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력의 시험대‥'남중국해와 남사군도'
  • ▲ 피어리 크로스 암초에 인공섬을 만들고 군사용활주로를 건설하는 모습이 포착된 인공위성 사진.ⓒamti
    ▲ 피어리 크로스 암초에 인공섬을 만들고 군사용활주로를 건설하는 모습이 포착된 인공위성 사진.ⓒamti

    중국이 남중국해 인근의 인공섬에 군사기지를 건설하면서, 미·중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남중국해 인근에서는 중국과 미국의 영유권 분쟁이 계속돼 왔다.

    스프래틀리 제도 (중국명 남사군도 南沙群島·필리핀명 칼라안 군도·베트남명 쯔엉사 군도) 해역이 분쟁 지역화된 주요 원인은 이 지역이 갖고 있는 경제적 가치 때문이다. 남사군도 해역 인근은 어족자원 및 천연자원의 보고(寶庫)다. 어업 측면에서도 중요한 가치가 있지만 무엇보다 양질의 석유와 가스가 풍부하게 매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사군도 해역이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이것만이 아니다. 이 지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해상교통로 가운데 한 곳이다. 국가적 중대사인 에너지 정책은 물론 해상 무역이란 측면에서도 절대 내줄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인 셈이다.

  • ▲ 남사군도 인근을 지나야하는 대한민국 주요 원유수송로(주황색 굵은 선). ⓒ뉴데일리
    ▲ 남사군도 인근을 지나야하는 대한민국 주요 원유수송로(주황색 굵은 선). ⓒ뉴데일리



    남사군도가 갖고 있는 이런 특징들은 자연스럽게 국가 간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국이 남사군도가 있는 남중국해에 공군과 해군력을 집중시키고, 인공섬에 군사기지를 만드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문제는 중국의 군사력 강화가 미국을 자극하면서, 양국 간 무력충돌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미국은 이 지역에서의 군사작전 가능성을 숨기지 않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세운 군시기지는?

    남사군도 내 피어리 크로스 암초(중국명 융수자오·永暑礁)의 인공섬을 조성하고 3천m 길이의 활주로와 유도로가 건설하고 접안 시설도 속속 완공하고 있는 상태다. 공사가 끝나면 대형 수송기와 각종 군함이 정박할 수있는 군사기지가 된다.

    ◇점점 커지는 미-중 충돌 우려

    미국 내 싱크탱크에서는 우발적 사고, 중국의 의도적 위협, 간접 사건 등을 이유로 미ㆍ중간 무력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G2으로 국제질서를 양분하고 있는 가운데 패권 선점을 위한 무력충돌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재앙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중국과 격하게 대치하고 있는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돼 한국이 입장을 표명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미국의 압박은 현실이 되고 있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최근 “한국이 미국과 마찬가지로 분쟁 당사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한국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보편적 원칙과 국제적 규범을 지지하는 측면에서 남중국해 문제에 언급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며, “한국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 ▲ 중국이 남사군도의 인공섬 내 활주로 건설을 완료하면 J-11을 배치할 가능성이 있다.ⓒ美 국방부
    ▲ 중국이 남사군도의 인공섬 내 활주로 건설을 완료하면 J-11을 배치할 가능성이 있다.ⓒ美 국방부

    미국이 남 중국해 및 남사군도 현안과 관련돼, 이처럼 한국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이는 이면에는 한국에 대한 서운함 혹은 불안감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한국이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발 빠르게 가입한 것과 대조적으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해서는 미온적으로 반응하면서, 미국의 불안감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는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길 기대한다는 원론적 입장만을 밝혔지만, 언제까지 지금처럼 상황을 관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미ㆍ중간 첨예한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쉽지 않은 숙제를 떠안은 한국 정부는, 양국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실리를 얻을 수 있는 ‘신의 한 수’를 찾기 위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남중국해는 국제교역량의 99.7%, 원유(原油) 수입의 100%를 해운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 국가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명선이나 다름이 없다. 반면 남중국에 주변 국가들에게도 이 바다는 생존을 위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곳이다.

    중국과 대만,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이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얽혀 분쟁을 벌이는 현실은, 이 바다가 갖고 있는 지정학적·경제적 가치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남중국해와 남사군도를 둘러싼 미·중간 갈등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 ▲ 지난 5월 20일 미해군 해상초계기 P-8A 포세이돈이 정찰한 남사군도 내 중국 인공섬 매립협장.ⓒ美 국방부
    ▲ 지난 5월 20일 미해군 해상초계기 P-8A 포세이돈이 정찰한 남사군도 내 중국 인공섬 매립협장.ⓒ美 국방부

    동시에 한국의 명확한 입장 표명을 바라는 두 강대국의 요구는 갈수록 수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이 두 강대국의 눈치만 살피면서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다면, 한국은 명분도 실리도 잃은 채 국제외교 무대에서 고립될 수도 있다. 이제는 원론적인 답변을 넘어, 명확한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됐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외교 당국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주적인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고 있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을 고려할 때, 한국외교의 제1원칙은 한미동맹 강화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직업 외교관으로서 최장기 대사 기록을 갖고 있는 김하중 전 주중대사의 조언은 청와대와 우리 외교당국 관계자들이 흘려 들어서는 안 될 내용을 담고 있다. 

    2001년 10월부터 2008년 2월까지 6년 2개월 동안 주중 대사를 지낸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중국 전문가다. 그런 그가 대한민국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로 꼽은 국가는 중국이 아닌 미국이다.

    그는 올해 3월 조선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진부한 얘기 같은데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나라는 미국이다. 지구상 어떤 나라도 미국을 대신할 수 없다. 앞으로 상당 기간 변함이 없을 거다. 중국과 일본으로서도 제일 중요한 나라가 미국이다.

    우리 내부에서 자꾸 한·중 관계를 말하는데 중국은 우리와 역사적 관계도 오래됐고 문화적 공유점도 많지만, 이념 등 다른 점이 아직 많다.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중국은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고 어떤 경우에도 중립을 지키려 한다.

    한·중 관계 발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중략) "대사 시절 중국 국방대학원에서 강연을 했다. 장성과 대령급 수백 명이 모인 자리였다. 중국에 동맹이 있느냐, 우린 있다고 했다. 중국에 동맹이 있다면 동맹국이 중요하냐, 보통 국가가 중요하냐고 했다. 

    우리가 북한과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중국이 미국처럼 우릴 지지해 줄 수 있느냐고도 했다. 강연이 끝난 뒤 대장 계급인 대학원장이 내게 ‘대단하다’고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