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대한민국 건국 주장은 천동설 같은 주장전 세계 어느 나라도 《임정》을 나라로 인정 안해대한민국은 1948년에 건국됐다
  • ▲ 상해임정은 1941년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제정했다. 총강, 복국, 건국 등 3개장으로 되어 있다. 복국과 건국이란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임정 스스로 아직 건국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
    ▲ 상해임정은 1941년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제정했다. 총강, 복국, 건국 등 3개장으로 되어 있다. 복국과 건국이란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임정 스스로 아직 건국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
    1. 들어가면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결성된 《광복회》가 졸지에 정치투쟁단체로 오인될 만큼 시끄러운 단체로 변하고 있다. 

    지금은 작고했지만 김원웅 이라는 회장은 국가주최의 《광복절》 기념식에서 개회사를 통해 "친일파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를 부르는 것은 민족적 수치" 라고 주장,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작금에는 새로 임명된 《독립기념관》 관장이 일제의 식민지 지배시대를 긍정한 뉴라이트적 사관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임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런 요구가 수락되지 않자, 정부가 주최하는 《광복절》 행사 참여를 거부했다.  
    그러고는 별도의 《광복절》 행사를 열었다. 
    그 저리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고 한다. 

    《광복회》 회장이,
    ★ 대통령의 인사정책에 대해 반발하는 것인가, 
    ★ 몽니를 부리는 것인가, 
    ★ 아니면 전 근대적 표현으로 반역을 시도하는 것인가. 

    참으로 안타깝다. 

    2. 이승만 대통령의 [친일] 책임론

    일제에 아부하거나 협력했던 [친일파] 는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함께 사라졌다. 

    1945년 12월 9일 인촌 김성수 선생을 비롯한 국내 애국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해외에서 독립운동하다가 귀국한 애국지사들을 환영하는 만찬 행사가 서울 국일관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국내파와 해외파 간에 친일문제를 놓고 고성이 오가는 설전이 벌어졌다. 

    이때 이승만 박사가 분연히 일어나 좌중을 보면서 말했다. 

    “총한방 쏘지않고 나라를 일본에 내준 《조선》 국왕이야야말로 2천만이 [친일]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나라를 만든 장본인이고 책임을 져야 할 자다.
    국왕을 잘못 만나 36년간 일본에게 종노릇 한 것만해도 서러운 데, 해방된 조국에서 국내파와 해외파 간에 [친일] 책임을 놓고 논변을 벌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냐. 
    우리 모두 힘을 뭉쳐, 다시금 종의 멍에를 쓰지 않을 새 국가 건설에 함께 힘쓰자.”

    우남 이승만의 호소에 소란은 가라앉았다고 한다.

    지극히 옳은 말이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이 땅에서는 더이상 일본에 충성하거나 빌붙을 한국인은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제 한일 양국간의 국력차이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전 세계를 무대로 대등한 지위에서 경쟁하는 관계다. 

    일본은 한국을 억압하거나, 한국인을 강제징용하거나, 한국인을 고문하거나, 수탈하거나, 자유를 짓밟을 능력도 의사도 있을 수 없다. 
    과거의 잘못된 일본군국주의는 동경 전범재판에서 처단되었다. 
    지금의 일본인은 과거에서 벗어난 새 일본인들이다.

    3. 《광복회》의 뉴라이트 판별기준

    《광복회》는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 관장을 뉴라이트 사관을 가진 자로 규정, 해임을 요구하면서 그들이 뉴라이트로 판별하는 인물에 적용할 9개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9개 항목의 [뉴라이트 판별기준] 내용을 살펴보면 한마디로 코메디거나 새로운 [친일파 만들기] 다.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대통령]이라 부르는 자나, [1948년 건국론]을 말하는 자는 뉴라이트란다. 
    시점상 일제 식민지배시대가 있었음을 인정했기 때문에, [뉴라이트 = 친일파] 란다. 

    이런 주장을 펴는 《광복회》에 의하면, 우리 민족은 이 땅에서 5천년간 살아오다가 영토와 인민은 그대로인데 일본에게 주권만 빼앗긴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라고 우리는 《기미독립만세운동》으로 1919년 《상해임시정부》를 출범시켜, 《대한제국》을 《대한민국》으로 새롭게 [건국]했기 때문에, 국적은 달라지지 않고 그대로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올해가 [대한민국 건국 105년]이라는 것이다. 

    이런 허황한 소리도 곱게 보면 희망론적(wishful)사관이라거나 상상적 사관의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역사적 사실에는 전혀 부합하지않는 헛소리다. 

    1910년 《한일합병》 이후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변했으며 일본의 무단통치·문화통치 를 거치면서 [내선일체] 를 강요당했다. 
    심지어는 창씨 개명과 상용어를 일본어로 바꾸고 한글마저 말살당할 위기에 처했다. 

    국내 동포들이 이같이 고난의 심연에 빠졌을 때, 임시정부는 무위의 방관자였다. 
    국내동포들은 임시정부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광복회》 간부들도 해방전 태어난 사람들의 원적을 떼어 보면, 하나같이 일본 국적이었을 것이다.

    4. 임시정부의 존재논리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조선의 식민지화를 막는데 실패한 망국 관료 배들과 한말 지식인들이 주축이다. 
    《기미 3.1독립만세운동》을 계기로 《대한제국》의 복원(복국)을 바라는 《복벽파(復辟派)》 들을 제압하고 중국의 상해에 수립되었다. 

    이것은 일부 망명인사들이 주도한 독립운동의 한 형태였으며, 그 자체로서 정부이거나 정부기능을 수행할 수 없었다. 
    역사학자 한시준(韓詩俊)이 지적한대로, 시종 내분으로 굴러갔기 때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제사회의 어느 주권국가로부터도 승인을 받지못했다. 

    그 결과 1941년 12월 7일 임시정부 명의의 대일 선전포고도 연합국들이 무시했다.
    그렇기에 태평양 전쟁을 종결짓는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 당사자로서 참가할 자격도 얻지못했던 것이다. [1919년 건국론] 은 하나의 희망론적 허구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5000년 역사상 한반도에서 태어난 최초의 국민의 국가는 국민의 자유, 평등, 비밀, 보통의 원칙이 적용된 자유총선거를 통해 국가 지도자들을 선출하고, 이들이 헌법을 제정하고 이 헌법절차에 따라 국가원수를 선출함으로써 탄생한 《대한민국》뿐이다. 
    연합국의 대일전 승리로 일본이 패망함에 따라 3년간 미군정 통치를 받았고, 유엔감시하의 자유총선거를 통해 태어난 정통 정부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이 정부는 임시정부가 아니다. 
    영토, 인민, 주권을 가진 합법정부다. 

    5천년동안 한반도에 존재했던 정치체들은 한마디로 백성은 주권이 없는 [군주의 나라] 였지만, 국민이 주권자가 된 최초의 [국민국가]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한 《대한민국》이다. 

    여기에 이승만[건국대통령]으로 부르고 [대통령 기념관]을 건립할 정당성이 있다. 
     
    해방3년후 1948년 이승만 박사의 뜻대로 5.10 총선을 거쳐 7월 17일 헌법이 제정되었으며, 8월 15일에 독립국가의 수립을 내외에 공포하였다. 
    뒤이어 12월 12일 유엔총회는 한반도에 수립된 합법정부로서 《대한민국》을 승인했다. 
    이것이 한국현대사의 진실이다. 

    상해에서 성립된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한 방식일 뿐 [건국]도, [정부수립]도 아니다. 

    5. 글을 마치면서 

    이제 《광복회》는 [임정건국론] 이라는 희망론적 사관을 버리고 21세기의 현실에 맞는 사관 위에 새롭게 세워져야한다. 
    사관의 갱신이 필요하다. 

    이런 갱신없이 《광복회》가 존재하려면, 일본은 항상 한국을 침략하거나 한국의 식민화를 도모하려는 국가여야한다. 
    자국의 안보를 위해 인접국을 자국의 안전판이 되게 지배해야 한다는 일제의 전략가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류의 지배층은 이미 일본 역사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를 꿈꾸는 사고도 오늘의 일본에는 없다. 

    이제 한일 양국은 협력적 상호의존의 시대를 맞고 있다. 
    [반일(反日)] 아닌 [극일(克日)]을 도모해야 할 때다. 

    세계는 바야흐로 민족주의가 번창하던 19세기말로부터 20세기 초반을 지나 AI를 앞세운 4차산업혁명이 추진되는 21세기에 도달했다.
    경제적 국경은 무너졌고, 교육이나 문화에서도 국경은 개념을 상실했다. 
    영토보다는 시장이 훨씬 더 중요한 시대다. 

    우리나라는 특히 안보 면의 지정학적 불리(不利)를 극복하기위해, 한미동맹도 중요하지만 인접국가로서 우리와 가치관념이 비슷(like-minded)한 일본과의 협력심화도 시대의 요청이다. 

    《광복회》는 독립혁명가들이 한 때 매달리거나 가정했던 희망론적 사관의 굴레에서 좀더 일찍 벗어났어야 했다. 
    뉴라이트론을 펴면서, "있지도 않은 [친일파] 를 새로 만들어 내고 그들의 직책을 빼앗으려고 획책하는" 《광복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시도 때도 없이 [죽창가] 를 부르거나 [토착왜구론] 을 퍼트리는 좌파분자들의 언동때문에, 국민통합이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는 상식있는 국민들이면 다 안다. 

    시대착오의 극치로 보이는 [뉴라이트 판별기준] 같은 코미디는 더이상 만들지 말라. 
    이제 피해자 입장에서 보는 일본관을 버리고 대등한 경쟁자거나 필요한 협력자로 일본을 활용하는 [용일(用日)]의 지혜가 요구된다. 

    《광복회》는 [반일] 에서 [극일]로 그 존재이유를 바꿔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