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심 재판부 '도주치상' 혐의 두고 상반된 판단대법 "서행했다면 사고 피할 수도... 운전자, 주의 의무 위반"
  • ▲ 대법원. ⓒ정상윤 기자
    ▲ 대법원. ⓒ정상윤 기자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 인근에서 길을 건너던 보행자가 급정거한 차량을 보고 넘어져 다친다면 운전자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30일 특정 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치상)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소형 트럭을 몰던 A씨는 2020년 4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B양을 보고 급정거했지만 B양은 놀라 넘어졌다. A씨는 차에서 내려 B양에게 괜찮은지 물었고, B양은 "괜찮다"고 대답했다. 이에 A씨는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현장을 떠났다. 

    이 사고로 B양은 부모에게 무릎 통증을 호소했는데,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전치 2주'였다.

    이에 검찰은 A씨가 B양을 다치게 해 놓고도 인적사항을 남기거나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에서 사라졌다며 뺑소니에 해당한다고 봤다. 

    1심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그대로 인정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지만, 2심은 무죄로 판단을 뒤집었다.

    2심 재판부는 목격자 증언 등을 검토한 결과 A씨가 운전한 차와 B양의 신체가 물리적으로 부딪쳤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A씨가 당시 서행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운전자로서 주의를 기울였어도 사고를 막지 못했을 수 있다는 점을 참작 사유로 들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날 A씨가 천천히 운전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재판단했다. 횡단보도 부근에서 도로를 건너려는 보행자가 흔히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기에 운전자 A씨가 주의를 기울였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A씨 트럭이 B양을 직접 충격하지 않았더라도 A씨가 횡단보도 부근에서 안전하게 서행했더라면 사고 발생을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A씨의 업무상 주의 의무 위반과 사고 발생 사이의 상당 인과관계를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사건을 파기환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