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찹쌀떡 공조" 주장은 어디로...당 분열에도 선당후사 모습 안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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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지난 2월 2일 원내대표 경선 투표를 앞둔 당 소속 의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콩가루 집안이 아니라 아주 찹쌀떡을 만들어서 찹쌀가루 집안을 확실하게 만들겠습니다.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는 압도적인 표 차로 당선이 확정되자 수락연설에서 "대통령, 청와대, 또 정부와 찹쌀떡 같은 공조를 이루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모두 공염불에 불과했다. 유 원내대표 체제 이후 당청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새누리당도 결국 콩가루 집안이 되고 말았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8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이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는 하지 않았다. 끝까지 버티다가 당 의원총회의 '사퇴 권고' 결정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나는 것이 한으로 남았던 것일까. 유승민 원내대표는 이날 사퇴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까지 정부 여당에 직격탄을 날리고 퇴장한 셈이다.
그는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라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가치와 원칙, 정의를 부정하며 자신의 사퇴를 압박했다'는 식의 논리를 편 것이다.
특히 유승민 원내대표가 좌파들의 집회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한민국의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규정을 인용했다는 점은 여권 정치인들의 두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 정도였다.
유 원내대표는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며 "오늘이 다소 혼란스럽고 불편하더라도 누군가 그 가치에 매달리고 지켜내야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자신은 헌법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했고, 대통령은 이를 탄압했다는 식의 주장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유 원내대표가 자진사퇴를 거부하며 '강제로 내쳐지기'를 원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에게 탄압받는 희생양의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사태를 이 지경까지 끌고 왔다는 것이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이날 "정치는 현실에 발을 딛고 열린 가슴으로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라며 "진흙에서 연꽃을 피우듯, 아무리 욕을 먹어도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라는 신념 하나로 저는 정치를 해왔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2주간 저의 미련한 고집이 법과 원칙, 정의를 구현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다면 저는 그 어떤 비난도 달게 받겠다"고도 했다.
자신만의 '법과 원칙, 정의'를 앞세운 정치 행보를 지속해 나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당이 그동안 자신의 거취 문제를 놓고 심각한 내홍을 겪었음에도 선당후사(先黨後私)의 모습은 추호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유 원내대표의 사퇴의 변을 두고 당 내부에선 끝까지 '제 얼굴에 침 뱉기'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의원은 또 언론 인터뷰에서 "유 원내대표가 법과 원칙,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고집을 부렸다고 하는데, 그렇게 고집 안 부렸으면 좀 더 이런 것(법과 원칙)을 지키기가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고 꼬집기도 했다.
유 원내대표가 자당엔 끝까지 콩가루를 안긴 채 야당엔 찹쌀가루를 선사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마지막까지 심각한 당내 갈등을 유발시키면서, 분열 직전의 새정치민주연합엔 정치공세의 빌미를 제공하며 화합을 유도했다는 주장이다. 여권 관계자는 "원내대표 사퇴 논란으로 여야의 입장은 완전히 뒤바꼈다"면서 "여당의 지지율 폭락도 시간문제"라고 우려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사퇴를 두고 "유승민 원내대표가 대통령께 밉보인 죄로 결국 쫓겨났다. 대한민국 헌정사에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총공세에 나섰다.
이들은 "대통령의 서슬에 눌려 박수를 치며 자신들의 자신들 손으로 뽑은 원내대표를 끌어내리는 모습은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대통령 향해서는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親朴) 새력은 배신자를 쫓아냈는지 몰라도 국민은 국민 핫바지로 보는 대통령을 권위주의 본다"고 맹비난했다.
지난 2005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당시 비례대표 초선 의원이던 유 원내대표를 대표 비서실장으로 발탁한 바 있다. 이후 유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자리매김했고, 2011년 7월 전당대회 땐 친박(친박근혜)계 단일 후보로 당 지도부 경선에 출마해 최고위원에 당선됐다.하지만 유 원내대표가 2012년 이후 이른바 '자기 정치' 행보의 욕심을 드러내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유 원내대표는 2012년 2월 박 대통령이 추진하던 당명 변경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했으며, 이외에도 외부 인사 영입이나 당 '쇄신'을 목표로 한 정책 변경 등의 문제를 놓고도 박 대통령과 수차례 대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유 원내대표는 또 지난 대선을 2개월가량 앞두고 '과거사 인식' 논란으로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하는 등 위기감이 고조됐을 당시 이른바 친박 '핵심' 인사들의 '2선 후퇴론을 주장했다가 박 대통령과 거듭 마찰을 빚기도 했다.특히 유 원내대표는 올해 2월 증세·복지 논쟁, 사드(THAAD·미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공론화 논란,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 등을 놓고 정부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며 당청관계 갈등을 유발시키기도 했다.결국 유 원내대표가 위헌 논란의 '국회법 개정안'을 야당과 합의한 것을 기점으로 두 사람이 돌이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넌 셈이다. 이번 논란으로 유승민 원내대표는 한동안 '칩거' 또는 '침묵'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일각에선 '원조 친박(친박근혜)'으로 분류됐던 유승민 원내대표가 이제 '비박(비박근혜)'을 넘어 완연한 '반박(반박근혜)'으로 돌아선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그가 언제 어떤 진영에서 또다시 자신만의 정치를 선보일지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