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 취임…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개혁·개방 정책 펼쳐미소 간 핵군축 협정, 베를린 장벽 붕괴 및 독일 통일 등으로 냉전질서 붕괴 촉발했다 평가
  • 1990년 6월 샌프란시스코를 찾았던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소련 공산당이 해체하기 전이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990년 6월 샌프란시스코를 찾았던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소련 공산당이 해체하기 전이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냉전 질서 붕괴를 촉발했던 소련의 마지막 대통령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고르바초프가 지병으로 숨졌다. 항년 91세.

    타스 통신, 스푸트니크 뉴스 등 러시아 매체들은 30일(이하 현지시간)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오랜 투병 끝에 오늘 저녁 사망했다”는 러시아 중앙임상병원의 이야기를 전했다.

    1931년 3월 러시아 출신 부친과 우크라이나계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유리 안드로포프가 물러난 뒤인 1985년 3월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장으로 추대됐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초기에는 소련 체제를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던 그가 소련 체제를 개혁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1986년 4월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일어난 체르노빌 원전 노심 융용 사고였다.

    이후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소련의 혁신을 목표로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을 폈다. 그는 1985년부터 1987년 사이;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3번의 회담을 가지면서 핵군축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결과적으로 1989년 11월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동서독 통일의 밑거름이 됐고, 이는 다시 ‘바르샤바 조약기구’로 불리던 동유럽 국가들의 탈소련화와 탈공산주의화를 일으켜 냉전 체제를 무너뜨리는 원동력이 됐다.

    그는 1990년 6월에는 수교를 하지 않은 우리나라와 사상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리고 같은 해 미소 핵군축협정 체결의 공로로 노벨 평화상도 받았다.

    하지만 1991년 8월 그의 개혁·개방 정책에 반발하던 소련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같은 해 12월 소련 공산당이 연방에 속해 있던 공화국들의 독립을 허용하면서 소련이 해체됐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도 권좌에서 물러났다.

    정치권에서 떠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재단을 설립해 활동했다. 그는 올해 초까지 모스크바 외곽의 전원주택에서 지냈던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