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서 정의용 실장 발표 내용 13년 전 ‘9.19 합의’와 똑같다는 지적 나와
  • ▲ 지난 6일 밤, 대북특사로 방북했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김정은 측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6일 밤, 대북특사로 방북했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김정은 측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6일 밤, 문재인 정부의 대북특사를 이끌고 갔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브리핑을 통해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선대의 유훈이라며 분명히 말했다”면서 “북한을 향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무기를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고 밝혔다.

    정의용 실장은 또한 “북측은 비핵화 문제 협의 및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김정은의 메시지로 풀이됐다.

    이를 두고 한국에서는 “2005년 9.19 합의 전에 김정일 정권이 주장했던 내용과 거의 같다”는 주장과 “북한과의 대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므로 섣불리 결론을 지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북한 문제에 있어 제3자인 해외 전문가들은 북한 김정은의 메시지를 어떻게 평가할까. 과거 6자 회담 당시 미국 측 부대표와 美국무부 대북협상 특사로 활동했던 ‘조셉 디트라니’ 맨스필드 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다수의 전문가들은 “김정은은 미국 측과 대화를 시작하면 핵무기 폐기 등을 조건으로 예상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외신들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브리핑을 한 뒤 김정은의 메시지를 두고 전문가들의 다양한 분석을 보도했다. 이 가운데서도 과거 미국의 6자 회담 부대표로 북핵 문제를 다루고 이후로도 ‘반민반관 접촉’을 통해 북한과의 연결고리를 유지했던 ‘조셉 디트라니’의 인터뷰는 주목할 만 했다.

    英‘이코노미스트’는 지난 6일 ‘조셉 디트라니’ 前부대표와의 인터뷰 내용을 실었다. 여기서 디트라니 前부대표는 한국 정부가 공개한 김정은의 메시지를 가리켜 “북한이 핵폐기를 하겠다는 확실한 의지를 가진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면서 “북한은 1950년대부터 핵무기를 갖기를 원했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이 쉽게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英‘이코노미스트’는 “그는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체제 안전 보장을 요구하는 북한 측과 대화를 한 끝에 미국이 북한을 침략할 의도가 없다는 뜻을 보장해 공동성명(9.19 합의)을 이끌어 낸 사람”이라며 디트라니 前부대표가 김정은이 말하는 ‘체제 보장’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디트라니 前부대표는 “체제 안전을 보장하라는 그들(김정은 정권)이 요구는 종이 한 장(합의서) 보다 더 큰 의미를 담고 있다”면서 “그들은 우리(미국 등 서방 진영)의 호전적인 태도를 지적하면서 ‘미군이 왜 이 지역에 있느냐, 주일미군 기지가 왜 필요하냐’고 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그는 김정은 정권이 이런 요구를 통해 한국과 일본에서 미군을 쫓아내려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철수는 사실상 ‘한미안보동맹 해체’나 다름없다.

    英‘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지금까지 후퇴(미군 철수)를 언급하지 없고 대북 협상에 회의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 ▲ 지난 6일(현지시간) 美공영 PBS 뉴스아워에 출연한 조셉 디트라니 前 6자 회담 부대표는 북한의 메시지를 곧이 곧대로 믿지는 말 것을 주문했다. ⓒ美PBS 관련보도 화면캡쳐.
    ▲ 지난 6일(현지시간) 美공영 PBS 뉴스아워에 출연한 조셉 디트라니 前 6자 회담 부대표는 북한의 메시지를 곧이 곧대로 믿지는 말 것을 주문했다. ⓒ美PBS 관련보도 화면캡쳐.
    디트라니 前부대표는 같은 날 美공영 PBS와의 인터뷰에서도 김정은의 메시지를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반도 전문가인 ‘브루스 클링너’ 박사와 함께 나온 자리에서 2005년 6자 회담을 통해 북한과 미국,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9.19 합의’를 맺었을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김정은이 주장하는 ‘체제 보장’의 뜻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디트라니 前부대표는 김정은의 ‘비핵화 및 대화 메시지’를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6자 회담 당시 우리는 북한이 요구하는 것 가운데 세부적인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북한이 요구하는 것을 정리하면 ‘평화협정’이라는 결론을 낼 수 있었는데 우리는 북한의 요구에 나쁜 의도가 없다고 믿었다”고 설명했다.  

    디트라니 前부대표는 “그런데 때로는 북한이 말하는 ‘안전 보장’에 대한 다른 해석도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요구하는 ‘안전 보장’에 대해 세부적인 협의를 하게 되면 주한미군을 비롯해 동아시아 지역에 주둔하는 미군의 철수를 요구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디트라니 前부대표는 또한 “미국은 저 젊은이, 김정은과는 협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 번 속았던 경험 때문이라고 했다.

    디트라니 前부대표는 “우리는 2005년 그의 부친 김정일과 협상을 통해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관련 시설을 입증할 수 있는 방법으로 되돌릴 수 없도록, 포괄적인 범위에서 해체하는 합의한 뒤 공동 성명(9.19 합의)을 이끌어 냈었다”면서 “지금 저 젊은이는 집권한 뒤 눈에 띄는 무기와 운반 수단을 갖고서는 ‘우리는 비핵화할 준비가 안 됐다’고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 트럼프 정부에게 조언을 해주고 싶은 게 있느냐”는 질문에 디트라니 前부대표는 “북한과의 ‘실험적인 대화’는 괜찬을 것”이라면서 “이에 더해 북한에게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중단하지 않으면 한국과의 연합훈련은 예정대로 실시할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야 한다”고 답했다. 북한의 ‘대화 제의’를 외면할 것까지는 없고 그들의 실제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대화는 나쁘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디트라니 前부대표는 2005년 ‘9.19 합의’ 당시의 상황, 이번에 북한과 대화를 하는 것이 2005년의 재판(再版)이 될 수 있음을 설명한 뒤 “한국 정부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북한은 미국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맺으려 하는 것 같은데 이것이야말로 북한 정권이 늘 바라던 것이고, 그들에게 최고의 ‘체제 보장’이 될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라고 밝혔다.
  • ▲ 2017년 주한미군이 실시한 '비전투원 소개작전(NEO)' 훈련의 한 장면. 북한이 요구하는 주한미군 철수가 받아들여지면 훈련이 아닌 실제 상황을 접할 수 있다. ⓒ美육군 공개사진.
    ▲ 2017년 주한미군이 실시한 '비전투원 소개작전(NEO)' 훈련의 한 장면. 북한이 요구하는 주한미군 철수가 받아들여지면 훈련이 아닌 실제 상황을 접할 수 있다. ⓒ美육군 공개사진.
    美PBS 인터뷰에 함께 나온 ‘브루스 클링너’ 박사는 “트럼프 정부가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가하느냐”는 질문에 “미국이 북한의 제안에 대응할 때 한국,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동맹국들과도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는 게 확실하다”면서도 “그러나 지금 당장에는 대화를 위해 조성된 외교적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답했다.  

    브루스 클링너 박사는 한국, 일본과 동맹국들이 트럼프 정부가 북한을 선제공격할 것인지 아니면 외교적인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 뒤 한국 정부 특사단이 미국을 찾은 뒤에야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보다 과격한 주장도 있었다. 같은 날 美CNBC는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서 무슨 요구를 할 것 같으냐”는 질문을 여러 명의 한반도 전문가에게 한 뒤 답변을 정리했다. 전문가 가운데 ‘카일 페리에’ 한미경제연구소(KEI) 학술연구 담당 이사의 주장은 직설적이었다.

    “김정은 정권이 지금 원하는 게 뭐냐”는 CNBC 측의 질문에 페리에 이사는 “김정은은 지금 알려진 것보다 더 큰 것을 요구할 것”이라며 “예를 들면 주한미군 철수 등이 포함된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페리에 이사는 “김정은이 요구하는 조건은 얼핏 보면 선의를 바탕으로 한, 들어주기 굉장히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협상을 시작하게 되면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요구를 할 것”이라면서 “미국 정부는 김정은의 이런 요구를 절대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페리에 이사는 “미국과 한국 정부는 북한과 이미 여러 차례 협상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에게 뭔가를 양보하는 데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각국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비핵화 대화 제의’ 메시지에 대한 분석과 전망 등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북한이 2005년 ‘9.19 합의’ 직후 1차 핵실험을 실시했던 사실을 지적하며 “믿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