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정쩡 '여의도 사투리' 거부··· 싸움은 그렇게 해야민주당 최고위원의 위선도 시원하게 직격··· 틀린 말 하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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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하고·명석하고·옳은, 한동훈 문법
대구와 대전에서 국민/시민/대중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열광했다.
왜였을까?
그의 말과 입장이 너무나☆ 분명하고 ☆ 명석하고☆ 옳았기 때문이다.도무지,★ 적당주의 ★ 얼버무림 ★ 세태 영합★ 어정쩡함이란 없다.
의사 전달도 매력적이고 우수하다.
이걸 보면서 매사 ★ 두루뭉수리 ★ 반반(半半) 절충론으로 좌익 대세에 영합하려,
중도(中道)란 이름의 고매한 철학을 의도적으로 오용(誤用)하는 [사이비 우파]의 교활함을, 다시 한번 혐오하게 된다.■ '중용'과 '중간'은 다르다
중도와 중용(中庸)의 본뜻은,[최적(最適)]이라 할 수 있다.
공자님 문하에 자막(子幕)이란 제자가 있었다.이 친구는,중용(中庸)을 중간이라 잘못 알았다.
스승은 그건 중용이 아니라 했다.
자막집중(子莫執中)이란 말이 그래서 생겼다.
요즘 한국의일부 비(非) 좌파 정치인들, 유권자들, 언론들이 꼭 그런 식이다.
★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중간
★ 좌와 우의 중간
★ 이 [확실]과 저 [확실]의 중간을,
그들은 중도라 착각하거나, 일부러 그런다.
그러나 그건,
★ 중용 아닌 자막집중
★ 아무 편도 안 드는 방식으로 살아남으려는 연명책
★ 정치적 무관심
★ 스윙(왔다 갔다) 유권자
★ 이x도 나쁘고 저 x도 나쁘다는 모두 까기 중 하나일 수 있다.
정치에선, 한 눈금이라도 [덜 나쁜 쪽]을 선택하는 것인데.
■ 기계적 중간·균형·양시양비론의 교활함
어떤 필자는글 쓸 때도 꼭 양비론적 수사학을 쓴다.
심지어는 긍정 대목 꼭 열 줄,부정 대목 꼭 열 줄, 하는 식으로 일일이 세어서찬반을 동시에 담으려 한다.
이들은 걸핏하면 [극단정치] 하지 말라며양쪽에 다 훈장질한다.
자기가 무슨 초월적 존재라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경우가 물론 있다.
어린 자녀들이 티격태격 다툴 때가예컨대 그렇다.
“야, 너 형한테 그러면 돼?”
“야, 너 동생한테 그러면 돼?”
■ 중도론자들은 아래 질문에 답하라
☆ 가열한 정치투쟁 현장에서
☆ 전투 현장에서
☆ 사상전 현장에서,
중간 운운은 한낱 [관념의 유희]인 경우가 많다.
☆ 대한민국 건국과정에서
☆ 6.25 남침 때, 거기에 무슨 중간이 있을 수 있나?
☆ 다부동 전투에서, 중간이 있나?
계속 물어보자.
☆ 대한민국은 태어나야 할 나라인가. 태어나선 안 될 나라인가?
☆ 파시스트와 볼셰비키 앞에서 중간이란 무엇인가? 그게 가능하기나 한가?
☆ 북한 세습 천황제와 자유민주주의 중간이란 뭐란 말인가?
☆ 주사파와 반(反)주사파 사이에도 중간이 있을 수 있나?
☆ 이재명 당이냐, 아니냐 하는 질문에서도 중간이란 뭔가?
■ 기회주의 논자는 한동훈을 험담해보라
한동훈 장관은 이런 질문들에 대해
항상 확실하고 정확하게 입장을 선택한다.
[좋은 게 좋은 것] [무난한 것]이란,그의 사전에 없다.
그는 자신과 남들을 헷갈리게 하지 않는다.
그는 항상 직설적이다.
주사파와는 그렇게 싸워야 한다.
“이런 게 옳다고 할 수 있겠으나,
저런 것도 일리가 전혀 없지는 않으니
그것도 전적으로 부정하진 않겠다.”
만약 이런 식으로 그가 말한다면
그것은 이미 [여의도 사투리]일지언정, 바른 [국민적 어법(語法)]은 아니다.
[기성 언론의 작법(作法)]일지언정,정직한 진술자라 할 수는 없다.
한동훈은 말한다.
“지인 자식 봐달라고 판사에게 청을 넣고,
직원들 봉급에서 후원금 떼고,
자기 친인척을 직원으로 쓰면서
깨끗한 척한다.”
위선에 대한 그의 이런 [단칼]을
또 어떤 기회주의 논자(論者)가[극단정치]라 험담할지,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