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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의 북한인권 칼럼 ③] 평양엔 '가짜 태양'…뉴욕엔 '진짜 태양'

UN본부 앞엔 매일 '윤태양' 떠오른다"자유 아니면 죽음 달라!"는 소리 없는 아우성 울려 퍼져

박선영 물망초 이사장(18대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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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2-10-02 09:48 수정 2022-10-02 22:56

▲ UN본부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탈북자 윤태양씨.ⓒ뉴데일리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영화 한 편을 봤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영화에서 '이상한 나라'는 남북한 모두를 가리킨다.
북한에서는 세계적인 수학자 리학성의 연구 결과가 무기 만드는데 쓰이고,
남한에서는 수학이 좋은 대학, 좋은 직장 가기 위한 도구로 쓰인다.
대강 이런 내용이 영화 줄거리의 3분의 2다.
아마도 그래서 영화 제목이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가 됐으리라.

그래도 영화 마지막엔,
그 수학자가 착한(?) 국정원 직원 도움으로 미국에 간다.
그리고 다시 수학 연구에 매진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 영화가 별로 기사화도 안 되고 인기도 끌지 못 한 이유가 짐작된다.
바로 미국을,
'이상하지 않은 나라, 내 꿈을 펼칠 수 있는 나라'
로 묘사했기 때문 아닐까?

게다가 영화 흥행의 3요소,
폭력-섹스-욕설도 전혀 없다.
한마디로 '재미' 없는 영화다.

하지만 나는 좋았다.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봤기에,
다들 잠든 비행기 안에서 이 글을 썼다.
영화의 잔상이 사라지기 전에 쓰고 싶어서. 

▲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포스터ⓒ뉴데일리

1. 수학적 용기와 인권적 용기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속 리학성은 말한다.

"수학을 잘 하려면,
머리가 좋거나, 죽어라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적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이 말을 들으며 나는,
뉴욕 UN본부 앞에서 날마다,
북한의 끔찍한 인권실태를 고발하는 윤태양씨가 떠올랐다.

윤태양씨는,
머리도 좋고 노력도 죽어라 하지만,
무엇보다도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김일성과 다른 연안파 노선을 걷는다는 이유로,
겨우 8살때 평양에서 함경북도 온성으로 추방되었다.
노동당 간부였던 아버지와 고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는,
하루 아침에 강제노동-강제농사 일 하며,
날마다 이념학습과 자아비판에 시달렸다.
8명이나 되는 형제자매들 모두 머리가 좋았지만,
사실은 그래서 더 억압을 받았다.
노력해도 소용 없었다.
아니 노력하면 할수록,
억압도 커졌다.
배움의 길도 막혔다.

고난의 행군이 끝나갈 무렵,
윤태양씨는 탈북했다.
이미 건강이 악화되어 있던 부모님과 가족은,
강도 산도 넘을 수 없는 상태.
아들은 5살.
부인은,
자기까지 떠나면 시부모는 어떡하고,
어린애 데리고 가다 잡히면 다 죽는다며 남았다.
결국 그는 혼자 탈북 했다.
용기를 낸 것이다.

일단 어머니 고향 강원도 춘천을 찾아가 인사 드리고,
돈 벌어 부모님께 약도 보내드리고 브로커도 사서,
다같이 남조선서 살아 보자며 용기를 냈다. 

2. A Better World 

구사일생.
그러나 다른 탈북자들에 비하면,
비교적 큰 사고 없이 빨리 한국에 도착했다.
어머니 친척들도 찾았다.
다들 잘 살고 계셨다.

그러나 신세 지고 싶지 않아,
서울로 와 죽도록 일했다.
닥치는 대로 일했다.
자지도 않고 일했다.
아니, 탈북 후 지금까지 마음 놓고 자본 적이 없었다.

날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쫓기던 순간들,
영문도 모르고 맞던 시간들,
부모 형제 처자식이 곤경에 처하는 스토리들.
이 모든 것들이 시공을 초월,
공포영화처럼 눈만 감으면 재연됐다.
영화서 리학성씨가 숙면을 취하지 못 하듯,
윤태양씨도 그랬다.

그래도 남한은 일하는 만큼 돈이 수중에 들어왔다.
이 악물고 돈 모아, 북한에 선을 넣었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곳.
그 곳은,
자본주의 사회 남한이 아니라,
전체주의 사회 북한.

그러나 차라리 찾지 말 것을...
병이 깊었던 부모님은, 
윤태양씨가 집을 나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돌아가셨다고 한다.
처자식과 가까이 살던 형제자매들 모두도,
부모님 돌아가신 두어 달 뒤 어느 날 밤,
트럭에 실려간 후 아무도 행방을 모른단다.

필시 어느 교화소로 끌려갔으리라.
아니면 더 깊은 산골로 추방됐거나.

그것도 모르고,
자기 혼자 날마다 배부르고 등따시게 지낸 자신이 너무 미워지더란다.
자괴감이 들더란다.

그때부터 북한의 참혹한 인권 상황 고발을 시작했다.
낮에는 여기저기 다니며 피켓 들고 일인 시위를 했다.
밤이면 먹고 살기 위해 야간 경비를 섰다.
월급 받으면 시위 용품을 샀다.

▲ 2012년 겨울. 박선영 당시 18대 의원은 중국정부가 탈북자들을 강제 북송하려는데 항의하며, 당시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텐트 치고 단식농성을 했다.ⓒ뉴데일리

2012년 초, 내가 하던 중국대사관 앞에서의 단식 농성 현장.
그 자리에도 동참하며 하루도 내 곁을 안 떠났단다.
목숨 걸고 자기들을 위해 단식하는 내가 눈물나게 고마워서 그랬단다.

그러나 일반 국민은 북한인권에 관심이 없고,
좌파는 점점 더 극악스러워지고,
돈 벌어도 보내줄 가족도 없는 상황에,
자꾸만 지치더란다.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고 북에 남겨둔 가족이 있다지만,
탈북자들 조차 북한인권이란 단어 앞에 나서려 하지 않는 현실이 너무 힘들더란다.

A better world vs. A worse world

분명히 자기가 사는 남한은 더 나은 세상,
A better world 이지만,
윤태양씨 마음 속은,
날마다 지옥,
점점 더 나빠지는,
A worse world였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국제사회에 나가, 북한 인권운동 함 해보자"
이런 생각이 불현듯 들더란다.

딸린 식구 없으니, 망설일 이유도 없었다.
그때부터 여권 내고 비자를 냈다.
그리곤 영어 한 마디 못 하고 돈도 없으면서
미국으로 왔다.
그가 겪었을 고생을 어찌 '산전수전'이란 4글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그래도 윤태양씨는,
"운이 좋았다"라며 웃었다.
도와주신 분들이 많았다고.

"단지 비행기값이 동부보다 싸다는 이유로 서부에 갔어요.
그런데 일면부지의 정용봉 회장님이나 변OO  총장님을 만났습니다.
그 분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함을 느껴 너무 좋았어요'"

윤태양씨의 작은 얼굴엔 주름이 한가득.
그레도 그는 활짝 웃었다.

진짜로 '더 좋은 세상'.
A better  World에 왔기에 그렇게 웃는 듯 했다.

3. 날마다 뜨는 뉴욕의 태양 

그렇게 윤태양씨도 영화 속 리학성씨처럼 미국에 왔다.
리학성씨는 착한 국정원 직원의 도움으로 왔지만,
윤태양씨는 순전히 자기 노력으로 왔다.

리학성씨는 좋은 연구소에서 수학을 연구하지만,
배운 것 없는 윤태양씨는 리학성씨가 한국서 했던 경비일을 미국에서 한다.
낮에는 UN정문 앞에 나가 1인 시위를 하고,
밤에는 야간경비 일을 한다.

그래도 막일 하던 한국보다는,
미국에서의 야간 경비 일이 훨씬 수월하단다.
일단 막노동이 아니고,
말이 경비지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누군가 건물 가까이 접근하면 알람이 울리고,
동시에 "가까이 오지 마라, 빨리 돌아가라"는 방송이 나간다고 한다.
그것을 CCTV로 지켜보며,
그래도 계속 접근하거나 진입을 시도하면,
911에 신고하는 게 일이란다.

잠 못자는 게 힘들지만,
어차피 집에서도 잠 못자니 괜찮단다.

밤일이라 수당도 훨씬 더 많고.
집은 히스패닉하고 공유하는 작은 방 하나가 다지만,
착해서 말동무도 되고,
무엇보다도 돈이 절약되니 좋단다.
다만 밥 해먹을 수 없어 그게 좀 힘들단다.

그러면서도 나랑 같이 먹은 코리아타운 갈비탕 집에서,
굳이 자기가 밥값 내겠다고 했다.
정말 고마웠던 나의 그 단식을,
자기는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단다.
그래서 자기가 꼭 내야 한다고 고집 부려 한참을 옥신각신했다.

그런 사람이다.
윤태양씨는.

▲ 박선영 전 의원이 2022년 9월 미국 뉴욕 UN본부 앞에서 "국군포로 송환"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뉴데일리

내가 "국군포로 송환"을 담은 피켓 들고 UN본부 앞에서 1인 시위 하던 날.
윤태양씨는,
북한인권 참상과 웜비어 사건 담은 인쇄물을 난간에 쭉 붙여 놓았다.

▲ 매일 UN본부 앞에서 1인 시위 하는 윤태양씨.ⓒ뉴데일리

그리고 그는 피켓 들고 서있었다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

그가 든 피켓 속 외침.

아침 10시부터 12시까지 하루도 안 빠지고,
그는 매일 그렇게 시위를 한단다.

▲ 박선영 18대 의원이 2022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 중단 촉구 결의안'에 대한 제안설명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주변엔 각국에서 온 인권운동가들이 그득했다.
타지히스탄, 몽골, 홍콩, 대만, 중국, 심지어 일본 등.
주로 아시안들이 각 국당 수 십명씩 몰려와 다양한 주제로 수백명이 시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코리안은 딱 한 사람.
윤태양씨 뿐.

내가 안 나갔다면,
그날도 여느 때처럼 윤태양씨 혼자였을 것이다. Q. E. D.

편집자 주 
:
Q.E.D.는 라틴어 문장 "Quod erat demonstrandum"의 약자.
이것은 유클리드와 아르키메데스가 자주 쓰던 그리스어 문장 "ὅπερ ἔδει δεῖξαι" (hóper édei deĩxai)를 라틴어로 옮긴 것.
직역하면 "이것이 보여져야 할 것이었다"가 된다.
이 약자는 수학에서 증명을 마칠 때 자주 사용한다.   <위키백과>

북한인권 운동은,
국내나 국외나 외롭다는 것을 완벽하게 '입증'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태양은 오로지 하나 뿐!
북한엔 '가짜 태양'이,
그것도 오래 전에 죽어 태양절로 박제되어 있다.

하지만 UN본부 앞엔,
'진짜 태양'이,
오늘도 내일도, 매일 뜰 것이다.
<어느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영화에 나오는 오일러의 법칙(Euler's Equation)처럼.

▲ 1인 시위를 끝내고 시위용품을 정리해 돌아가는 윤태양 씨 뒷모습. 박선영 전의원 촬영. ⓒ뉴데일리

정오가 되자 시위물품을 정리해 커다란 가방에 담아 작고 가녀린 어깨에 둘러매고 터덜터덜 멀어져 가는 윤태양씨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메어 왔다.

저 외로움을 어찌 할꺼나?
강에 놓아줄 거북이도 이젠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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