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확장 재정 속 재정 운용 철학 검증대野 "일제 부역 행위" 격앙, 즉각 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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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규연 홍보소통수석이 2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장차관급 인선을 발표했다. 사진은 기획예산처 초대 장관에 지명된 이혜훈 전 의원. ⓒ대통령실 제공
내달 2일 출범하는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에 이혜훈 전 의원이 지명됐다. 보수 우파 진영에서 재정 건전성을 강조해온 대표적 인사를 예산 컨트롤타워에 앉힌 배경을 두고 현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에 대한 불안을 완화하려는 시도라는 평가와 함께, '돈 풀기 정책'에 명분을 씌우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동시에 나온다.◆UCLA 박사·KDI 거친 '엘리트 경제통' … 화려한 가문 배경도 주목이혜훈 후보자는 1964년 부산 출생으로 마산제일여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자타 공인 '경제통'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거쳐 2004년 17대 총선(서울 서초갑)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 뒤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이 후보자는 학술적 전문성뿐만 아니라 화려한 가족관계로도 유명하다. 남편은 '게임이론' 연구의 권위자인 김영세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이며, 시아버지는 고(故) 김태호 전 내무부 장관이자 신한국당 사무총장을 지낸 우파 진영의 거물이다. 이러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재명 정부의 초대 예산 수장으로 낙점된 것은 정치권에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다.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28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에서 이 후보자에 대해 "국회 예결위 간사, KDI 연구위원 등을 역임한 정책과 실무에 능통한 분"이라며 "다년간 의정활동을 바탕으로, 곧 출범할 기획예산처가 국가 중장기 전략을 세심하게 수립하여 미래 성장동력을 회복시킬 적임자"라고 지명 배경을 설명했다.◆박근혜·윤석열·김문수 거쳐 이재명으로 … 정체성 논란 가열이 후보자의 경력은 우파 진영의 핵심을 관통한다. 2012년 박근혜 캠프의 경제 정책을 설계했고, 2021년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 캠프의 국가미래전략특위 위원장을 맡았다. 올해 대선 국면에서도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캠프 정책본부장을 지내는 등 우파 정권 창출의 선봉에 서왔다.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그를 발탁하며 내세운 명분은 '경제민주화'다. 이 홍보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경제민주화 철학에 기반해 최저임금법, 이자제한법 개정안 등을 대표 발의하고 재벌의 불공정 거래 근절을 추진했다"고 강조한 바 있다.즉, 현정부의 관점에서는 이 후보자가 주도했던 경제민주화 철학이 오늘날 양극화 완화와 기본서비스 확대라는 정책 방향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본다. 이것이 야당의 '시장 자율성 훼손' 평가와는 다른 관점을 반영한 인사라는 것이다.이에 대해 우파 진영은 냉소적인 반응이다. 우파 정당에 몸담으면서도 시장의 자율성을 규제하는 입법을 주도했던 그의 행보가 결국 좌파 정부의 입맛에 맞는 가치를 증명한 셈이라는 분석이다.실제로 국민의힘은 이 같은 행보를 해당 인사의 개인적 선택 차원이 아닌 당의 가치와 정체성을 훼손한 중대한 배신 행위로 규정하며 즉각 제명에 나섰다.국민의힘은 이날 서면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이 전 의원을 제명하고, 당직자로서 행한 모든 당무 행위를 취소하기로 의결했다.배현진 국민의힘 서울특별시당위원장은 이 후보자의 내정을 "몰염치한 정치 행보"라고 규정하며 "국민의힘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강세지역인 서울 서초갑에서 3선을 지낸 전직 중진의원이자 현직 중·성동을 당협위원장이 당원들의 신뢰와 기대를 처참히 짓밟으며 이재명 정부에 합류하는 것은 정치적 도의를 넘어선 명백한 배신행위"라고 비판했다.이어 "특히 재정전문가로서 대한민국 미래에 큰 위해가 될 이재명 정부의 포퓰리즘 확장 재정 기조를 막기위해 우리 국민의힘이 혼신의 힘을 다 해온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 지명자의 행보는 자기 출세를 위해 양심과 영혼을 팔았던 일제 부역 행위와 다름없다"며 이 지명자에 대한 즉각 제명을 중앙당에 권고했다.◆KDI 시절의 규제 중심 사고 … 정부의 적극적 개입 필요성 주장이 후보자는 KDI 연구위원으로 재직하던 시절 공기업 민영화와 네트워크 산업의 제도 설계 이슈를 다룬 바 있다. 그는 공저자로 참여한 KDI 연구보고서 '민영화와 집단에너지사업'(2000년)에서 민영화 이후에도 정부의 규제가 불가피한 네트워크산업을 전제로 규제체제의 재정립과 정책집행부처로부터 독립된 규제기구 정립 등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그는 2012년 6월 5일 새누리당 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 간담회에서 경제민주화를 위한 선결 조건으로 '재벌 개혁'을 꼽으며 ▲금산분리의 강화 ▲공정거래법의 재벌 관련 조항 재정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재벌의 불공정행위로도 확대 ▲재벌의 담합 및 불공정행위에 대한 집단소송제도 도입 필요성을 제기했다.그러나 이는 시장의 가격 결정 기구에 국가가 과도하게 개입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좌파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과 이자율 상한 규제 등은 기업 경쟁력을 약화하고 시장 자율성을 훼손하는 규제 만능주의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재명 정부가 그를 '실용 인사'로 포장한 것은 이 후보자의 이러한 성향이 현 정부의 국정 기조와 이미 결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728조 '초슈퍼 예산안' 앞두고 … '보수 재정관' 간판든 방패막이로 쓰이나가장 큰 시험대는 이 후보자가 마주할 2026년도 728조 원 규모의 '초슈퍼 예산안'이다. 그는 과거 국회 예결위 간사 시절인 2018년 11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만 효율적으로 재정을 지출하는 '정밀타격'이 이뤄져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의 확장 재정은 "융단폭격만 있고 정밀 타격은 없다"며 날 선 비판을 쏟아낸 바 있다.문재인 정부의 과도한 일자리 예산에 대해선 "일자리 예산은 민간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게끔 하는 마중물 역할에 그쳐야 한다"며 "마중물은 한 바가지면 되는데 (정부 예산은) 마중물 수준이 아니라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이어 "정부가 직접 창출하는 일자리가 민간으로 옮겨갈 수 있게끔 해야 하는데 정부가 직접 만들겠다는 5만9000개의 일자리 중에는 빈 강의실 불 끄는 아르바이트 등도 포함됐다. 이런 아르바이트를 해서는 나중에 민간에 취직할 수도 없다"고 꼬집었다.남북경협 예산에 대해서도 "국회에서 다른 예산은 사업·세목별로 일일이 승인을 받고 쓰는데 남북경협 예산은 '보안'을 이유로 아예 세부 내역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 보안이 필요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내역이라도 제출해야 심사를 하지 아무것도 제출하지 않는 '깜깜이 예산'은 심사할 수 없다"고 말했다.그러나 일각에서는 현재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민생회복 지원금과 기본서비스 확대 예산은 그가 비판했던 '융단폭격식 지출'의 전형이라고 비판한다. 이 후보자가 정부 내부에서 재정 준칙 확립을 위해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자신의 경제민주화 논리를 동원해 방만한 재정 집행에 면죄부를 주는 '방패막이'로 전락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우파 진영에서 나오는 이유다.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획예산처 장관 이혜훈 지명은 경제 폭망에 대한 물타기"라며 "전 국민 25만 원의 역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빚내서 돈 풀면 결국 환율, 물가, 부동산 급등한다고 경고했었다. 역대급 고환율은 물가 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극도의 수요 억제책으로 부동산도 폭등했다. 전세가 씨가 마르고 월세가 급등하면서 서민들은 살인적 주거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고 지적했다.이어 "포퓰리즘 돈 풀기는 마약과 같아서 끊으면 금단현상이 생긴다. 이혜훈으로 물 타기 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정책 방향을 완전히 전환해야 한다"며 이 후보자를 향해 "시켜준다고 하냐"라고 일갈했다.◆청문회, 도덕성·정체성 양면 검증 전망 … "李 대통령 방침에 깊이 공감"내달 열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이 후보자의 '정치적 정체성'이 핵심 쟁점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우파 진영의 핵심 정책을 설계했던 그가 왜 좌파 정부의 경제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겼는지, 자신의 소신을 버리고 장관직을 택한 것은 아닌지 집중 추궁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그의 경제민주화 철학이 현정부의 기본서비스 확대 정책과 일치한다는 점을 부각할 것으로 예상된다.여기에 2017년 당대표 사퇴의 원인이 됐던 금품수수 의혹도 다시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비록 검찰에서 2019년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이 후보자가 당대표직을 자진 사퇴해 도덕적 책임을 이미 졌음에도 불구하고, 청문회에서는 당시 상황에 대한 대응과 책임의식이 다시 문제 삼아질 가능성이 있다.이 후보자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정치적 색깔로 누구에게도 불이익을 주지 않고, 적임자라면 어느 쪽에서 왔든지 상관없이 기용한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방침에 깊이 공감한다"며 "경제와 민생 문제 해결은 본래 정파나 이념을 떠나 누구든지 협력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 저의 오랜 소신"이라고 밝혔다.이어 "성장과 복지 모두를 달성하고 지속 성장을 이뤄내야 한다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 목표는 평생 경제를 공부하고 고민해 온 저 이혜훈의 입장과 똑같다"며 "갈등과 분열이 대한민국 국정에 과거 어느 때보다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지금, 무거운 책임감으로 제가 평생 공부해 오고 쌓아 온 모든 것을 경제 살리기와 국민 통합에 쏟아붓겠다"고 다짐했다.이혜훈 카드가 이재명 정부의 '통합·실용' 인사 기조를 상징하는 선택으로 평가받을지, 아니면 확장 재정 논란 속에서 '방패막이' 인사라는 비판을 키울지는 향후 이 후보자의 행보에 달려 있다. 정치권과 시장은 그가 '보수 재정관'으로서의 원칙을 유지하며 예산 편성·집행 과정에서 재정 준칙과 지출 통제를 얼마나 구체화할지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