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중독' 프랑스, 부채 3.3조유로에 신용등급 강등국채이자, 2029년 1천억유로 전망…"IMF 구제"까지 거론伊, 복지개혁·세원 확대로 반등…韓, 구조개혁 외면시 '회색 코뿔소'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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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좌)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군 지휘관 연설 직후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당시 국방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2025.07 AFP 연합뉴스. ⓒ연합뉴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가 취임 27일 만인 지난 6일 전격 사임했다. 프랑스 현대사에서 '최단명 총리' 불명예 타이틀을 갖게 됐다.표면적으로는 내각 불신임과 정치 불안이 원인으로 지목됐지만, 그 근저에는 공공지출 증가로 인한 재정 악화가 누적돼 있었다.르코르뉘 전 총리는 의회에서 긴축예산안을 승인받을 과제를 갖고 있었다. 그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정부지출 60억유로를 감축하겠다고 밝혔다.하지만 그의 사임은 예산안을 다루기도 전에 불신임당한 직전 정부 장관들이 현 내각에 상당수 유지된 데 따른 정치권 반발에서 나왔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는 예산안 통과를 위한 타협이 불가능하다면서 물러난 것이다.작금의 프랑스 재정 상황은 심각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2025년 1분기 기준 프랑스의 누적 국가부채는 3조3454억유로(약 5461조원)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비율은 113%로, 2000년 59.7%에서 25년 만에 곱절로 뛰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가운데 그리스(152%)와 이탈리아(137%) 뒤를 이어 세 번째로 높다.연간 재정적자도 2024년 1697억유로(약 268조원)로, GDP의 5.8%에 달했다. 유럽연합(EU) 평균(약 3.1%)의 두 배에 육박했다.국채에 대한 시선도 싸늘해졌다. 2022년 초 1%대였던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최근 재정적자 확대와 유럽중앙은행(ECB)의 긴축기조로 인해 3.5%까지 상승하며 이탈리아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치솟았다. 프랑스 재무당국은 이자비용이 올해 665억유로에서 2029년에는 1000억유로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국채금리 상승과 함께 프랑스 국채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시장의 불안심리가 커졌다. 프랑스 정치권 일각에서는 사실상의 '국가 부도'인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까지 거론되는 등 위기론이 확산하고 있다.상황이 이렇자 지난달 피치는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강등했다. 역대 프랑스 정부 가운데 가장 낮은 등급이다. 앞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해 5월 11년 만에 'AA'에서 'AA-'로 하향 조정했고, 12월 무디스는 'Aa2'에서 'Aa3'로 신용등급을 내렸다.피치는 "향후 몇 년간 국가부채 안정화를 위한 명확한 시야가 없는 상태"라며 "국가부채가 2027년엔 GDP 대비 121%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진단했다.무디스와 S&P, 피치 등이 매기는 국가신용등급은 한 나라의 '빚 갚을 능력'을 재는 지표다. GDP 대비 부채비율과 정치적 안정성이 주요 평가 기준이다. 경제 규모 대비 정부 수입과 지출의 균형, 안정적인 재정정책을 구현할 정치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의미다.인구 고령화와 복지지출 확대는 주요 선진국의 공통된 고민이다. 복지지출의 경우 한 번 늘리면 어지간해선 줄일 수 없는 경직성을 갖고 있다. 여기에 포퓰리즘이 겹치면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미국의 경우 5월 재정적자 확대 우려로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1'으로 강등된 바 있다. 유럽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정지출이 급증한 데다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국방비까지 대폭 늘려 재정 압박이 거세졌다. -
- ▲ 프랑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의 시위 모습. 250910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경고가 가시적이고 결과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회피하고 간과하는 위험을 흔히 '회색 코뿔소'라고 한다.정치적 양극화로 인한 국론 분열과 재정적자 확대로 인한 국가채무 증가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회색 코뿔소'다. 이를 간과하면 결국 커다란 재앙적 상황을 맞게 될 뿐만 아니라 통계와 경험에서 벗어난 돌발 위기를 뜻하는 '블랙 스완'에도 대처할 수 없다. 몇몇 수치를 들어 "아직은"이라고 안심할 때가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우리나라 국가채무는 이미 1300조원을 넘어섰고,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2015년 34%에서 올해 49.1%로 뛰었다. 내년 말 51.6%로 처음 50%를 돌파한 뒤 2029년에는 58%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프랑스에 비하면 낮은 수치지만, 기축통화국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 안이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더군다나 현금성 정책들이 쏟아지면서 긴장을 놓을 상황이 안 된다. 여·야간 갈등은 세계 어느 나라에 견줘도 뒤처지지 않는다.프랑스의 경우 과도한 정부지출로 인한 '재정중독'이 경제 위기와 정치 불안을 낳으면서 국가경쟁력마저 위협받는 형국이다. 우리도 최근 퍼주기식 확장 기조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프랑스 사례는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한국의 신용등급은 △무디스 'Aa2' △S&P 'AA' △피치 'AA-'다. 우리도 저출산·고령화, 복지 확대, 지정학적 리스크 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국가신용등급은 외국자본이 그 나라를 얼마나 믿는지 보여주는 척도다.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이다. 등급 하락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고, 성장 둔화로 돌아와 미래 세대의 부담을 가중한다.민생 회복과 성장동력을 위한 재정 확대가 불가피하다면, 구조개혁을 반드시 병행해 재정 건전성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이런 점에서 일각에서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내각을 타산지석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2022년 10월 출범한 멜로니 정부는 상·하원 모두 안정 과반을 확보하면서 강력한 정치적 기반을 마련했다.이에 따라 재정 누수 차단, 중기 재정개혁안 마련 등 주요 정책이 예측할 수 있게 추진됐다.전자세금계산서, 현금거래 추적 등 디지털 관세 시스템을 전면 도입해 세원을 강화했다. 무엇보다 복지정책도 보편에서 선별로 전환해 취약계층과 근로연계형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피치는 이탈리아의 국가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상향했다. S&P도 동일하게 한 단계 올렸다.IMF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020년 154%에서 지난해 135%로 20%P 낮아졌고, 재정적자 비율 역시 같은 기간 9.4%에서 3.4%로 축소됐다. 이탈리아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2023년 고점(4.8%) 대비 1%P 이상 하락하며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재정 건전성 회복과 신용등급 상향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것이다.고령화와 저출생에 따른 성장 정체를 피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탈리아의 재정개혁은 정치 안정과 실질 개혁이 결합할 때 신뢰 회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한국도 '강 건너 불구경할 때'가 아니다. 복지지출과 같은 '재정중독'은 한 번 수혜자가 정해지면 좀처럼 되돌리기 어렵다. 이탈리아처럼 재정 건전성에 대한 장기 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프랑스보다 더한 재정위기를 피할 방법이 없다.재정에 기댄 단기 부양책은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러나 구조개혁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프랑스보다 더한 위기를 피하기 어렵다. 위기는 사후대응보다 사전예방이 더 중요하다. 지금이 바로 그 출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