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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백성 40%가 노비… 세종, 노예-기생제 강화 탓"

제85회 우남 이승만(李承晩) 포럼: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세종은 노비를 정상 인류로 간주하지 않았다"

입력 2018-03-30 08:15 | 수정 2018-03-30 10:33

▲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저서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표지.ⓒ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최근 한국의 민주주의는 세종대왕으로부터 출발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다. 우리는 과연 자유인의 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세종대왕을 성군으로 칭송하는 게 맞는지 학술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고려시대와 다르게 법적 능력이 박탈 당해 '정상의 인류'로 간주되지 않았던 조선의 노비(奴婢)들, 이를 국가적으로 용인케 한 것이 세종대왕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근신빌딩 제2신관에서 열린 '우남 이승만(李承晩) 포럼'에서는 이영훈 전 서울대학교 교수가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이날 강연에서 이영훈 교수는 "세종은 노비를 정상의 인류로 간주하지 않았다"며 "고려에 비해 조선에서 노비 인구가 부쩍 증가했다. 사람이 아닌 하나의 재산으로 취급 당하던 노비제의 전성기가 열린 이 시기, 노비제 한 가운데 세종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한국사에서 제1의 위인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을 '자유' 관점에서 다시 한번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1만원권에는 세종의 초상이 들어있고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세종특별자치시 등등 각종 도로와 기념관에 '세종'이라는 명칭이 들어간 점을 언급하며 대한민국 역사 인식을 분석했다

▲ ▲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근신빌딩에서 '제85회 우남 이승만 포럼'이 열린 가운데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조선 안정 도모했지만, 노비제 확립되게 한 인물

이영훈 교수는 "조선왕조 시대의 사람들이 세종을 성군으로 칭송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며 "그가 치세 30년 간 이룩한 업적은 조선왕조 500년의 기틀이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교수는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들조차 그를 성군으로 받들어야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있다"며 그 이유를 '조선의 노비제', '기생제', '사대주의 국가체제'로 꼽았다

이 교수는 15~17세기 조선의 인구 30~40%가 모두 노비 신분이었다는 점을 가장 먼저 지적했다.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노비의 비중이 10분의 1이었던 고려 시대와 비교했을 때 급격하게 그 인구수가 팽창했다는 것이다. 노비의 신분이 세습되기 시작했고, 이는 주인의 완전한 사유재산이 됐다. 그 한 가운데 양천교혼(良賤交婚:양인과 천민의 혼인)을 허락한 세종의 역할이 컸다고 했다.

그는 기생제와 관련해서도 "세계사에서 한국사가 지난 개성적 특질을 상징하고 있는 기생제를 창출한 군왕이 다름 아닌 세종"이라며 "고려에서는 기생이 관비가 아니었고 신분이 세습되지도 않아 기생 아들이 관료로 출세할 수도 있었으나 조선에서는 그렇지 못했다"고 했다.

아울러 "세종은 국경지대의 고을에 군사를 접대할 기생을 설치했고 이후 전국 각 국현에 수십 명의 기생이 배치됐다"며 "조선왕조 500년간 기생은 각 군현의 수령, 군관, 사객의 침실에 들어 성적 위안을 제공했고 이는 공공연한 관행으로 성립됐다"고 말했다.

또 고려와 조선이 명백하게 분리되는 점 중 하나는 국방 부문이다. 고려왕조가 송나라 등 외적의 침입을 자력으로 방어한 군사국가였다는 점에 반해 조선은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 외교로 '소중화(小中化)를 자처한 왕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교수는 "조선의 국가체제는 '천자-제후-대부-사-서-천'으로 위계로 이루어져있다"며 "조선이라는 제후가, 중국이라는 천자를 정성으로 모셨다는 점에서 전쟁을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조선왕조가 당대 세계관 국제감각에 맞춰 도덕국가로서 나라를 유지하고 518년동안 부동의 안정성을 도모했던 것이 세종의 가장 큰 업적이지만, 대한민국의 기치를 이루는 '자유'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분석이다.

이영훈 교수는 "조선왕조는 자주 국방 의지나 능력을 결여했음에도 518년이나 장기 존속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기도 한다"면서도 "그랬던 만큼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 역시 변하지 않아 19세기 말까지 인간 자유의 정치철학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고 평했다.

▲ ▲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근신빌딩에서 '제85회 우남 이승만 포럼'이 열린 가운데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를 주제로 강연을 이어가는 모습.ⓒ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출발이 진짜 '세종'이었다면...일제식민지 전락은 없었을 것

이영훈 교수는 "세종은 과연 백성을 어질게 자유롭게 보살피고 백성의 사회경제적 편의를 개선하는데 힘을 쏟은 임금이었는가, 과연 한국 민주주의 역사 원류가 세종에 닿아있는가라는 회의감에서 이 책을 저술하게 됐다"고 배경을 전했다.

그는 "굳이 세종대왕을 깎아내리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대한민국의 자유가 세종대왕에서 왔다고 하는 주장에 비판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1948년 역사상 처음으로 민초들이 자유-보통선거로 대표를 뽑고 그들이 모여 제정한 것이 건국헌법"이라며 "이는 3천 만 생령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공화하며 살자고 체결한 큰 약속"이라고 했다.

이어 "이는 19세기까지 우리 조상들이 누리지 못한 자유의 선언"이라며 "1910년 조선왕조가 패망한 것은 이 헌법을 만들지 못해서였고 앞서 1895년 고종이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서약한 것을 지키지 못해서였다"고 했다.

1910년 일제식민지로 전락해 1945년 해방을 맞이하고 1948년 한반도 역사상 첫 자유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을 수립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자유'라는 가치가 언제 등장했는지를 재고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영훈 교수는 "대한민국은 개인의 근본적 자유에 기초해서 세워진 나라"라며 "이승만 대통령은 건국 당시 '우리가 40년간 쉬지 않고 왜적과 싸워온 것은 개인의 자유활동권과 판단권을 위해서였고, 오늘에서야 그 결실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이 강연이 학계에 어떤 영향을 불러올지 알 수 없지만, 세종을 폄하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며 "세종이 조선왕조를 초안정 시스템으로 편성한 분이라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자유민주주의'의 출발이었다는 일각의 주장에 오류가 있다는 점은 꼭 알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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