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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불법 정치 자금 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무소속 박기춘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통과시켰다.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무기명 투표를 진행해 가결 137표 부결 89표 기권 5표 무효 5표로 박 의원의 구속을 허락했다. 박 의원은 투표에 앞서 눈물을 보이며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지만, 정작 수사 과정에선 혐의를 일부만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본회의가 열린 13일 김현웅 법무부장관은 체포동의요청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김 장관은 "박기춘 의원은 17·18·19대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면서 분양대행업체 대표로부터 10회에 걸쳐 현금 2억 7000만 원, 명품시계 2개, 기념품 등 총 3억 5812만 원 상당의 정치 자금을 수수한 혐의"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박 의원은) 2015년 검찰에서 이와같은 금품 수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자 전 경기도의회 의원을 시켜 집에서 보관하던 현금과 시계를 증거 은닉한 것으로(추정돼) 현재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김 장관에 따르면 박 의원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현금 1억 3000만 원과 지역 구민에게 줄 기념품 868만 원 상당을 요구한 정치 자금법을 위반한 혐의는 인정했지만, 나머지 금품 수수 혐의에 대해선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금품 공여자는 박기춘이 금품을 요구한 사실을 일관되고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으며, 전 경기도의회의원도 박기춘 지시에 따라 물건을 옮기고 보관했다고 털어놓은 상황이다.
김 장관의 발언이 끝나자 박기춘 의원은 단상에 올라 신상 발언을 하기도 했다. 박 의원은 표결이 가결될 것을 예상한 듯 "본회의장에서 발언할 기회가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며 "오늘 한없이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으로 이자리에 섰다"고 심정을 밝혔다.
감정이 북받쳐올라 눈물을 보인 박 의원은 울먹이면서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지난 70여일 간 여론을 통해서 중형을 선고 받았다"며 "불체포 특권 뒤에 숨지않고, 방탄막으로 감싸달라고 요청하지 않겠다"고 단념한 듯 말했다.
아울러 "(나는) 아무런 배경도 없이 오직 땀과 눈물로 앞만보고 달려왔지만, 그 정치 여정도 이제 접는다"고 덧붙였다.
박기춘 의원의 숙연한 발언에도 여야 의원들은 체포동의안에 대해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등을 돌렸다.
한편 본회의에 앞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총회에서 이종걸 원내대표는 박 의원에 대한 표결에서 반대표를 선택해 달라는 의미로 보이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에 일각에선 "마지막까지 제식구 감싸면서, 방탄 국회라는 여론의 비난을 자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는 상황이다.
"박기춘 의원의 체포동의안은 19대에서 열 번째 체포동의안이고, 처리 안 된 채 남아있는 것이 2건 있다"며 의미심장한 발언으로 운을 뗀 이 원내대표는 "지혜로운 결론을 낼 수밖에 없다"며 "의원들 한 분 한 분이 중지를 모아달라"고 설득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나아가 박기춘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당하다는 듯 "점점 더 국민의 눈높이와 엄정한 평가들이 우리 국회를 몰아세우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발언이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것은 저희들이 극복해야 하고, 국민의 의사를 잘 받아 모셔야…"라면서 수습하기도 했다.
이 원내대표는 마무리 발언까지 "(혐의에 대한) 여러 자료들이 있지만, (자료보다도) 더 분명하고 왜곡되지 않은 사실 그대로 평가해야 될 것으로 믿는다"며 지혜로운 판단을 내려주시길 바란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종걸 원내대표의 당부때문인지, 표결 결과는 가결 137표 부결 89표, 기권이 5표, 무효 5표로 나왔다. 무기명 투표인만큼 누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의 여당 의원들이 가결을 선택한 것으로 가정한다면, 야당 의원들의 상당수가 박기춘 의원을 옹호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