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금 인상·준공영제' 꺼냈으나 지자체 입장차 극복 못해… 與 "협상 지켜볼 것" 입장만
  • ▲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버스 노조가 예고한 파업을 하루 앞둔 14일 정부 여당은 의견 조율에 실패를 거듭하며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오전 버스 파업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계획했던 비공개 당정협의를 연기했다. 지자체별로 여러 여건과 입장이 달라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정책 입안 당사자인 여권이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가장 큰 피해자인 버스 기사들의 문제를 알고도 수수방관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전날 비공개 당정청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지자체별로 버스 요금 인상이 필요한 곳도 있고, 준공영제가 실시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인상) 수요가 덜한 곳도 있고, 요금 인상을 했을 경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분담 문제 등에 대한 의견이 상이해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노동쟁의를 신청한 전국 245개 버스 노조 대부분은 핵심 요구 사항으로 5∼30%의 임금 인상과 근무시간 단축을 내걸고 있다. 경기 버스 노조가 시급을 30% 가깝게 올려달라고 요구해 노사 간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고, 서울을 비롯한 나머지 지역 노조도 시급 5∼16% 인상과 함께 근로시간 단축을 함께 요구하고 있다. 이들 노조 대부분(약 200개)은 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한 업체 소속이어서 이미 주 52시간 이하 근무가 이뤄지고 있다.

    민주당은 버스 노조 측을 달래고 있지만 사실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일단 내놓은 것은 '준공영제' 카드다. 이해찬 대표는 전날 "앞으로 전체적으로 대중교통수단에 준공영제를 실시하는 쪽으로 당 정책 방향을 잡아야겠다"고 말했다.

    이해찬 제시 준공영제 전국 확대, 세금 지원이 걸림돌

    준공영제는 지자체가 버스업체의 운송 수입을 관리하면서 적자가 발생하면 업체에 재정을 지원하는 제도로, 현재 서울 등 7개 광역단체는 도입했으나 전남 등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 완전히 도입되지 않았다.

    문제는 재정이다. 지자체가 모든 재정을 떠안아야 하는데 지자체는 정부 보조금만 바라보고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선 버스 요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도 내부적으로 요금 인상이 전제돼야 한다고 보고 있지만 반대 여론이 불 보듯 뻔해 공식적인 당론을 쉽게 내놓지 못하고 노사 간의 협의를 계속 지켜보겠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요금 인상 여부를 두고도 각 지자체 간 입장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다. 준공영제를 원하는 경기도 등 다른 지역에선 요금 인상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는 서울 등 환승이 연계되어 있는 지역과 함께 요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준공영제가 이미 시행 중인 서울 등 일부 지역은 요금 인상 요인이 없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조 정책위의장은 14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전국버스노조 역시 시민들이 겪게 될 불편과 불안을 감안해 파업만은 자제해 줄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면서 "다행히 어제 대구에서 버스 노사가 합의해서 파업을 철회했다. 다른 지역 역시 버스노사와 해당 지자체가 관계 부처가 발표한 지원 대책을 바탕으로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해법을 도출해 줄 것을 당부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창원 등 일부지역에선 최종협상이 결렬되면 예정대로 15일부터 파업에 돌입하겠다는 입장이다. 버스가 멈추게 되면 그 여파가 모두 정부여당의 몫이 되기 때문에 민주당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한국당 "'서민들의 발' 버스까지 묶어놓는 무능"

    야권에서는 이번 사태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대책 없이 밀어붙인 청와대와 여당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만희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대책 없이 일을 저질러 놓고 국민에게 뒷수습을 하라는 격이며, 늘 그래왔듯 주먹구구식 정책에 땜질식 처방만 남발하고 있다"며 "민생의 위기가 찾아왔고 서민들은 살려달라고 아우성인데, 이제는 ‘서민들의 발’인 버스까지도 그 무능함으로 묶어놓을 태세"라고 비판했다.

    이 대변인은 "김수현 정책실장이 염려한 ‘버스사태’는 정권 차원에서 추진해온 주52시간 근무제를 무작정 밀어붙인 게 원인이지, 공무원들이 이상한 짓을 하고 자기 업무를 소홀했기 때문이 아니며 국토부 장관의 공백 사태를 초래한 것도 투기꾼과 다름없는 후보자를 임명한 청와대의 책임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경욱 한국당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시대착오와 오류에 빠져있는 정부여당은 ‘요금 인상, 세금 지원’을 대책이라고 입에 올리며 국민들의 탄식과 한숨만 자아내고 있다"며 "문재인 정권의 잇따른 헛발질을 왜 국민들의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가. 정책은 실종됐고, 정권의 국가 재정 낭비, ‘세금 마약’ 의존증이 다시금 금단 증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민 대변인은 "주 52시간 근무제를 강행하며 더 일할 수 있고, 더 일하고 싶어 하는 버스 기사들을 억지로 집으로 보내더니, 임금 감소를 보장해 달라던 버스 기사들의 호소를 1년 넘게 모르는 척 흘려듣더니 결국 버스 대란이 눈앞에 닥치자 요금 올리고 세금 몇 푼 쥐여주면 그만이라는 태도가 무책임하다"고 질타했다.

    인천버스 파업 모면…3년간 임금 20% 인상·정년 2년 연장

    한편 인천시 시내버스 노사는 이날 임금 인상률 등에 전격 합의함에 따라 파업 위기에서 벗어났다. 인천 버스 기사 임금을 올해 8.1%, 2020년 7.7%, 2021년 4.27% 올리는 등 3년에 걸쳐 현재 수준보다 20% 이상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인천시는 일단 버스 요금 인상 없이 인천시 버스 준공영제 예산을 늘려, 임금 인상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요금 인상도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