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야당 최후 보루마저 빼앗는 거대 여당與, '재석 60명' 장치 달고 입법 연쇄 처리하나민주주의 역설? … 與 "필리버스터로 법안 볼모"
  •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가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5.11.21. ⓒ이종현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가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5.11.21. ⓒ이종현 기자.
    과거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의로운 사투'라고 표현한 더불어민주당이 정작 거대 여당이 되자 필리버스터제한법(국회법 개정안)을 국회 법사위에서 단독으로 처리했다. 이에 따라 소수 야당의 마지막 반대 수단을 법으로 차단하려 한다는 비판이 거세짐과 동시에 '내로남불'이라는 지적마저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은 필리버스터 중단 요건을 대폭 완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한 데 이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과 법왜곡죄 신설법 등 쟁점 법안들을 국회 본회의에서 연쇄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6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지난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운영위원회에서 필리버스터 중단 요건 완화를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개정안은 재적 의원 5분의 1인 60명 이상이 국회 본회의장에 앉아있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필리버스터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당은 해당 법안을 오는 9일 본회의에서 최종 가결할 방침이다.

    필리버스터는 국회법 제106조의2에 따라 의원 3분의 1 이상(100명)의 요구로 개시되는 제도다. 다수당 단독 표결 구조 속에서 소수 정당이 정책 반대와 여론 환기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제도적 통로다. 

    현행 국회법상 본회의 개의 요건은 '재적 5분의 1 출석', 의결 요건은 '출석 과반 찬성'으로 다수당 단독 표결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필리버스터는 법안 강행 처리를 지연하기 위한 수단으로 유지돼 왔다.

    그러나 개정안이 시행되면 야당은 필리버스터 유지를 위해 본회의장에 상시 60명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현재 국민의힘은 구속 상태인 권성동 의원을 제외하면 107석으로, 사실상 원내 의원 대부분을 밤낮 없이 동원해야 토론이 가능한 구조가 된다.
  • ▲ 나경원·곽규택·조배숙·신동욱 의원 등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13일 국회에서 열린 대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 진행과 관련해 추미애 법사위원장 자리로 찾아와 항의를 하자 국회직원들이 앞을 막고 있다. 2025.10.13 ⓒ이종현 기자
    ▲ 나경원·곽규택·조배숙·신동욱 의원 등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13일 국회에서 열린 대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 진행과 관련해 추미애 법사위원장 자리로 찾아와 항의를 하자 국회직원들이 앞을 막고 있다. 2025.10.13 ⓒ이종현 기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회법 개정이 단순한 의사 진행 효율화 차원이 아니라 민주당이 추진 중인 쟁점 입법을 신속 처리하기 위한 선제 정지 작업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민주당은 국회법 개정안 통과 직후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12·3 윤석열 비상계엄 등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제보자 보호 등에 관한 특별법)과 법왜곡죄 신설법(형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할 방침이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은 각급 법원에 내란 전담 재판부를 최소 2개 설치하고 영장전담 판사까지 별도로 지정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법왜곡죄 신설법은 판·검사가 사실 관계를 왜곡해 판결이나 수사를 하면 형사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법조계에서 사법부 독립 침해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 밖에도 공수처 수사 범위 확대 법안, 정당 현수막 규제 강화 법안, 대법관 증원 법안, 재판소원제 도입 법안 등이 민주당 주도로 상임위를 통과했거나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민주당의 행보는 과거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필리버스터 제도가 부활한 2016년 2월, 민주당은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해 무제한 토론에 나섰다. 

    당시 은수미 의원이 10시간 18분 동안 연설하며 최장 기록을 세웠고, 김광진 의원부터 이종걸 당시 원내대표까지 여야 의원 39명이 릴레이 토론에 참여했다. 민주당은 당시 필리버스터를 '국민 기본권 사수'와 '의로운 사투'로 규정하며 여론전을 펼쳤다.

    그러나 그때와 입장이 바뀐 민주당은 필리버스터를 '민생 발목 잡기', '정치적 남용'으로 규정하며 법으로 차단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이에 야권은 일당독재 선언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 ▲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열린 추경호 의원 구속 심사 규탄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성진 기자
    ▲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열린 추경호 의원 구속 심사 규탄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성진 기자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4일 페이스북에 "필리버스터는 의회 다수당의 독재에 대한 마지막 견제 장치"라며 "소수당의 최후 저항 수단마저 빼앗아 모든 법을 아무런 견제 없이 일사천리로 통과시키겠다는 건 '일당독재 고속도로'를 설치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나경원 의원도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안을 서둘러 처리하는 건 연말에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 파괴법'을 필리버스터 없이 신속히 처리하기 위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의석 수가 3석에 불과한 개혁신당도 "자신들이 할 때는 '신성한 투쟁'이고, 남이 하면 '발목 잡기'이자 '생떼'라니, 세상에 이보다 더 완벽한 '내로남불'이 어디 있나"라며 분개했다. 

    정이한 개혁신당 대변인은 "민주당은 의회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마저 무너뜨리는 '필리버스터 무력화'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라며 "국민의 입을 막고 소수 의견을 힘으로 짓밟는 정치는 효율이 아니라 독재"라고 날을 세웠다. 

    반면 민주당은 필리버스터 제도는 유지된다며 절차 훼손은 없다는 입장이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필리버스터 기회는 그대로 보장된다"며 "개혁법안을 막겠다고 민생 법안까지 필리버스터로 볼모 삼는 행태가 책임 있는 정치라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