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의 교훈⓵]국가사회주의 실험하다 ‘파산’... 10년 전 ‘묻지마 찬양’하던 국내 언론들
  • ▲ 故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 뉴시스
    ▲ 故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 뉴시스
    지난 2006년 KBS 스페셜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차베스의 도전(연출 이강택)'이라는 특집 기획물을 통해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가 기치로 내건 '반미주의'와 '국가사회주의 실험'을 소개했다. 베네수엘라의 체제 실험을 미화하는 내용이었다. 

    KBS의 보도가 신호탄인 양 국내의 '전문가'들은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띄우기에 나섰다. 노골적으로 차베스를 찬양하는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베네수엘라 혁명 연구모임 엮음)'라는 책이 나왔다. 한겨레신문에는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길을 묻자"는 거창한 제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좌파 언론들은 6월 항쟁 20주년을 기념한다는 명분으로, 자국 언론을 탄압하는데 앞장섰던 차베스를 영웅으로 추켜세우는 보도까지 쏟아냈다. 외신들은 이미 차베스를 '새로운 유형의 독재자'로 치부하던 시기였다. 찬양 일색의 차베스 묘사는 이례적이고, 고집스러웠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국가사회주의 실험 10년... '망국' 목전에 둔 베네수엘라

    지난 한 해 베네수엘라 국민의 몸무게가 평균 11㎏ 줄었다는 통계가 있다. 80%에 가까운 국민이 식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60%는 저녁을 굶은 상태로 잠이 든다는 충격적인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이 100만%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생필품 공급량은 10년 전과 비교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고 식량 공급률도 재작년보다 67% 감소했다. 의약품마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말라리아, 결핵, 홍역이 창궐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최근 수년 간 수백만 명의 국민이 먹을 것을 찾아 베네수엘라를 떠났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미 60억달러에 달하는 채무에 대해 디폴트를 선언한 상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임금을 6000% 인상하고, 볼리바르화를 96% 절하한다는 긴급 조치를 내놨지만 이 같은 대응책이 되레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야말로 '답 없는' 경제 위기가 베네수엘라를 사지로 몰아넣고 있다. 유일한 수입원인 석유생산량은 3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세계 최대 석유매장량을 자랑하며 한때 미국 빈민층에 난방유를 무상 공급하겠다는 호언장담했던 나라가 이제는 국민 대다수가 쓰레기통을 뒤지는 '최빈국'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차베스 이은 마두로 대통령의 '포퓰리즘'

    6.25 전쟁 당시 우리나라에 10억달러를 원조할 정도로 탄탄한 국가재정을 과시했던 베네수엘라는 90년대 후반 '무상복지정책'을 앞세운 우고 차베스가 정권을 잡으면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풍부한 오일달러를 바탕으로 무상교육, 무상급식, 무상의료 정책을 적극 추진하면서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적게 일하고도 잘 살 수 있다'는 헛된 환상을 심어줬다. 석유수출산업이 정부 재정의 75%를 차지하는 기형적 구조를 타파하지 않고, 석유기금을 통한 빈민 지원 사업이나 노동 환경 개선 등에만 매달렸다. 

    그 결과 배럴당 100달러가 넘는 기름값이 절반 가까이 감소하는 '저유가 시대'가 도래하자 베네수엘라 경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석유수출 외에 달리 수입원이 없었던 베네수엘라는 국고가 바닥을 드러내자 국채를 남발하고 화폐를 더 많이 찍어내는 악수(惡手)를 뒀다. 차베스의 뒤를 이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전임자를 능가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고수하면서 베네수엘라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국가 경제가 반토막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사실 10년 전 베네수엘라의 '빈곤율'이 절반 가까이 감소하고, '1인 국민총소득'이 1만달러로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이 나라의 몰락을 예견한 이는 많지 않았다. 되레 차베스의 선심성 복지정책을 '21세기 사회주의'를 구현한 획기적인 대안으로 칭송하는 목소리가 있어왔다.  

    그러나 국내 언론들의 행보는 유별나고 과도했다. 석유를 매개로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차베스의 행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기사들이 연일 쏟아졌다. 

    앞서 언급한 KBS와 한겨레 등의 언론들이 그랬다.      

    베네수엘라 찬양했던 지식인들에겐 책임 없나

    김상곤 전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당시 차베스가 내세운 국가사회주의 정책을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주간의 글에 따르면, 김상곤 전 부총리는 2007년 베네수엘라를 방문해 민중학교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차베스가 내세운 '21세기 사회주의'를 깊이 연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해 김 전 부총리는 "민중이 주인이 되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학생들의 사회정치적 활동을 대대적으로 장려해야한다"는 '사회주의 이행 12대 강령 시안 발표회'에 참석, 사회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순덕 주간은 훗날 혁신학교와 사립대 공영화 공약이 바로 이 '강령'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4년 전, 김순덕 주간은 '차베스를 숭배한 이들은 말하라'라는 제하의 동아일보 칼럼에서 김 전 부총리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을 겨냥, "지금도 차베스식 개혁이 옳고, 이를 배워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지"를 물은 바 있다. 

    다시 4년이 흐른 2018년, 이제는 뉴데일리가 이 분들, 그리고 당시 차베스를 칭송했던 모든 언론인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 

    무상으로 퍼주는 국가주의 포퓰리즘이 여전히 옳은 길이라고 믿고 있는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겠다는 차베스의 도전을 여전히 높이 사고 있는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들이 실패한 우고 차베스의 길을 뒤따르고 있는 게 아닌지를….

    2018년 8월, 베네수엘라는 '국가 부도'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