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사체 등 결정적 증거 발견 안 돼"… "CCTV 등 간접증거 많아, 혐의 입증 가능"
  • ▲ 얼굴을 가리고 제주지검으로 들어가는 고유정.ⓒ뉴시스
    ▲ 얼굴을 가리고 제주지검으로 들어가는 고유정.ⓒ뉴시스
    "피고인의 자백이 그에게 불이익한 유일한 증거인 경우,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

    형사소송법 310조에 명시된 자백보강법칙이다. 자백보강법칙은 자백의 진실성을 담보할 만한 보강증거가 없으면 자백의 증명력을 인정하지 않는 제도다.

    최근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 사건’의 경우 현재까지 피의자 고유정(36) 씨의 일부 혐의를 인정하는 자백만 있다. 사건 해결을 위한 유력 단서 중 하나인 ‘피해자 사체’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직접증거 없이 고씨의 자백만 있는 상황에서 재판에 넘겨진다면, 고씨의 살인·사체유기 혐의는 유죄로 인정될 수 있을까.

    '전 남편 살해' 고유정, 직접증거 없어

    20일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고씨는 5월25일 제주의 한 펜션에서 전 남편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4일 고씨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해 구속했다. 당초 범행을 부인하던 고씨는 일부 증거가 나오자 정당방위 차원의 범행이었다고 말을 바꿨다. 자신을 성폭행하려는 전 남편을 막기 위한 ‘우발적 살인’이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증거는 CCTV 영상과 인터넷 기록 등이다. 경찰은 고씨가 칼 등을 미리 구매한 영상, 문제의 펜션을 오간 영상, 휴대전화와 컴퓨터 등으로 ‘살인도구’ 등을 검색한 점 등을 근거로 고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경찰은 고씨의 진술 등에 따라 제주~완도 항로, 경기 김포 등을 시체 유기 장소로 보고 수색을 벌였다. 일부 장소에서 뼛조각 등이 발견됐으나 전 남편의 시체라는 명확한 증거는 아직 없다. DNA가 검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정적 증거인 ‘피해자 사체’가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씨의 유죄 입증이 가능할까.

    법조계는 ‘고유정 사건’의 경우 시체가 발견되지 않아도 유죄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CCTV 같은 간접증거가 자백을 ‘보강할 수 있는 증거’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 ▲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고유정이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받을 것이라는 법조계 의견도 있다.ⓒ정상윤 기자
    ▲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고유정이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받을 것이라는 법조계 의견도 있다.ⓒ정상윤 기자
    서정욱 법무법인 민주 변호사는 간접증거만으로도 고씨는 무기징역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전 남편이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 펜션에 제3자가 들어오고 나간 CCTV 영상이 없는 데다, 고씨가 칼을 산 것도 CCTV 영상에 담겼다”며 “범행도구 구입 등도 간접증거인데, 이 같은 간접증거는 보강증거로 간주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간접증거가 (시신과 같은) 직접증거보다 우월한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법조계 "간접증거 만으로도 혐의 입증 가능"

    최진녕 법무법인 이경 변호사는 “고유정이 자백하고 있고, 범행 현장에서의 혈흔, 고유정 자동차에 남은 혈흔과 제주~완도 카페리에서 시신이 든 것으로 보이는 봉투 여러 개를 바다로 버리는 CCTV, 인천에서의 추가적 시신 유기 정황 등이 있다”며 “이를 종합하면 설령 사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충분히 살인·사체유기 등의 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변호사들도 비슷한 견해를 냈다. 김기수 변호사는 “직접증거인 시신이 중요한데 없으니, 자백 그리고 그 자백의 신빙성을 보강하는 간접증거가 필요하다”며 “(간접증거인) 자백 후 확보된 CCTV 영상이 본인 진술과 일치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김대환 변호사도 “시체가 없어도 ‘정황증거’인 간접증거가 있는 데다 자백이 있어 유죄로 인정될 것”이라며 “자백보강법칙은 정황증거도 보강증거로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허남욱 변호사는 “보강증거의 범위는 판례상 ‘범죄사실의 전부 또는 중요 부분을 인정할 수 있는 정도가 되지 않아도 피고인의 자백이 가공적인 것이 아닌 진실한 것임을 인정할 수 있는 정도만 되면 직접증거 아닌 간접증거, 정황증거도 보강증거가 될 수 있다’고 판시한다”고 설명했다.

    허 변호사는 "가장 중요한 ‘범죄의 고의’ 부분은 판례상 피고인의 자백 만으로도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며 "자백이 있다면 나머지 범죄의 객관적 구성요소에 대해서만 보강증거가 있으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핵심은 '범죄의 고의'… 판례는 자백만으로도 인정

    다만 "고유정 사건의 경우 피의자가 일종의 과잉방위에 기한 과실 정도만을 인정하고 있어 이러한 고의 부분도 모두 보강증거가 필요하다고 보인다"며 "아직 살인에 대해서는 자백이 이뤄지지 않아 향후 공판 과정에서 자백할 경우가 문제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형사소송법 309조는 ‘자백이 고문·폭행·협박 등 방법으로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자백을 유죄증거로 하지 못한다’는 자백배제법칙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