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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일타 쇼호스트' 문석현 "30억 스카웃 제의보다 구강세정기 완판이 더 기뻐"

연평균 매출 천억 대 '쇼호스트' 문석현이 밝히는 '고품격 대화법'"비키니처럼 핵심을 공략하라" "안 하면 손해라는 점을 어필하라""진심 파는 쇼호스트 꿈꿔"…책·강연·유튜브로 스피치 노하우 전수

입력 2021-11-24 19:41 | 수정 2021-11-24 19:41
"아이유와 김창완이 부른 '너의 의미'라는 노래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없어요. 그런데 노래를 들으면 100% 사랑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되죠. 홈쇼핑도 마찬가지입니다. 돌려서 말하되, 어떤 제품의 장점이 연상될 수 있도록 말하는 사람이 진짜 훌륭한 쇼호스트죠."

방송계에서 일명 '스피치왕'으로 통하는 베테랑 쇼호스트의 입에서 '콜이 쏟아지는' 고급 노하우들이 술술 흘러나왔다. "비키니처럼 짧은 단어로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말을 해라", "이걸 하면 좋은 점보다, 안 하면 '손해'라는 점을 어필하라", "무의식 속에 있는 중심을 건드려라", "거짓말 하지 마라."

평범한 아나운서에서 십수년 만에 업계를 주름잡는 '설득의 달인'으로 거듭난 쇼호스트 문석현(52)의 인생역정을 듣기 위해 마련된 인터뷰 자리가 졸지에 스피치 강좌로 돌변했다.

문석현은 "교통방송에서 아나운서로 일할 때 한 선배가 비키니를 예로 들며 '가장 짧은 단어로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좋은 아나운서가 될 수 있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며 "쇼호스트 초창기, 낯선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이 조언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교통방송 시절엔 주어진 원고만 읽었기 때문에 별다른 어려움을 못 느꼈는데 홈쇼핑에선 원고 자체가 없어 너무 힘들었어요. 테이블에 상품이 하나 있고, 그 앞에 카메라가 한 대 있어요. 그리고 쇼호스트가 혼자 두 시간을 막 떠드는 거예요. 세상에…, 처음엔 다들 천재인 줄 알았어요."

2002년 CJ홈쇼핑으로 스카웃 된 문석현은 처음엔 순서만 대충 정하고 바로 카메라를 돌리는 방송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중 무심결에 선배가 조언했던 내용이 떠올랐고, 그 순간 '상품의 특장점을 짧은 문장으로 응축해 던져야겠다'는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게 바로 제가 책으로 펴낸 '비키니 화법'이예요. 비키니는 가장 작은 천으로 전체를 커버하잖아요. 말도 그래야 한다는 거죠. 어떤 상품의 장점을 짧은 문장으로 딱 던지면, 보는 분들이 '아, 이거구나' 하고 물건을 사는 거죠. 이런 이치를 터득하자 콜이 늘어나고 매출고가 올라가더라고요."

문석현은 "지금도 CJ홈쇼핑에서 첫 방송을 했던 날이 생생하게 떠오른다"며 "보조 MC로 들어갔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무릎이 파르르 떨리고, 표정은 말 그대로 어색함의 극치였다"고 회상했다.
"겉으론 웃고 있는데 속으론 울고 있었죠. 그렇게 정신 없이 방송을 마쳤는데 교통방송에 있던 친구한테 전화가 왔어요. '석현아, 어제 방송 봤어. 아나운서실 가보니까, 네 책상 아직도 있더라. 아무래도 거기는 너랑 안 맞는 것 같다. 다시 와라'.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더라고요."

문석현은 "친구의 날선 조언을 듣고 오기가 생겼다"며 "'가긴 어딜 가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여기에서 끝장을 보자'는 독한 마음을 먹고, 그때부터 국회 도서관을 다녔다"고 말했다.

"일전에 선배가 해준 조언을 곱씹어 보고, 화술에 관한 책들을 모조리 독파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관련된 책이란 책은 다 읽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논문이 나온 거죠."

문석현은 "쇼호스트가 방송에서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가 뭐가 있는지, 어떤 걸 잘했을 때 시청률이 올라가고, 매출이 늘어나는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며 "그 결과 홈쇼핑 쇼호스트의 세가지 역량(이미지, 화술, 실연) 중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실연 능력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외모(이미지)에 의한 효과는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며 "홈쇼핑 시청자들은 제품을 직적 사용하거나 능숙하게 조작하는 쇼호스트의 모습에서 깊은 인상과 호감을 얻고, 미남·미녀보다 신뢰와 호감이 가는 쇼호스트를 더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2004년 2월 문석현이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석사논문으로 발표한 '쇼호스트가 시청자의 제품 구매에 미치는 영향 연구'는 쇼호스트에 대한 최초의 연구 논문으로 기록됐다. 홈쇼핑 시청자 108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된 이 논문은 당시 쇼호스트와 지망생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문석현의 등장 이후 홈쇼핑 업계의 트렌드도 바뀌었다. 당시 제품을 홍보하는 보조 기능에 머물렀던 쇼호스트가 방송의 전면에 나서 아나운서처럼 방송을 진행하는 지금의 포맷으로 변화한 것.

"당시만 해도 사람보다 제품이 우선이었어요. 카메라가 제품만 잡는 거예요. 쇼호스트는 손만 나오고…. 그래서 제가 말했죠.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설득하는 거다. 말도 중요하지만 넌버벌 랭귀지도 중요하다. 사람에 초점을 맞춰달라'고 주문했어요."
문석현은 "쇼호스트가 제품을 팔기 위해 방송을 하고 있지만, 결국 그 제품을 사는 건 사람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며 "무작정 제품의 장점만 보여주려 하지 말고 사람을 설득하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품을 파는 홈쇼핑에, '사람이 먼저'라는 개념을 적용시킨 문석현은 어느덧 회사에 연평균 천억 대의 매출을 안기는 톱클래스 쇼호스트가 됐다. 보험상품을 팔며 1시간에 1만콜이라는 신기록을 세웠고, 수억대 벤츠를 1시간에 10대 팔아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탁월한 언변과 실력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주위에서 숱한 러브콜이 쏟아졌다. 한 번은 모 보험회사가 연봉 30억원에 스카웃 제의를 한 적도 있었다고.

"어느 날 제 앞으로 '손편지'가 한 장 왔어요. 모 보험회사에 계신 분인데, 제가 쓴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며 식사라도 한 번 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어요. 살펴 보니 같이 일하고 싶다는 이메일도 와 있더라고요. 그래서 '감사하지만 저는 생각이 없습니다'라는 답장을 보냈는데, 나중엔 제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까지 하시더라고요." 
문석현은 "결국 일식집에서 그분을 만났는데, 제가 책에 썼던 내용을 그대로 하셔서 놀랐다"며 "당시 보험회사로 오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30억이라는 돈보다 내가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에 정중히 거절했다"고 말했다.

"제가 '사람과 소통할 때 눈을 마주쳐라. 만나면 그 사람의 옷부터 벗겨라. 벗기지 못하겠으면 신발이라도 벗겨라'라고 쓴 대목이 있는데, 그분께서 저를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방으로 안내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본인 자켓을 딱 벗더니, 저더러 '불편하지 않으시면 벗으시죠'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웃음) 그 자리에서 30억 얘기가 나온 거죠."

문석현은 "물론 돈도 중요하지만 방송을 하면서 얻는 '짜릿함'과 '보람'은 그 무엇과도 바꾸기 힘들다"며 쇼호스트 초창기 겪었던 한 일화를 소개했다.

"한 8월 무렵일 겁니다. 제가 처음으로 메인에 섰던 방송인데요. 제가 소개하기 전에 이미 세 번이나 실패했던 구강 세정기를 파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회사에서 잘 나가는 메인 쇼호스트들도 다 저조한 실적을 보였는데, 아무리 경력으로 들어왔지만, 갓 입사한 제가 얼만큼 더 잘 할 수 있겠습니까. 업체도 불안해 하고, PD도 불안해 하고, MD도 불안해 하고, 저도 불안했죠. 솔직히 제가 어떻게 방송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요. 1시간 동안 저 혼자 막 떠들고 밖으로 나왔는데, 업체 관계자분께서 저한테 막 달려오시더니 120도로 절을 하시는 거예요."
문석현은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그분에게는 마지막 기회였던 것 같다"며 "그날 제가 망쳤으면 말 그대로 회사가 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콜이 많이 나와 기사회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 '상품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앞으로 어떤 제품이 나오더라도 대충 해선 안 되겠다. 최선을 다해 최대한 장점을 뽑아 어필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고 말했다.

문석현은 "홈쇼핑 특성상 비슷비슷한 제품들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며 "사실상 카피 제품이지만 쇼호스트는 그 어떤 선입견도 가지면 안 된다. 그 안에서 그 제품 만의 특장점을 뽑아 내야 한다. 그게 쇼호스트의 운명"이라고 단언했다.

그렇다고 제품의 성능을 과장되게 부풀려 홍보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라고 강조한 그는 "홈쇼핑은 심의가 센 만큼 정직할 수밖에 없다"며 "있는 사실 외에 다른 걸 덧붙이거나 과장하면 바로 날아간다"고 설명했다.
문석현은 "심의 문제도 있지만 사람에게 제품을 파는 쇼호스트는 '인성'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그래서 후배들을 교육할 때 거짓말하지 말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 임기응변으로 거짓말을 하나둘 하다보면, 나중엔 거짓말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소시오패스'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가끔 후배들에게 PPT를 시켜보면, 하다가 말문이 막힐 때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가령 '지금 주문이 굉장히 많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금 지켜보고 계시는데요'. 이런 식인 거죠. 그러면 저는 이렇게 얘기하죠. '거짓말 하지마. 너를 속이는 순간부터 네 안에는 지금 거짓말이 쌓여 있는 거야. 그게 1년이 되고 5년이 되고 10년이 되면, 거짓말을 해도 아무렇지 않은 소시오패스가 되는 거야'."

문석현은 "쇼호스트는 용병이나 마찬가지지만 어떤 의미에선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 될 수 있다"며 "소비자들에게 '진심'을 파는 쇼호스트가 되자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곤 한다"고 말했다.

19년째 쇼호스트 생활을 하며 체득한 다양한 스피치 노하우를 책으로 펴내고 있는 그는 "이쪽 업계로 들어선 후 스피치 관련 책을 10권 내기로 마음 먹었는데, 아직까지 50%밖에 달성하지 못했다"며 "나머지 50%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돼 있지 않을까 한다"고 미소 지었다.

끝으로 그는 "영상 시대에 발맞춰 유튜브 채널(문석현TV)도 만들었다"며 "저만의 노하우가 담긴 스피치 비법을 영상으로도 공개할 계획이니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취재 = 조광형 기자
사진 = 정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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