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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둥이의 말은 헛소리가 아니었다. 도련님에게 만남을 제안한 여자는 가족세대 3작업반 2분조의 박해순이었다. 그녀를 시작으로 독신자세대 9분조 남자들과 가족세대 2분조 여자들이 운명처럼 얽히기 시작했다.
15호 수용소는 명확히 둘로 나뉘어 있었다. 죄를 지은 독신자세대와 죄를 나눠 짊어진 가족세대였다. '원죄'와 '여죄'를 구분 짓기 위해 15호에선 죄진 당사자를 '장본인'이라고 한다. 독신자세대는 장본인들만 수용되었다. 가족세대는 장본인의 가족들까지 연좌돼 끌려온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15호에서는 어느 집이든 여자들의 목청이 더 높았다. 죄는 남자들이 지었고 여자들은 어이없게 끌려왔기 때문이었다.
가족세대의 남자들이 몸을 사리는 이유는 또 있었다. 북한 정치범수용소에서 연좌제는 '주범이 죽어야 끝나는' 구조였다. 그 설계는 가족을 하나로 묶는 게 아니라, 반대로 서로를 고발하고 죽이도록 만들어졌다. 그래서 아내가 남편을,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친족살해는 계획된 탈출이자 가장 잔인한 해방이었다.
그런데도 15호에 오래 남은 여자들은 사랑의 여신들이었다. 죽기까지 가족 곁에 남는 선택을 한 현대판 심청이요, 춘향이였다.
그녀들은 마음만 고운 게 아니었다. 15호 보위원들이 수용자들을 보며 인정하는 딱 하나가 있었다. '조선의 최고들만 모였다'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노골적인 감탄은 '조선의 미인은 15호에 다 모였다'는 극찬이었다. 그냥 미녀가 아니었다. 피부에 남은 여유, 표정에 남은 교양, 말끝에 남은 소양. 수용소 안에서조차 겉도는 그 미묘한 우위였다.
15호의 여자들은 화장하지 않아도 예뻤다. 그 얼굴들은 충성의 시작부터 파멸의 끝까지를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계속 쳐다보게 되는 조선의 미녀들. 말 없는 기념비이자, 깨지지 않는 거울이었다.
하지만 박해순은 그런 얼굴까진 아니었다. 그녀는 양강도체육단 소속 배구선수 출신이었다. 얼굴보다 두툼한 손이 먼저 눈에 띄었다. 수용소에서 그녀의 별명도 '주먹'이었다.
그 별명 그대로 그녀는 무뚝뚝했다. 시선은 늘 한 곳에 고정돼 있었고, 한 번 정한 목표에는 망설임 없이 뛰어올라 내리꽂는 성질이 있었다. 그녀가 도련님에게 꽂힌 건 반해서가 아니었다. 복수였다.
도내 주민 식량 배급 책임을 진 량곡사업소 소장이었던 그녀의 아버지가 간부의 비리를 당중앙에 공식적으로 신고했다. 그런데 거꾸로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끝내 이곳까지 끌려왔다. 그 앙갚음 대상으로 박해순은 도련님을 골랐다.
북한에서 수령을 제외한 최고위 간부는 부주석이니 그 아들놈이라도 짐승처럼 능욕할 계획이었다. 마치 사료 그릇에 음식 찌꺼기를 섞어 던지듯, '가마치'를 미끼로 말이다.
그녀에게 있어 바지를 내리는 부주석의 아들은 국가에 대한 복수, 당에 대한 모욕, 그리고 조선 여자로서 가장 통쾌한 승리였다.
오전에 돌을 나르며 먼지에 파묻혔던 발걸음들이 점심시간이 되어 집으로 향했다. 마치 퇴근길 같았다. 2분조장인 장찌엔이 옆에 걷던 박해순을 슬쩍 불렀다.
"아직 간부 놈 하나 안 걸려들었어?"
"이게 이 안에서도 간부 행세를 하려고... 확 죽여버리고 싶다."
박해순의 말투는 사내 같았다. 장찌엔은 호탕하게 웃었다.
"우리 분조에 여걸이 두 명 있구나야. 조선 여걸. 대륙 여걸, 하하하."
그녀가 말한 것처럼 이름부터 특별했던 장찌엔은 화교 출신이었다. 그녀의 신념 속에는 애당초 자신은 조선 감옥에 갇힐 민족이 아니라는 굳건한 기둥이 박혀 있었다. 스스로 붙인 별명도 '대륙의 여걸'이었다.
그 기질은 어디에서도 굽히지 않았다. 이름을 입에 다는 것조차 불법인 15호 안에서 그녀는 가장 거리낌 없이 자기 이름을 휘둘렀다. 보위원 앞에서도 눈을 흘기며 말끝을 놓지 않는 태도는 2분조 전체의 결을 결정지었다.
2분조는 박해순 말고도 3명이 더 있었다. 그중 27세의 민유정은 조선대외연락위원회 소속 영어 통역원 출신이었다. 보위원들도 한 번쯤 돌아볼 만큼 민유정은 눈에 띄는 미모를 지녔다. 시선을 피하고자 유정은 스스로 별명을 '매덕이'라 정했다.
그녀는 동남아 순회대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아버지가 대사관 안전대표에게 밀고 당하면서 결국 종착지는 15호가 됐다.
그녀의 해외 경험은 주체조선의 사람들에게 온갖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매덕이라는 별명은 '에이즈'라는 소문으로 자라났고, 보위원들의 관심도 곧 멀어졌다.
유정의 유일한 취미는 혼자 거울 앞에서 영어로 말하는 일이었다. 영어는 진심이고, '조선말'은 거짓이었다. 조선말은 체제의 입, 억압의 혀, 현실 혐오의 문법이었다. 그녀의 모국어는 이미 "빠이, 빠이" 당한 처지였다.
유정보다 한 살 어린 윤진경 역시 외교관의 딸이었다. 어머니가 해외에서 실종되자, 당국은 체제 이탈 방조 혐의로 아버지에게 책임을 물어 딸과 함께 15호로 보냈다.
윤진경은 조선미술창작사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수예 전공자였다. 얼굴도 마치 수예 실로 그려낸 듯 했다. 선은 섬세했고, 색은 은은했으며, 가까이 다가설수록 감정의 결이 촘촘히 느껴졌다. 고운 두 눈 뒤엔 한 땀 한 땀 억눌러 꿰매놓은 고요가 있었다. 입술은 자신을 조이며 버티는 매듭 같았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화려하지 않아도 지워지지 않고 오래 남는 그림 한 장 같았다. 사람들은 그녀를 '손바늘'이라 불렀다.
2분조의 막내 김상미는 16세로 독신자세대 막내 도성진과 동갑이었다. 평양 금성고등중학교에서 무용수를 꿈꾸던 소녀는 아버지의 말실수 하나로 가족과 함께 끌려왔다. 1989년 세계 13차 청년학생축전 준비를 명목으로 김정일은 평양시 장애인들을 지방으로 내쫓으라고 지시했었다. 그 방침을 두고 친구들과 웃으며 "정신적 불구자"라고 말한 게 빌미였다.
상미는 자기 별명을 '뾰루지'라 지었다. 눈빛은 늘 미리 상처받을 준비를 마친 듯했다. 빠르고 거칠게 웃다가도 마음속엔 항상 벽을 하나 세워두는 아이였다.
2분조 여자들이 마을 입구에 이르자 똑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집이라 해봐야 움푹 꺼진 토굴들이 어깨를 맞대며 다닥다닥 이어져 있을 뿐이었다. 점심 식사보다는 수다가 더 편했는지 장찌엔이 박해순을 붙들고 늘어졌다.
"가마치 준다는데도 싫대?"
박해순은 주겠다는 입장에서 더 통분하다는 표정으로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팍팍 쳤다.
"이게 체면은 살아서. 굶어 죽어도 간부라 이거지..."
민유정은 놀란 얼굴로 박해순을 쳐다봤다.
"정말 그렇게 말했다고?"
"사회 나가면 내가 간부 놈들 살인할 거야? 그렇게라도 농락해서 평생 깨고소해 하며 살아야지."
박해순은 어딘가를 노려보며 중얼댔다.
"병은 약으로 고칠 수 있어도 마음속 상처는 되돌려줘야 나아. 이 안에서나 간부 놈들 몸값이 똥값이지."
"그러다... 임신하면 어쩌려고?"
윤진경의 걱정에 박해순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간부 놈 종자는 오줌 싸버리면 그만이야."
그 말에 옆에 있던 김상미의 눈이 동그래졌다.
"오줌 싸면... 임신 안 되나요?"
순진한 질문에 모두가 웃음을 참느라 키득거렸다. 여기선 소리 내어 웃는 것조차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