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통해 '국민 판단' 이뤄지면, 이후 재편된 야권과 대화 나설 듯
  • ▲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박근혜 대통령이 오분육열(五分六裂)되고 있는 야권 상황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진행된 대국민담화에서 양당 아닌 1여5야의 다당 상황 하에서 총선이 치러질 때 야권과의 관계 정립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한 입장을 질문받았다.

    기존에 새누리당이라는 거대 여당과 민주당계(系) 정당이라는 거대 야당이 1대1로 맞붙어 왔다면, 20대 총선은 새누리당이라는 1개의 여당에 친노 문재인 대표의 더불어민주당, 안철수 인재영입위원장의 국민의당, 심상정 대표의 정의당, 박주선 창당준비위원장의 통합신당, 천정배 창당준비위원장의 국민회의라는 5개의 원내 야당이 이를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원외(院外)에서 나름 인지도가 있는 박준영 창당준비위원장의 신민당과 김민석 새시작위의장의 민주당까지 합치면 야당만 7개 정당이다. 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소통합을 거쳐 일부는 교통정리가 될 전망이지만, 최소한 3개 이상의 야당은 총선에 후보자를 공천할 것으로 보인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주정의당(민정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민주당),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민주당(평민당),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신민주공화당(공화당)이 전국적으로 후보를 공천하며 맞붙었던 1988년 13대 총선 이후로 28년 만에 전면적인 다야(多野) 구도 속에서 총선이 치러지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대통령의 국정 운영과 소통 능력이 요구되는 등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었다는 지적이지만, 집권여당에 소속돼 있는 대통령이 야권발 정계 개편 상황에 대해 상세히 논하기가 부담스러웠던 듯 짧은 응답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항상 선거를 목전에 두고 정당이 이합집산하는 것은 늘 반복돼왔다"며 "(이합집산하는) 목적이 중요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심판을 피하기 위한 것인지 진실로 국민을 위한 것인지는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라며 "그에 따라 관계가 정립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외견상 그 어느 대통령보다도 입법부이자 국민의 대의대표들로 구성된 국회를 존중해왔다. 시정연설(施政演說)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행정부가 예산안을 편성한 이유와 정책 추진 방향에 대해 세금을 납부하는 국민들이 직접 뽑은 대표들로 구성된 입법부에서 설명을 하면서 이해를 구하는 시정연설은 행정부 수반이 하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나라 행정부의 수반은 동시에 국가원수이기도 한 대통령이다.

    그럼에도 이른바 '민주화' 이후인 1988년 10월에야 대통령의 첫 시정연설이 이뤄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8년 10월 4일 13대 국회의 첫 정기국회에 출석해 시정연설을 했다. 우리 헌정 사상 첫 시정연설이었다. 이후 이듬해부터는 국무총리가 시정연설을 대신했다.

    문민대통령이자 의회주의자라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되레 임기 중 한 차례도 국회에 나아가 시정연설을 하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에 들어와 시정연설은 재개됐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3년 10월 13일 16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에 출석해 시정연설을 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부터는 국무총리가 시정연설을 맡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이러한 관례 아닌 관례를 충실히 따랐다. 2008년 10월 27일 18대 국회의 첫 정기국회에 출석해 시정연설을 한 뒤, 이후 남은 임기 4년은 국무총리에게 맡겼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11월 18일 헌정 사상 네 번째 시정연설의 주인공이 된 데 이어, 2014년 10월 29일에는 다섯 번째, 지난해 10월 27일에는 여섯 번째 시정연설의 주인공 자리마저 차지했다. 행정부 수반으로서 헌법상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며, 납세 의무를 지는 국민의 대의대표인 국회의원들 앞에서 예산안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이해를 충실히 구한 것이다.

    이외에 입법부와의 공식 접촉 사례도 역대 그 어느 대통령보다 적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총선에서 당선되자마자 이듬해 2월 당선자 신분으로 국회를 찾아 새누리당 황우여 전 대표, 민주통합당 문희상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회동했다.

    이후 취임식을 갖자마자 4월, 대통령 신분으로 민주통합당의 문희상 전 비대위원장, 박기춘 전 원내대표, 변재일 전 정책위의장 등 지도부를 초청해 회동했다. 그 해 9월 정기국회가 열리자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에는 국회로 찾아가 사랑재에서 새누리당 황우여 전 대표, 민주당 김한길 전 대표와 회동하며 정국 해법을 모색했다.

    입법 현안과 관련해서는 원내지도부를 따로 청와대로 초청하는 극진한 예우를 베풀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7월 7일, 새누리당 이완구 전 원내대표, 주호영 전 정책위의장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전 원내대표, 우윤근 전 정책위의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세월호 특별법 및 정부조직법 문제에 관해 머리를 맞댔다.

    이후 야권 내부의 분란과 계파 싸움으로 비대위원장(국민공감혁신위원장)을 맡았던 박영선 체제가 친노의 흔들기에 무너지자, 야당 원내지도부를 만난지 3개월여 밖에 흐르지 않았음에도 10월 29일 다시 국회를 찾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 이완구 전 원내대표, 주호영 전 정책위의장과 함께 새정치연합 문희상 전 비대위원장, 우윤근 전 원내대표, 백재현 전 정책위의장을 만나 다시금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렇듯 대통령은 국회 앞에 몸을 낮추며 예의를 지키고 이해를 구해왔지만, 국회가 이러한 기대를 배신하고 저버렸기 때문에 대통령의 실망과 분노도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권의 한 축인 입법부의 협조 없이는 정당민주주의 국가가 운영될 수 없기 때문에 오는 4·13 총선에서 이뤄질 '국민의 판단' 결과를 지켜보고 야권과의 관계 정립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박근혜 대통령의 스타일로 볼 때, 총선이 끝난 뒤에는 새로운 야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국정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눌 것으로 보인다. 다만 1여다야 상황에서 초청 대상이 되는 야당 지도부가 어느 당의 누구냐가 문제인데, 박근혜 대통령은 이합집산이 반복되고 있지만 '국민의 판단'을 통해 걸러질 세력은 자연히 총선 과정에서 걸러질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