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 윈터 편집장, 편집회의서 직원들에게 알려미국판 보그 손 떼고 보그 글로벌 편집책임자 역할 유지'패션 바이블' 보그 전성기 이끈 '전설'…패션계 큰 영향력
  • ▲ 애나 윈터 보그 글로벌 편집책임자.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 애나 윈터 보그 글로벌 편집책임자.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모델로 유명한 패션잡지 '보그(Vogue)'의 애나 윈터 편집장이 37년 만에 편집장직에서 물러난다.

    26일(현지시각) 미국 패션 매체 WWD, 뉴욕타임스(NYT),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윈터 편집장은 전날 직원회의에서 "오랫동안 고민해 온 중요한 결정에 대해 오늘 아침 여러분과 이야기하고 싶었다"면서 편집장직 사퇴 소식을 알렸다.

    그는 이 자리에서 "창작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장을 멈추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며 "이제 내겐 다음 세대 열정적인 편집자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갖고 현장을 누비는 것을 돕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이날 회의에서 자신이 '전설'로 군림하던 보그 편집장에서 물러나는 것이 보그에서의 은퇴를 의미하지는 않음을 명확히 했다.

    그는 "지금이 바로 회사에서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시점이다. 사무실은 물론, (내가 아끼는) 클라리스 클리프 도자기 한 점도 옮기지 않을 것"이라면서 "앞으로 몇 년 동안 글로벌 리더십에 집중하며 전세계의 뛰어난 편집자들과 협력해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이들을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그는 회사에 남아 신설된 직위인 보그의 글로벌 편집책임자와 보그의 모회사인 콘데나스트(Condé Nast)의 글로벌 최고콘텐츠책임자(CCO) 역할을 유지하며 전세계에 발행되는 콘데나스트 발행 출판물 콘텐츠를 총괄 감독하게 된다.

    콘데나스트는 GQ, 배니티페어(Vanity Fair) 등 다양한 대중문화잡지를 전세계에서 발행하고 있다.

    NYT는 한동안 추측이 무성하던 윈터 편집장의 전격적인 사퇴 소식에 미디어업계와 패션계가 술렁이고 있지만, 그는 영국·프랑스·이탈리아판 보그를 포함해 콘데나스트의 모든 출판물을 감독하며 여전히 보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남게 됐다고 촌평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변화가 오히려 윈터 편집장의 역할을 강화한다고도 보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미국판 보그의 다음 편집장은 글로벌 편집책임자인 윈터 편집장에게 업무 내용을 보고하게 된다. 미국판 보그는 현재 새로운 편집장을 모집하고 있다.

    영국 출신인 윈터 편집장은 30대 초반이던 1983년 콘데나스트에 입사해 1988년부터 보그의 편집장을 지내며 보그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의 치하에서 보그는 풍성한 광고와 열독자들에 힘입어 모델과 디자인, 사진 등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며 전세계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 바이블'로 자리매김했다.

    윈터 편집장 역시 이 기간 디자이너, 유명 인사, 브랜드의 성공을 좌우하는 패션계의 거물로서 입지를 굳혔다.

    단발머리에 큼직한 선글라스를 쓴 채 굵직한 패션쇼의 앞자리를 지켜온 그의 특유의 스타일은 패션계는 물론, 대중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때로는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독단적이고 과감한 리더십으로 '핵(nuclear) 윈터'라는 별명이 붙은 그의 면모는 할리우드 명배우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년)'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영화는 윈터 편집장의 비서 출신인 로렌 와이스버거가 2003년 출간한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토대로 했다. 속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는 내년 5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보그의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더 셉템버 이슈(2009년)'에는 패션계를 호령하는 윈터 편집장의 차가운 야심가로서의 면모와 함께 따뜻한 인간적인 내면도 잘 나타나 있다.

    미국 민주당의 열성 지지자로 알려진 윈터 편집장은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올해 1월 '대통령 자유의 메달'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그는 모국인 영국에서도 2017년 여성에게 주어지는 기사 작위인 '데임' 호칭을, 올해 2월에는 '명예 동반자 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