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의 두 가지 자충수, 자사는 물론 타사 기자 신뢰도까지 무너뜨려


  • 이완구 국무총리후보자 인사청문특위 위원인 김경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6일 국회 정론관에서 "이완구 후보자가 자신의 부동산투기 의혹과 관련한 언론보도를 통제하고 회유·협박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김경협 의원은 "이 후보가 언론에 '외압'을 행사했음을 뒷받침하는 매우 신빙성 있는 제보가 접수됐다"고 덧붙여, 자신의 발언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강조했다. 김 의원이 입수한 '제보 내용'은 이날 오후 KBS '뉴스9'를 통해 공개됐다.

    KBS '뉴스9'는 "이완구 후보자가 출입기자들과 가진 오찬 자리에서 언론사 간부에게 전화한 뒤 자신에 관한 의혹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막았다"며 해당 내용이 담긴 녹음 파일을 보도했다.

    이 1분45초 짜리 리포트에는 "XXX하고, OOO한테 '야 우선 저 패널부터 막아 임마, 빨리 시간없어' 그랬더니, 지금 메모 즉시 넣었다고 그래 가지고 빼고 이러더라고. 내가 보니까 빼더라고"라는 이완구 후보자의 육성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이 녹음 파일은 한국일보의 A기자가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일보는 10일 지면과 인터넷 홈페이지에 '이완구 후보자 녹취록 공개 파문 한국일보사 입장'이란 제목의 해명글을 싣고, "지난달 27일 이완구 후보자와의 오찬 자리에서 A기자가 이 후보자의 발언을 녹음했고, 김경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 관계자에게 해당 파일을 건넸다"고 실토했다.

    이후 "김 의원실 측이 이 파일을 KBS에 전달, 관련 육성파일이 전파를 타게 된 것"이라는 게 한국일보의 해명이었다.

    다음은 한국일보의 입장 전문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언론관련 발언을 담은 녹취록 공개파문과 관련해 경위와 본보의 입장을 밝힙니다.

    이 후보자는 지난달 27일 본보 기자를 포함, 일간지 기자 4명과 점심식사를 나누던 중 일부 언론사 간부와 친분을 과시하며 인사에도 개입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이 발언이 담긴 녹취록이 지난 6일 KBS를 통해 공개됐고 야당에선 이 후보자의 언론 통제 및 개입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점심 식사 당시 본보 기자를 포함해 일부 기자들은 이 후보자의 발언을 녹음했습니다. 본보는 이 후보자의 왜곡된 언론관이 문제가 있다고 보고 기사화 여부를 심각하게 검토했지만, 당시 그가 차남 병역면제 의혹에 대해 매우 흥분된 상태였고 비공식석상에서 나온 즉흥적 발언이었다고 판단해 보도를 보류했습니다.

    통상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기자들은 의혹을 제기 하는 야당의원들을 집중 취재합니다. 이 과정에서 각종 정보나 소문에 대해 얘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본보 기자는 국회인사청문특위 위원인 김경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 관계자를 만나 취재하던 중 이 후보자의 해당 발언에 대해 얘기하게 되었습니다. 청문회에서 이 후보자의 언론관에 대한 추궁을 준비하고 있던 김 의원실측에선 녹음 파일을 요구했으며, 본보 기자는 취재 윤리에 대해 별다른 고민 없이 파일을 제공했습니다. 이후 김 의원실측은 이 파일을 KBS에 전달했고, 이 내용이 방송을 통해 공개됨으로써 파장이 커지게 된 것입니다.

    경위가 무엇이든, 취재내용이 담긴 파일을 통째로 상대방 정당에게 제공한 점은 취재윤리에 크게 어긋나는 행동이었습니다. 당사자 동의 없이 발언내용을 녹음한 것 또한 부적절했습니다. 다만 애초 이 후보자의 발언을 보도하지 않은 것이 이 후보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고, 반대로 관련 내용을 야당에 전달한 것 역시 이 후보자를 의도적으로 흠집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밝혀두고자 합니다.

    본보는 이번 사태가 취재 윤리에 반하는 중대 사안이라고 보고 관련자들에게 엄중 책임을 묻는 한편,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대책을 마련할 것입니다. 본보 구성원 모두 깊이 책임을 통감하고 있으며, 중도가치를 지향하는 정론지로서의 본분을 새기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10일 한국일보의 입장 표명으로,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육성 녹음 파일이 지상파 뉴스에 등장하게 된 사연이 공개됐다. 이 후보자의 발언을 몰래 녹취한 건 KBS 기자가 아니었고 당시 식사 자리에 앉아 있었던 한국일보의 A기자였다. 그런데 A기자는 청문회 준비를 하던 특정 정당 관계자에게 해당 파일을 통째로 넘기는 납득하기 힘든 행보를 보였다. 그 결과 희대의 특종은 엉뚱하게도 김경협 의원의 제보를 받은 KBS가 터뜨리게 됐다.

    한국일보는 이 후보자의 발언을 녹음하고도 보도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당시 그가 차남 병역면제 의혹에 대해 매우 흥분된 상태였고 비공식석상에서 나온 즉흥적 발언이었다고 판단해 보도를 보류했다"고 해명했다.

    이같은 해명은 한국일보가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중차대한 실수를 저질렀음을 시사하고 있다.

    첫째, 한국일보는 자사의 취재기자가 사석에서 취재원과 만나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을 몰래 녹음했다고 실토했다. 물론 해당 행위는 불법이 아니다.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하면 두 사람이 대화할 경우 쌍방은 다른 상대방의 동의 없이도 대화를 녹취할 수 있다.

    이날 A기자는 자신의 육성이 포함된 이 후보자와의 대화 내용을 녹취했으므로 통신비밀보호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문제는 공적인 자리가 아닌, 사적인 자리에서 나눈 대화를 동석한 기자가 몰래 녹음했다는 점, 그리고 이 사실을 한국일보가 공식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현행법 위반이 아니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대화 내용을 녹음하는 것은 결코 자랑스럽거나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다.

    정당이나 국회 출입 기자는 하루에도 수차례 취재원인 정치인을 만나 밥을 먹고 술잔을 기울이고 많은 대화를 나누기 마련이다. 취재 소스는 사실 공식적인 브리핑이나 기자회견 자리보다는 이런 사석에서 많이 얻어진다. 때문에 기자들은 취재원과의 사적 만남을 계속 가지려 하고, 정치인들은 이같은 기자의 속성을 잘 알면서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비공식적인 미팅을 자주 갖는다.

    그런데 이번 이완구 후보자 녹취 파문이 불거지면서 정가에 미묘한 미동(微動)이 감지되고 있다. 정치인들이 공식적인 기자회견 외에는 기자들과의 접촉을 꺼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는 것. 일부 정당 관계자들에게 국한된 얘기일 순 있지만, 이는 앞으로의 취재 관행에도 변화가 일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상대방이 자신의 발언을 몰래 녹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면서 허심 탄회하게 속내를 털어놓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같은 의심이 깊어질수록, 일선 기자들의 취재 환경은 점점 열악해 질 수밖에 없다. 사적인 식사 자리조차 '공식적인 미팅' 분위기를 풍긴다면, 앞으로 기자들이 정치 이면의 속사정을 알아내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 될 수 있다.

    한국일보의 자충수는 비단 자사 기자들 뿐 아니라, 여타 언론사 기자들의 발목까지 잡아버리는 악수(惡手)가 되고 말았다.



  • 둘째, 한국일보는 몰래 녹취한 파일을 통째로 정당 관계자에게 넘겼다.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이 후보자는 최근 부동산투기 의혹 등 개인신상 내역이 낱낱이 공개되면서 매우 곤란한 지경에 처해 있었다. 이날 정치부 기자들과 김치찌개를 먹을 때에도 차남 병역면제 의혹으로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는 게 한국일보의 설명이었다.

    이 와중에 그는 유수 언론사의 보도와 인사에 개입하는 '갑질' 발언을 내뱉었다. 이같은 실언을 가장 반길 이는 당연히 야당 의원들이다. 상식적으로 해당 발언이 세간에 알려지면 이 후보자에게는 씻을 수 없는 치명타를, 이 후보자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야당 측에는 '호재'로 작용할 것이 분명했다. 결과적으로 해당 파일은 야당 의원의 손에 들어갔고, 한 지상파 뉴스를 통해 전국적으로 까발려졌다.

    하지만 이같은 결과가 정녕 한국일보가 의도한 것이었을까? 훗날 핵폭탄이 될 수도 있는 발언을 몰래 녹취한 기자는 이를 '꾹 참고' 보도하지 않는 대신, 상대방의 먹잇감으로 넘기는 비정상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와 관련, 한국일보는 '두 가지 이유'에서 보도를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우선 ▲당시 자리가 비공식적인 식사 자리였고 ▲발언 당시 이 후보자가 매우 흥분한 상태였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실언이 튀어나왔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는 취지였다.

    덧붙여 한국일보는 "애초 이 후보자의 발언을 보도하지 않은 것이 이 후보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고, 반대로 관련 내용을 야당에 전달한 것 역시 이 후보자를 의도적으로 흠집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사건 당일 육성을 녹음하고도 이를 보도하지 않은 것은 누가 보더라도 이 후보자와의 관계성을 고려한 처사였다. 당시 자리가 '비공식적'이어서 보도를 안했다는 한국일보의 해명은, 그런 사석에서 대화를 '풀타임' 녹음한 자사 기자의 행동과는 심각한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A기자가 문제의 파일을 상대측 정당 관계자에게 넘긴 행동은 또 다른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이는 이 후보자를 보호하기는 커녕, 심각한 위해를 가하는 행동이었다. 그는 왜 당시엔 보도하지 않았던 내용을 야당 의원 측에 전달한 걸까?

    한국일보가 '반성문' 격인 공식입장을 전면에 내걸고, A기자를 문책하겠다고 밝힌 점으로 볼 때 A기자의 행동은 독단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차라리 A기자가 자신의 지면을 통해 녹취록을 당당히 공개했다면 이같은 지탄은 덜 받았을지도 모른다. 되레 특종을 터뜨렸다고 주위의 극찬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당사자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정당 관계자에게 통째로 파일을 넘기고 말았다. 이는 명백한 취재 윤리 위반이다.

    여권에선 "녹취파일이 건네지는 과정에 무엇인가 뒷거래가 있지 않느냐는 의혹을 가질수 밖에 없다" "비밀리에 녹취한 파일이 야당 의원실에 넘기겨 공영방송에 보도된 것은 명백한 취재윤리와 중립의무를 위반한 정치개입"이라는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이런 의혹을 받는 게 당사자로서는 무척이나 억울한 일이겠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동종 의혹'이 한 가득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처사다. 그 누가 이런 보도 과정을 '정상적'이고 '상식적'이라 여기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