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을 왜 '혁명적 타도의 대상'으로만 보는가?대기업이 왜 '시기·질투·증오·저주'의 대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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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량한 법

    울화가 치솟는다.
    이재용 삼성 회장이 5년 구형을 받았다.
    3대에 걸쳐 한국의 경제적 삶을
    [뽕밭에서 바다(桑田碧海)로] 업그레이드시킨 삼성
    이제 와 듣는 소리가 기껏 “5년 징역 살라”고?

    ■ 법인가? 고무줄인가?

    필자는 젊었을 때,
    법의 절제보다는 법의 과잉에 세 차례씩이나 경을 친 적이 있다.
    매번 ▲ 소급법(遡及法) ▲ 포고령 ▲ 계엄령 ▲ 비상군재(非常軍裁)로 혼이 났으니 말이다.

    이래서 필자는 혼자서 읊조리곤 했다.
    “이게 법인가? 멋대로인가?"

    그렇지 않고야
    어떻게 [정치 잡범]들에겐 “범죄혐의가 소명됐다”라고 하면서도 잡아넣지도 않고,
    그렇게 한없이 관대할 수 있는가?
    팽팽했다가 느슨했다가 하는 걸 보면,
    사법(司法)이 아니라 무슨 고무줄?

    ■ 대기업 없이 대한민국 존속 가능한가?

    이재용 회장은 최후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계에 지정학적 리스크가 발생하고 있다.
    선제적 대비가 필요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그래서 합병했다.
    외국인 투자자들과 한 통화 내용이
    전혀 다른 의미로 오해되는 것에,
    허무를 느꼈다.
    내 지분을 늘리기 위해
    다른 주주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은,
    상상조차 한 적 없다.”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 없이,
    한국인들이 오늘날 같은 의식주를 향유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도 이 나라 일각엔 언제나
    대기업을 혁명적 타도의 대상으로 치는 
    ▲ 시기 ▲ 질투 ▲ 증오 ▲ 저주가 있었다.

    중소기업 위주로 가자는 대통령도 있었다.
    중소기업으로,
    반도체 포항제철 현대자동차가 가능했을까?

    ■ 박정희·이병철·정주영·이건희가 이룩한 '한강의 기적'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1978년인가,
    처음으로 외국엘 나갈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어느 광장엘 가봤다.
    그 순간 필자는 머리를 꽝하고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거기서 필자는 한국을 보았다.
    바로, 삼성 현대 LG 등의 대형 기업광고였다.
    오!

    헐벗은 전쟁고아 사진으로나 소개되곤 하던 한국은,
    그 무렵 이미 [전혀 다른 한국]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이병철 이건희 정주영 창업주들이 이룩한
    5000년 만의 [한강의 기적]이었다.

    ■ 황금알 낳는 거위, 배 가르자는 자들

    그런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의 번영하는 시대가
    이재용 피고를 5년 징역에 처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논고했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탄핵정변 와중에,
    삼성에 대한 흉흉한 괴담이 나돌았다.
    대북사업을 끝끌내 하지 않은 삼성,
    민노총 같은 정치노조에 방어적이었던 삼성을,
    [해체] [공기업화] [주인 없는 회사로 만든다]는 설들이었다.

    이재용 회장에 건의하고 싶다.
    삼성을 닫고 회사와 공장을
    기업하기 좋은 곳으로 옮기세요.
    여긴 삼성이 아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상속세도 이렇게 높아서야 원.
    다 빼앗아 나눠 먹겠다니,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겠다,
    이거 아닙니까? 

    필자도 이런 말이 홧김에 지르는 비명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화나는 것도,
    사람에겐 주관적으로 중요하다.
    왜, 난 화도 못 내고 사냐, 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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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뉴데일리DB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뉴데일리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