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인권침해 조사, 결론은 뻔한 것"… 인권위 내부서도 공정성 우려 커져
  • ▲ 유재수 전 부산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 무마' 의혹을 받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구속전피의자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뉴데일리DB
    ▲ 유재수 전 부산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 무마' 의혹을 받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구속전피의자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뉴데일리DB
    청와대가 ‘조국 가족 인권침해 조사’ 개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압박했다는 비판이 제기된 가운데, 인권위 내부에서도 기관 독립성과 조사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일 청와대는 '국가인권위가 조국 장관과 가족 수사 과정에서 빚어진 무차별 인권침해를 조사해달라'는 국민청원에 대해 인권위에 협조공문을 보냈다. 청원 개시 후 한 달새 20만 명 이상이 동의해 청와대가 답변해야 했기 때문에, 인권위가 이에 대해 조사를 개시할지 여부를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공문은 대통령비서실장 명의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청와대가 인권위에 압력을 행사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인권운동사랑방·다산인권센터·광주인권지기활짝 등 15개 인권운동단체는 15일 공동성명을 통해 "인권위는 청와대가 조사를 지시하는 하부 행정기관이 아니다. 인권위에 국민청원을 전달하는 공문이 발송된 자체만으로 인권위의 독립성이 침해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가 대통령비서실장 명의로 국가기관에 공문을 보낸 것은 '전달'이 아니라 '지시'로 보이기에 충분하다는 비판이었다.

    인권위 내부서도 독립성·공정성 침해 우려 커… “청와대가 지시한 건데 결론은 뻔한 것”

    21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 사안에 대해 인권위 내부에서도 청와대의 압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큰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위원들이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조사관들에게 책임을 떠넘긴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소속 직원만 열람·작성할 수 있는 인권위 자유게시판에는 이런 취지의 글이 13일 게시됐다. ‘조 전 장관 사건 조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란 제목의 익명의 글은 “인권위의 독립성이 시험대에 올랐다”며 인권위 직원들이 청와대의 ‘협조’ 요청을 ‘압박’으로 느끼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 글은 이어 “인권위원들도 조사관들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입장을 밝혀달라”며 인권위원들의 청와대 ‘눈치보기’를 지적했다. 

    댓글 역시 청와대에 대한 반발 심리가 그대로 드러났다. ‘(조 전 장관 가족은) 건국 이래 어떤 범죄 행위자보다 특권을 누린 가족’ ‘힘 있는 자들이 인권위를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등의 의견이 그랬다. ‘청와대가 사실상 지시한 건데,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는 셈’이라며 ‘자포자기’한 듯한 반응도 있었다.

    박찬운 상임위원, ‘조국 가족 인권 침해 조사’ 기피 신청했지만 공정성 논란은 계속

    문재인 대통령 지명을 거쳐 13일 상임위원으로 임명된 박찬운 위원(58)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올드 걸’에 이어 ‘올드 맨’까지 인권위를 장악하려 한다”는 글은 박 위원 임명에 대한 인권위 내부의 불안감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인권위 관계자는 “초창기 인권위 설립을 주도한 최영애 인권위원장에 이어 당시 함께한 박 위원까지 돌아와 인권위가 한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크다고 걱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찬운 위원은 인권위 상임위원으로 임명되기 전 자신의 SNS 등을 통해 조국 전 장관을 옹호하고 검찰 수사를 비판했던 인물이다. 또 17일 '검찰의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가족 일가 수사 과정에서 나온 인권침해 사안을 조사해 달라'는 진정을 낸 은우근 광주대 교수와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조국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인권위 조사가 진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19일 사법시험준비생모임은 "박찬운 위원은 조국일가 진정 사건에 대하여 검찰수사가 과도하다는 부정적 입장을 수차례 피력한 바 있으므로 해당 진정 사건을 공정하게 심사할 수 없으므로 기피 또는 회피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논란을 의식한 듯, 조 전 장관 관련 진정을 담당하기로 예정됐던 박 위원은 17일 최 위원장에게 진정 회피를 신청했다. 이와 관련, 인권위의 한 인사는 “(박 위원이) 안팎에서 공정성 논란이 거세지자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고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인권위는 7일 청와대의 공문을 접수한 다음날인 8일 '진정 제기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취지의 회신 공문을 청와대에 보냈다. 국민청원이 익명으로 제기돼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2조에 따라 조사 개시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이후 13일 청와대가 공문 폐기를 요청하며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박찬운 상임위원과 친분이 있는 은우근 교수가 직접 인권위에 진정을 내면서 조사에 대한 공정성·독립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정가에서는 인권위가 이 사안을 어떻게 결론을 내리든 정치적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거란 의견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