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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새누리당의 험지출마 요구에 응하면서 서울로 올라온 안대희 전 대법관. 그는 새누리당에서 중량감 있는 인사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이제는 '험지'의 의미가 슬슬 헷갈릴 지경이다. 험지를 향해 가겠다면서 비장하게 부산을 나선 안대희 전 대법관이 머뭇거리고 있다.
험지 차출론에 밀려 서울로 올라왔건만 좀처럼 서울에서의 출마지가 정해지지 않으면서 정착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모양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당에서 자신의 지역구를 정해주지 않는다고 성토한다. 그러나 그는 지난 14일 "솔직히 당선도 돼야 하지 않겠느냐"라고도 말했다.
솔직한 심정을 대변한 것이라고 하지만 의문이 든다. '험지'라는 것은 애당초 당선 가능성이 적은 곳을 뜻하는 말이 아닌가. 당선될 곳이라면 애당초 험지라 볼 수 없다.
남들은 하지 못하지만 '그'이기 때문에 가능한 곳으로 출마해달라는 것이 험지 출마론의 핵심.
누가 봐도 현실적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있는 곳에 출마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라면 험지 출마론의 의미는 그 순간 퇴색되고 만다.
안 전 대법관은 당이 자신을 험지가 아닌 사지로 몰고 있다고 보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상 사지라 불리는 호남은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그가 제안받은 서울은 전체적으로 여야가 팽팽하게 대립하는 지역이다. 때문에 인물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차떼기 비리를 파헤친 청렴한 검사, 대법관을 지내며 능력을 인정받은 인물은 새누리당에서 흔치 않다. 그와 함께 험지 차출론에 거론되는 사람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차기 대권후보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사실 새누리당의 목표인 180석은 쉬운 목표가 아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과거 13대부터 14대, 15대, 16대 선거 등이 모두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로 치러졌지만 단 한 번도 새누리당이 절반을 넘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제가 180석을 얘기한 것은 '망국법인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의석인 180석을 국민 여러분께 달라는 눈물 어린 호소의 뜻"이라고 밝혔다.
김무성 대표의 호소는 박근혜 대통령과 궤를 같이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3일 대국민담화에서 "(국회선진화법 이전에는)동물국회였는데 지금은 식물국회가 됐다고 한다"며 "이제는 국민에게 직접 호소할 수밖에 없다. 국민이 나서주셔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 안 전 대법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호소에 필요할 때마다 해결사 역할을 해왔다. 그는 특히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의 쇄신 특별위원장을 맡아 박근혜 대통령을 도왔다. 이번에 험지 출마에 나서는 것에는 이런 배경도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그런 그가 최근 마포갑을 출마지로 가정하고 동향을 파악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서울 마포갑은 이미 18대 때 강승규 전 의원이 한 번 깃발을 꽂은 바 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을 부산에서 불러냈어야만 할 험지로 보기는 어렵다.
또 안 전 대법관이 쉽게 당선되리라 예상되는 지역에서 떨어졌을 때 벌어지는 생기는 충격을 여당이 감당키 어렵다는 불안감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여당 한 중진 의원은 "안 전 대법관이 총리 지명이 된 지 불과 6일 만에 후보 사퇴를 해 박근혜 정부에게 얼마나 큰 타격을 줬는지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안 전 대법관이 진정한 '험지'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들이다. 최소한 야당 지도부급들과의 대결을 피해서는 안 된다는 구체적인 조건까지 거론된다.
예를 들면 박영선 의원이 버티고 있는 구로을, 혹은 그에게 지역구를 넘겨주고 광진 갑에 자리를 잡은 김한길 전 대표를 상대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사고 당협이면서 야권 성향이 강한 지역구인 중랑 갑 지역구도 말이 오간다.
안 전 대법관은 자신의 가진 중량감을 무기로 새누리당 총선 승리에 힘을 보탠다는 입장이다. 그와 같은 중량감 있는 인물이 당선 가능성을 계산하기 시작하면 중량감이 없는 정치 신인들은 더더욱 계산기를 굴리기 바빠질 것이 분명하다. 당의 승리를 위해 선당 후사의 깃발 아래 애써 정비했던 대오도 급격히 무너지기 쉽다.
안 전 대법관은 SNS에 "따뜻한 부산 바다가 그립다"고 말했다. 따뜻한 부산을 박차고 나와 추운 서울에 나설 때의 비장함이 다시금 필요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