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륙 뒤 추가 피해 막으려 비상문 끝까지 지켜
  • ▲ 지난 26일 오후 제주공항에서 출발해 대구공항에 비상구 출입문이 열린 채 착륙한 아시아나항공기에서 한 승무원이 문에 안전바를 설치한 뒤 두 팔을 벌려 막고 있다. ⓒ대구국제공항 관계자 제공 / 연합뉴스
    ▲ 지난 26일 오후 제주공항에서 출발해 대구공항에 비상구 출입문이 열린 채 착륙한 아시아나항공기에서 한 승무원이 문에 안전바를 설치한 뒤 두 팔을 벌려 막고 있다. ⓒ대구국제공항 관계자 제공 / 연합뉴스
    지난 26일 상공을 날던 항공기의 문을 탑승객이 강제로 개방해 기내가 아수라장이 됐을 때 한 여성 승무원이 비상문을 온몸으로 막고 있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8일 MBN 보도에 따르면 지난 26일 오전 11시 40분경 제주공항을 출발해 대구로 향하던 아시아나항공 OZ8124편 항공기가 낮 12시 45분경 상공 213m 지점을 날고 있을 때 남성 승객 이OO(33) 씨가 항공기 비상문을 여는 위험천만한 행동을 했다.

    이때 승무원과 승객들이 밖으로 뛰어내리려는 이씨를 제압하면서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남성이 항공기가 착륙하고 나서도 비상문으로 뛰쳐나가려 하는 등 돌발 행동을 이어가자, 한 여성 승무원이 비상문에 안전바를 설치한 뒤 두 팔을 벌려 온몸으로 출입문을 막아섰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MBN과의 통화에서 "항공기는 파킹하기 전까지 계속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동 중에 해당 승무원분께서 안전바를 설치하고 막았다"며 해당 승무원이 문이 열린 채 항공기가 착륙하는 비상 상황에서 또 다른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이 같은 행동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한 바람과 기내 흔들림 속에서도 모든 승객들이 안전하게 내릴 때까지 비상문 앞을 지킨 이 승무원은 평소에도 책임감이 강하고 맡은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범인을 제압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구한 것"


    한편, 사고 당시 항공기 문을 개방한 범인을 제압해 '빨간 바지 의인'으로 불리는 이윤준(48) 씨는 29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그냥 (승무원들이)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인데 사고 동영상이 유출되면서 갑자기 '범인'으로 몰렸다가, 자고 일어나니까 '의인'이 돼 있었다"고 말했다.

    "(범인이) 바로 제 옆자리, 창문 방향 쪽에 앉아 있었다"고 설명한 이씨는 "저는 그냥 이어폰 끼고 음악 들으면서 이렇게 내려오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모자가 날아가고 헤드셋이 날아갔다"며 "그래서 그쪽 방향을 보니까 문이 열린 거다. 비상문이"라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이씨는 "어이가 없잖아요. 하늘에 구름도 보이고 이거 뭐지? 이런 생각도 들었다"며 "바람이 계속 나한테 불어 숨을 못 쉬는 상황이 1~2분 정도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비행기가 착륙하려고 하고 바퀴가 탁 닿는 순간, 제 대각선 2시 방향의 승무원과 눈이 마주쳤다"며 "그때 그 승무원이 '괜찮으세요?'라고 물어봐, '괜찮습니다'라고 하면서 제 손으로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그렇게 비행기가 착륙해서 달리는 상황에 갑자기 이 친구가 벨트를 풀었다"며 "시선을 승무원 쪽으로 돌리는 순간 승무원이 '도와주세요!'라고 말해 뭔가 싶어서 보니, 그 친구가 비상구 쪽으로 매달린 거다. 고개를 숙이면서 나가려고 하는 거다"라고 아찔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이에 "제가 그냥 왼손으로 (범인을) 잡았다"고 말한 이씨는 "닥치는 대로 목덜미 부근을 당길 때 승무원 3~4명과 승객들이 또 오셔서 그 거구의 친구를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이씨는 "당시만 해도 그 사람이 범인이라고는 생각 안 했다"며 "저희 입장에서는 하늘에서 문이 열렸을 뿐이고…, 사람이 문을 열었을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당시 범인은) 뭔가 째려보는 눈빛 그리고 좀 씨익 웃는 느낌도 있었다"며 "지금 생각하면 세상을 다 포기한 느낌도 있었다"고 묘사했다.

    이씨는 '빨간 바지 의인과 그 승무원 두 분이 최후까지 더 큰 사고가 나는 걸 막았다'는 진행자의 말에 "저는 그런 사람 아니"라며 "그냥 충분히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다. 그냥 '도와주세요'라고 했고, 승무원 분이 되게 침착하게 하셨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이날 운항 중인 항공기 비상문을 연 혐의(항공보안법 위반)로 긴급체포된 이씨는 '문을 왜 열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빨리 내리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너무 죄송하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8일 이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진행한 법원은 "이씨의 범행이 중하고 도주할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항공보안법 23조에 따르면 항공기 내에서 출입문, 탈출구, 기기의 조작을 한 승객은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