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명예를 지키는 유일한 길은 '자진 사퇴'
  • ▲ 무소속 박기춘 의원. ⓒ연합뉴스
    ▲ 무소속 박기춘 의원. ⓒ연합뉴스

     

    양복 상의 왼가슴 편에 달린 금뱃지를 떼려니 손이 덜덜 떨리는 모양이다. 불법 정치 자금 수수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무소속 박기춘 의원과 성폭행 혐의로 조사 받던 중 국회윤리특위에 회부돼 징계를 기다리는 무소속 심학봉 의원 얘기다.

    박기춘 의원은 지난해 국토교통위원장 직임 시절 한 분양대행업체로부터 부정 청탁과 1억 원의 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자녀의 결혼 축의금으로 둔갑한 1억 원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외 시계·가방·안마 의자 등의 뇌물 수수 혐의도 있다.

    정부는 지난 10일 국회에 박기춘 의원 체포동의요구서를 제출했다. '정치자금법위반'과 '증거은닉교사'가 그 바탕이다. 공교롭게도 박기춘 의원은 같은 날 새정치민주연합 탈당과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나 의원직 사퇴와 관련된 언급은 전연 없었다.

    사퇴 의지가 부재한 박기춘 의원의 이날 불출마 선언은 의원직에서 물러나겠다기보다는 19대 국회에 끝까지 앉아 있게만 해달라는 읍소로 느껴진다.

    의원회관 자리를 꿰차고 있는 자가 또 있다. 심학봉 의원이다.

    그는 지난달 13일 대구에 위치한 한 호텔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40대 여성을 불러들여 성관계를 가졌다. 심 의원은 앞서 12일 피해 여성을 호텔로 불렀지만 응하지 않자, 사건 당일 호텔로 올 것을 재차 요구했다. 그는 피해 여성이 방에 들어오자 성관계를 가진 뒤, 여성에게 30만 원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강제로 옷을 벗기고 관계를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돼 성폭행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심학봉 의원은 성폭행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자 지난 3일 새누리당을 탈당했지만, 의원직을 사퇴하지는 않았다. 이에 새정치연합 여성 의원들은 심 의원을 의원직에서 제명할 것을 요구하며, 정의화 국회의장을 방문하는 등 항의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 ▲ 무소속 심학봉 의원. ⓒ연합뉴스
    ▲ 무소속 심학봉 의원. ⓒ연합뉴스

     

    이들이 국회 밖을 싸지르며 행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범법 행위는 각각 다르지만, 뱃지에 대한 집착은 쌍생아같이 똑 닮아 보인다. 끌려나갈지언정 국회를 제 발로 걸어 나갈 심산은 없어보이는데, 이 덕에 동료 의원들은 국민들로부터 연대 차원의 육두문자를 받아내는 중이다.

    박기춘 의원과 심학봉 의원은 자신들이 받고 있는 정치·의식적 부패 혐의가 의원직을 사퇴할 만큼의 과오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들은 자신과 당에 피해가 갈 것을 염려한 당원일 뿐, 나라를 걱정한 정치인이 아니었다.

    박기춘 의원은 단지 "당이 저로 인해 국민들에게 더 외면 당할까봐 두렵다"고 말한 채 탈당을 선언했다. 심학봉 의원도 역시 "나의 부주의와 불찰로 일어난 일이기에 더 이상 당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새누리당을 떠난다"까지였다.

    "나랏일의 중책을 맡은 사회 지도층으로서 사죄하며 자리에서 내려가겠다"는 말은 그들에게서 듣기 무척 어려워 보여 더욱 씁쓸하다.

    직임 자질 중 도덕적 기준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는 정치인 신분으로서 두 사람은 국민의 신뢰를 전부 잃은 상태다. 이들이 더 이상 정치인으로 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이것이 어쩌면 그들이 옷을 벗지 않는 이유일 수 있다. 남은 시간 철면피로 버티면서 세비나 받아낼 속셈이라는 말이다.

    차기 대의대표를 선출하는 20대 총선까지 8개월여가 남은 상황에서, 박기춘 의원과 심학봉 의원이 물러나지 않음으로써 초래되는 국민의 세비 낭비는 한두 푼이 아니다. 직접적으로 본인에게 지급되는 세비 외에도 보좌진의 급여가 국고에서 지급되며, 의원회관 사무실 공간이 무상으로 제공되는 것도 따지고보면 국민의 손실이다. 게다가 박기춘 의원의 경우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이기 때문에 상임위원장에게 지급되는 직책비도 있어, 그가 '버티기'를 하는 동안 국민의 호주머니에서는 돈이 줄줄 새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두 사람의 거취 논란이 더욱 아쉬운 것은 이 때문이다. 백 번 양보해 그들이 받고 있는 뇌물수수와 성폭행 혐의가 불완전한 인간이 저지른 찰나의 실수로 드러나더라도, 끝까지 기득권을 놓지 않는 모습은 실망과 비난의 수위를 끌어올리는 데 한몫하고 있다.

    이 여름, 국회에서 가장 뻔뻔한 국회의원으로 꼽히는 이들의 모습은 한국 정치현실의 참담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두 사람이 정치선진국으로 불리는 미국의 국회의원이었다면 이미 의원 신분을 벗은 채 수사와 재판을 받았을 것이다.

    박기춘 의원과 심학봉 의원은 국민을 위한 마지막 봉사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국해의원·국개의원이라는 일각의 조롱을 부인하고 싶다면 선택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유권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길, 자신의 마지막 명예를 지키는 길을 스스로 걷어차는 과오는 지금까지의 실책보다 더 아플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