다.

    순간,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옷장으로 다가오던 최종배가 화들짝 놀라며 책상 위의 전화기로 향했다. 눈은 계속 옷장 앞에 두고 있었다.

    "네, 조직부장 동지! 중위 최종배 전화 받습니다!"

    긴장한 목소리와 차렷 자세로 시선은 정면으로 돌아갔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낮고 느리게 흘렀다.

    "그래… 너 입당 청원서 제출했었나?"

    "정치부에서 아직 연락받은 게 없어서 입당 청원서만 써놨습니다."

    "이런... 그럼 이 조직부장을 미리 찾아왔어야지."

    옹헤야의 귀에도 수화기 속의 목소리가 또렸했다. 숨소리는 더 가늘어지고 손끝은 무릎 위에서 굳어 있었다. 그는 문틈 사이로 전화기 앞에 서 있는 최종배를 바라보았다. 수화기에서 새어 나오는 목소리에도 귀 기울였다.

    "그 전에 말이야, 요즘 정치부장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돌아서… 내부 처형자 명단 놈들을 담화하면서 빵이나 담배를 준다던데… 그런 거 들은 적 있어?"

    "저의 작업대에 아직 담화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 이젠 입당해야지. 언제 내가 부를게."

    "고맙습니다. 조직부장동지! 정치부장 동지가 오면 잘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기다리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그의 손이 주먹으로 바뀌더니 곧이어 탄성도 터졌다.

    "아버지! 이 최종배가 드디어 당원이 됩니다!"

    그 외침은 방 안에 공허하게 맴돌았다. 최종배는 갑자기 문턱을 넘으려다 다시 돌아와 책상 위의 시계 상자를 들었다. 그것을 품에 안고서 방에서 빠져나갔다.

    군화 소리는 멀어지다 끊겼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옷장 문이 스르르 열렸다. 어둠 속에서 옹헤야의 얼굴이 살며시 드러났다.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