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평화에 대해 더 큰 책임과 연대의식 가져야
  • 현대 지식인 사회에 별처럼 떠 있는 수많은 천재 과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보통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아무리 열심히 쉽게 설명해도 시대를 앞서가는 과학의 세계와 보통 사람의 상식 사이에는 간격이 너무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과학은 반역이다'(프리먼 다이슨 저 / 반디 출판)는 제목부터 먹고 들어간다. 과학의 어떤 면이 반역인지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과학은 기존의 지식에 반역을 해야 새로운 것이 나온다는 뜻인가? 과학자는 반항정신이 있어야 좋다는 것인가?

    과학은 반역이다(The Scientist As Rebel)는 책은 이런 모든 질문을 조금씩 포함하고 있다. 이 책은 오래동안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교수를 지낸 프리먼 다이슨(Freeman Dyson 1923~)이 2006년에 쓴 책을 과학도서 출판사인 반니가 올해 번역 출판했다.

    현대 과학을 수놓은 많은 과학자들을 직접 만나거나, 아니면 최고 수준의 과학계 내부 인사들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갖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용어부터 사람을 질리게 하는 이상한 개념이나 복잡한 수식 같은 것은 아예 없다.

    핵무기를 둘러싼 물리학자들의 소심하고 비극적인 태도가 인류에게 어떤 재앙을 불러 왔는지를 설명한 '과학자가 가져야 할 국제평화의 책임'은 소름이 끼치게 한다. 핵분열을 처음 발견한 물리학자들이 세계평화를 위해서 핵무기를 개발해서는 안된다는 합의를 이뤘더라면 공포의 핵무기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실감나게 표현했다.

    저자는 1939년 초가 핵무기 개발이 시도되지 않도록 제어할 절호의 기회였다고 주장한다. 유럽과 미국에서 물리학자 사이에 역사상 최초로 핵분열이 공개석상에서 설명되고, 원자폭탄이 불러올 가공스러운 결과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몇 개월 뒤 핵분열 연쇄반응의 가능성을 실험으로 입증한 국가들이 나타나고 이런 내용이 출판됐다.

    다이슨 박사는 이같은 여론을 주도할 인물로 닐스 보어(1885~1962)와 알버트 아인슈타인(1879~ 1955)를 꼽았다.

    그러나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뒤 독일에서 히틀러가 권력을 잡으면서 물리학자 사이에 공포감은 더 커졌다. 1938년 독일에서 핵분열이 발견되고 독일정부가 비밀리에 우라늄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결국 서방세계 물리학자들은 히틀러가 틀림없이 핵무기를 개발해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갈 것으로 생각했다. 하이젠베르크를 비롯한 일류 독일 과학자들이 이 비밀 프로젝트에 연관됐다고 의심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책은 이렇게 소개했다.

    '히틀러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만연했는지 핵무기 제작의 가능성을 반박하는 물리학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공포는 과학자들에게 핵무기를 설계해야 한다는 떳떳한 명분을 주었다. 1941년에 과학자들은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공장과 연구소를 건설하자고 영국과 미국 정부를 설득했다. (중략) 과학자들이 핵무기에 대항해 공동의 윤리적 입장을 취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런 입장을 취할 수 있었던 마지막 순간은 1939년이었다.'

    다이슨 박사에 따르면 히틀러는 핵무기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일본 군사 지도자도 마찬가지였으며, 스탈린은 미국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파악하기 전에는 핵무기에 관심이 없었다. 루스벨트와 처칠이 핵무기에 관심을 가진 것도 과학 자문위원들이 부추겼기 때문이라고 그 책임을 과학자들에게 돌렸다.

    1944년 독일에 핵폭탄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밝혀졌을 때 미국 로스 앨러모스에서 핵무기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 중 연구에서 손을 뗀 단 한 명은 조지프 로트블랫이었다.

    그런데 과연 조국이 다른 물리학자들 사이에 세계평화를 위한 윤리적인 연대가 가능할까? 다이슨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1939년의 교훈을 배운 탓일까, 36년 뒤 DNA 재조합 기술이 별안간 발견됐을 때 생물학자들은 곧바로 아실로마에 모여 이 위험한 신기술의 이용을 제한하고 규제하는데 합의했다. 이 합의를 공식화하는데는 맥신 싱어를 비롯해서 몇 안 되는 과학자들의 용기로 충분했다고 다이슨은 주장했다.

    '과학은 반역이다'는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과학과 관련된 각종 주제들이 잘 버무려 있다. 미국 핵무기 개발의 중요한 역할을 했던 오펜하이머가 과학자인 동시에 얼마나 노련한 행정가이며 시인인가를 마치 이웃집 아저씨 이야기처럼 설명한다. 그리고 그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했던 리처드 파인만(1918~1988)에 대한 찬사도 가득하다.

    그러면서도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말년에 이상한 욕심에 빠져 실수했던 일들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꾸짖었다.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은 근본적인 문제들을 한 번에 해결하려는 꿈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결국 말년에는 단 한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과학자들이 '종교는 누구나 한 번쯤 앓고 지나가는 소아질병이다'라고 여기는 추세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반론을 내놓는다. 할머니가 기도치료사였던 다이슨은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상보적(complementary) 이라고 설명한다. 닐스 보어가 물리학에 도입한 이 개념은 어떤 특성을 묘사한 두 가지 설명이 모두 타당하지만, 동시에 관찰되지 않는 성질을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빛이다. 빛은 어떤 실험에서는 끊임없는 파장으로 관찰되지만, 다른 실험에서는 입자들의 무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의 실험에서 파장성과 입자성이 동시에 관찰되지는 않는다.

    다이슨은 '정신적인 현상의 세계가 존재하나 너무 유동적이고 쉬이 사라지기 때문에 육중한 과학의 도구로는 포착되지 않는 것이라는 쪽에 마음이 기운다'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