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 O[오]형에게 보내는 ‘비밀 편지’
    돼지의 하소연... “내도 할 말이 많다우!”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   O형! 워싱턴의 ‘하얀집’ 전세(傳貰) 기간이 끝나가는 요즘 어찌 잘 지내시는가? 전셋집 빼줄 걱정에, 그리고 다음 세입자에게 보증금 받기 위해 노고가 많으시다고 들었소. 내야 뭐 삼대째 내려오는 종가(宗家)에서 살고 있으니, 전세로 인한 걱정은 없다고 봐야지. 그런데 요즘은 벌거숭이로 느닷없이 내쫓길 걱정에 가끔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우. 
      하여간 그 바람둥이 선배의 여편네 할마씨를 다음 세입자로 들이기 위해 분투노력하신다는데, 조심하슈! 여자란 동서고금(東西古今)과 노소(老少)를 불문하고 다루기가 아주 까탈스럽다고들 하지 않소. 나도 약 3년간 남녘 여인네와 상대하고 있지만, 여러 가지로 불편하다우. 우리 애비야 그 시절에 남정네들을 잘 갖고 놀았잖소. 돈이며, 쌀이며, 비료에다가, 기타 등등 바리바리 싸서 보내곤 했는데... 그때가 좋았다고 아랫것들이 틈만 나면 짖어대고 있다오.

      내가 위원장이 되고 나서 O형에게 제일 먼저 편지를 보내니 만큼, 여러모로 헤아려주시길 우선 당부드리오. 아! 왜 하고 많은 짓거리 중에 위원장이냐고? 이거 집안 내력이라. 우리 집안은 ‘밥통’[胃]이 원체 길어서리 위원장(胃元長)들 아닙네까. 그래서 워낙 잘들 처먹었지요.
      우리 할배는 각종 위원장(胃元長)이었고, 특히 ‘술자리’[酒席]을 좋아해서 ‘천출맹장’(賤出盲腸)이라오.
      애비야 ‘식견(食見) 있는 지도자(脂盜者)’로 널리 이름을 날렸잖소. 거기다가 우리 북녘 땅이야 나라[國] 같지도 않지만, 그마저 거덜냈다 해서 국빵위원장[國0胃元長] 아닙니까.
      나도 대(代)를 이어 인민들을 가난하게 만들 거니까 궁무위원장(窮務胃元長)이라고...

      서설(序說)이 길어졌는데, O형은 늘 주변을 조심해야겠습디다. 그 나라에는 ‘총’(銃) 가지고 장난질 치는 넘들이 왜 그리 많소? 전세 뺄 때까지는 강녕(康寧)하셔야지.
      더불어서 내 싫은 소리 한마디 하리다. 제 나라 소총(小銃)들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면서, 여럿 인간 한꺼번에 날려보낼 수 있는 남의 나라 핵무기나 미사일 등등을 시비하는 건 좀 거시기하지 않나 말이요. 앞으로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비핵화” 어쩌구 하는 말은 거둬치웁시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내가 어케 핵무기·미싸일 이딴 거 갖고 O형 나라를 치갔소. 사이좋게 지내려면 때론 티격태격도 해야 하는 것 아니갔나 말이오. 그런데도 그걸 가지고 ‘제재’니 뭐니 하면서 서로 인상 쓸 일 만드는 건 옳지 않지. 더구나 이 나라 저 나라들 끌어들여서 까지...
      핵무기나 미싸일 만드는 아랫것들도 좀 먹고 살아야지, 그렇게 숨도 못 쉬게 꽉꽉 막아놓으니까 자꾸 일을 저지른다 말이오. 그러니 계속 핵시험도 하고, 미싸일도 쏘고 하는 거 아니겠소. 허긴 뭐 내 허락 없이야 언감생심(焉敢生心)이지만...

      그런데 이번에는 그 무슨 ‘인권’이란 걸 가지고 나에게 직접 ‘제재’를 가하니 뭐니 한다는 소리가 들리던데, 정말이요? 그러면 완전 섭섭하지. 그것도 내가 ‘자라’ 양식(養殖)공장을 둘러본 직후에 그랬다고 들었소. O형 똘마니는 “미(美) 제재 역사상 인권 침해만을 이유로 국가원수를 단독 제재하는 것은 처음이다”라고 주절거렸다며. 내 아랫것들 말마따나 나 ‘최고 돈엄(豚嚴)’에 대한 심각한 인권 침해이자 모독이지 않소.
      어딜 봐서 내가 북녘 인민들의 인권을 침해한단 말이오. 내가 양계장(養鷄場)이며 민물고기 양어장(養魚場)을 수시로 돌아다니고, 아랫것들에게 쌍욕을 해가며 ‘자라’ 양식(養殖)을 다그치는 이유가 뭔질 아시오? 나는 우리 인민들 모두에게 ‘용봉탕’[龍鳳湯:잉어나 자라를 묵은 닭과 함께 고아 만든 국]을 끓여주기 위해서 그런다니까. 특히 요즘 같은 더위에 보양식(補陽食)인 ‘용봉탕’을 멕여서 이 나라를 명실 공히 ‘좃선인민공화국’으로 만들려 하는데, 이래도 나를 인권 침해의 주범이라고?

  •   ‘정치범 수용소’[교화소]도 시비 대상이라며? O형! 당신네 나라에는 일 안하고 거리를 배회하는 농땡이 ‘노숙자’들이 없소? 이런 넘들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거잖소. 그 ‘교화소’라는 곳은 그 넘들을 합리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운용하는 거란 말이오. 가끔 교육적인 차원에서 회초리 맛을 보이고, ‘정신 수양’을 위해 금식(禁食)도 시키는 게 결코 지탄 받을 일은 아니잖소.
      고문(拷問)·폭행(暴行) 운운하는데, 말이야 바른 말이지 약간의 자극을 주는 것뿐이라니까. 특히 이런 일들은 이 땅에서 예전부터 교훈으로 내려오는 ‘진리’(眞理)를 실천하는 과정이라니까. “역시 엽전들은 패야 돼!”

      그리고 여러 나라에 나가 있는 우리 북녘의 노동자 동지들이 험한 꼴, 그 무슨 ‘착취’를 당하고 있다며 야단인 모냥인데... 나라 밖에서 일하는 우리 노동자 동지들이 막노동을 해서 얼마나 받는다고 그걸 걸고넘어지냐구. 벼룩의 간(肝) 정도인 걸 말이야. 그렇지만, 그 동지들 대단하지. 아 글쎄, “개 같이 벌었으니 정승처럼 쓰시라”며 갖다 바치는 걸 어찌 마다하겠냐고. 갸륵이 정성 아닌가 말일세.

      이처럼 내 나라의 ‘인권’이란 걸 갖고 뭐라 뭐라 하지만, 나도 할 말이 많다고. 아니, 내가 핵시험을 하네, 미사일·방사포를 쏘네, ‘북악(北岳)산장’ 불바다 영상을 보여주네 하면서 그렇게 지랄발광을 하는데도 콧방귀만 뀌고 무시하는 남녘 인민들이야 말로 내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거 아닌가 말이야. O형이 ‘인권’을 그렇게 귀중히 여긴다면, 우선 먼저 남녘 인민들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하는 게 맞아.
      “아무리 돼지 같은 ‘위원장(胃元長)’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모르는 체 하면 벌 받는다”고...
     
      뛔년놈들이 불경스럽게도 나를 ‘진싼팡즈’[金三胖子]라고 부른다고 하데. 김가네 3대 돼지새끼라는 거지.
      왜 흔히 돼지꿈에 대해 이런저런 해몽(解夢)을 하잖소. 첫 번째 돼지꿈을 꾸면 돈이 생긴다고 하지. 돼지가 꿀꿀 거리면, 주인이 “아! 배가 고파 그러는 구나”하고 먹이를 준다네. 두 번째 꿈에 돼지가 나타나면, 새 옷을 입게 된다지 아마. “돼지우리가 더러워서 꿀꿀대는가 보다”하고 새 짚을 깔아줄 테니까.
      그런데 내가 핵시험과 미사일·방사포로 애타게 돼지새끼 우는 소리를 내는데도 돈과 옷이 돌아오지 않으니, 이상하단 말이야. 남녘 인민들은 귀가 처먹었나?
      물론 세 번째 꿈에 돼지가 나타나면, 죽도록 얻어맞는다고 하데. 이것저것 다해줬는데도 꿀꿀대니, 억쎄게 터져봐야 조용해질 거라면서...

      내가 이렇게 섭섭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고 있는데, 아랫것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서 하는 말이 뭐? O형이 남녘에 ‘싸드’를 갖다 놓기로 했다고. 이런 이런... O형! 그거 큰 실수하는 거야!

      애시당초에 ‘싸드’를 남녘에 갖다 놓지 않는 게 상책이었지만, 앞으로 크게 후회할 껄. 벌써부터 남녘의 국빵부 앞을 비롯해 온 남녘에서 난리라며? 일단 부지(敷地)만 발표돼 보라구. 지역 인민들은 물론이고, 신부·목사·중 등등을 비롯한 남녘의 ‘돈족(豚足) 주민(住民)’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날 테니 두고보라구.
      그 뿐인가? 남녘의 ‘그당’과 ‘쉰당’, ‘정이당’ 뭐 이딴 족속들은 가만있겠는가? 지금 남녘 국개[國개]는 여소야대(女小野大) 아닌가 벼.
      혹시 O형은 ‘희망버스’란 걸 들어는 봤나? 글쎄, 이번에는 ‘평화버스’? 뭐 이쯤 될 지도 모르지...

  •   O형! 하지만 너무 겁먹지는 마시게나. 모든 게 다 서로서로 좋자고 하는 일인 걸 뭐. O형이야 ‘하얀집’ 전세(傳貰) 뺄 때 홀가분하면 좋고, 나도 이제 발 뻗고 편안히 밤잠 좀 자야지.
      그러니, 인권이니 제재니 하면서 괜히 힘 쓰지 말고, ‘싸드’도 물립시다. 그러면서 호상(互相) 간에 접점(接點)을 찾아 보자구. 뛔국의 ‘시[習] 따거’도 인권을 빌미로 나를 제재하거나 ‘싸드’를 남녘에 갖다 놓는 걸 극구 반대하고 있잖소. 그리고 언제적부터 입에 ‘평화협정’을 달고 살았으니, 그 쪽 체면도 좀 살려주자구.
      재차 강조하지만, 거 뭐 핵무기야 꼭 O형에게 쏘겠다는 건 아니거든. 갖고 있으면 폼나니까 그런 거니 그냥 눈 감아주쇼!

      자! 이제 우리 둘의 직속 똘마니들 시켜서 ‘평화협정’이란 걸 대화로 풀어 봅시다. 통 크게 말이요. 물론 그리 되면, 남녘의 ‘북악(北岳)산장’ 여주인을 비롯한 O형의 졸개들이야 ‘平禍’ 정착에 이어, 종국에는 ‘大禍’를 맞게 될 거라고 우는 소리를 하겠지. 하지만 내년 말이면 갸들 다 끝인데 뭐.
      이에 반해, 매우 자주적(自主的)인 남녘의 ‘돈족(豚族) 주민(住民)’들과 차기 ‘북악(北岳)산장’ 주인을 예약한 ‘그당’, ‘쉰당’, ‘정이당’ 쪼가리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게요. ‘새무리’ 중에도 꽤 여럿 박수칠 거고 아마.
      내가 이런 저런 통로(通路)로 잘 타일러 놨시다. 그러니 걱정 붙들어 매시고...
      
      끝으로 한마디 합니다! O형, ‘하얀집’ 전세(傳貰) 만기(滿期)가 머지 않았다는 현실을 직시하기 바라오.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리겠소. 이만 총총... 
      금수산(禽獸山)에서 ‘좃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궁무위원장(窮務胃元長) 올림

    <더   끼>

    # 장문의 편지가 발송되고 며칠 후에 O형의 친필 답장이 ‘금수산(禽獸山) 궁전’에 도착했다고 한다. 수신인은 ‘Young PIG’으로 되어 있었고, 내용은 딱 두 문장. 물론 비공개였다.

      “CIA로부터 어제 자네가 세 번째로 자네 꿈을 꾸었다는 보고를 받았다네. 미친 놈한테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하더구먼!” CIA를 제외한 조선말로 삐딱하게 쓰여져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