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 팔린다, 진짜 쪽 팔려”
그들에게는 오로지 ‘최고위급 회담’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1월 1일 중공군 6개 군, 38선을 넘어 총 공격 개시.
1월 2일 서부전선 유엔군, 서울 북방 신방어선으로 후퇴. 국군 제1·6사단, 한강 남쪽으로 후퇴.
1월 3일 중공군, 미 제24사단의 정면 중앙부 돌파 후 서울 북방 11Km 지점에 진출.
정부, 부산을 임시 수도로 결정.
1월 4일(전쟁 194일차) 개성-서울, 연천-서울 간 도로를 진격 중인 중공군 부대, 유엔군에 근접. 국군·유엔군 서울 철수.
이어서 노약자와 환자, 그리고 ‘바닥 빨갱이’를 포함한 20만 명 정도만 남기고
서울 시민 120여만 명이 서울을 떠났다. 지금으로부터 64년 전의 일이다.
새해들어 ‘해방 70년, 분단 70년’이 인구(人口)에 널리 회자(膾炙)되고 있다.
하지만 6·25남침전쟁 65년도 결코 잊을 수는 없다.
영화 ‘국제시장’으로 다시 살아난 ‘흥남(興南) 철수’와 함께 ‘1·4후퇴’도 기억해야 마땅하다.
1975년 가을, 맥아더 동상이 있는 인천의 자유공원에서 얼마 멀리 떨어지지 않은 번화가에
『뉴 사이공(New Saigon』이라는 경양식(輕洋食)집이 개업을 했다.
신기한 경양식집이 생겼다는 친구의 손에 끌려 알바(가정교사)를 끝내고 늦은 저녁에 가 봤다.
가난한 대학 초년생으로는 엄청 부담이 가는 가격이었지만,
‘드라이 진’ 한 병에 ‘멕시칸 사라다’(쌜러드에 삶은 계란 가루 뿌린 것?)을 시켜놓고
친구들과 떠들고 있는데, 칸막이 저편에서 여자 울음소리와 남자들의 고함 소리가 섞여 들린다. 호기심에 슬그머니 일어나 현장을 살폈다.
중년 여성 둘이 머리끄덩이를 잡고 “이 년 저 년, 죽일 년”하며 싸운다.
한 남자가 어쩔 줄 모르고 난처한 표정으로 지켜 보고 있다.
그 옆 칸막이 안에서는 서넛 남자들이 ‘아오자이’(베트남 여성의 전통 의상)를 입은
멋지고 예쁜 처녀들을 주무르고, 이에 저항하는 처녀를 때리고 걷어차고...
한참만에 경찰 아저씨들이 출동했지만, 보고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경찰 아저씨들이 현장을 수습하기 시작했을 때,
모두가 장발(長髮)이었던 우리 일행은 ‘핫바지에 방귀 새 듯’ 튀었다. 물론 술값은 치루고...
나중에야 그 밤에 일어난 일의 전말을 대강 알 수 있었다.
그 경양식집은 그 해 봄에 패망한 월남(越南)에서 자유를 찾아 도망친 중년 여성이 차린 가게다. 그 여성은 파월(派越) 한국인 기술자의 현지 첩(現地 妾)이었고, 머리끄덩이를 잡았던 한국 여인은 그 기술자의 본처(本妻)였다. 옆에서 지켜 본 남자는 바로 그 기술자.
자신의 월남 첩(妾)이 한국에 와서 장사를 시작했다니 궁금해서 찾아왔고,
본처는 낌새를 알고 따라 왔던 것.
그럼 ‘아오자이’의 처녀들은 누구인가. 그들도 자유를 찾아 도망 온 월남 처녀들이다.
후일 들은 얘기지만, 그들 모두가 프랑스에서 유학한 재원(才媛)들이라고 했다.
나는 그날 ‘한 나라의 군대가 비실비실하면 여자가 수난을 겪는다’는,
그리고 ‘나라 없는 백성은 어디서고 개 고생’이라는 역사의 진리를 확인했다.
이제는 지구상에서 사라진 남의 나라 얘기지만,
올해는 자유 월남이 패망한지 꼭 40년이 되는 해도 된다.
밑창에 얇은 철판까지 댄 미제(美製) 정글(전투)화의 군대가
‘고무 타이어 조각을 새끼줄로 발바닥에 묶은’ 군대에게 패했다.
흔히 하는 말로 쪽 팔리는 일이다.
월맹(越盟) 공산주의(전체주의)자들의 통일전선(統一戰線)과
‘쓸모있는 얼간이’들의 부화뇌동(附和雷同), 부패·무능한 정치인들의 득세,
공산주의에 무지(無知)했던 궁민(窮民)들이 일체가 되어 합작한 결과물이다.
이 과정에서 크게 한 몫을 한 것이 ‘화전양면전술(和戰兩面戰術)’이다.
미국의 헨리 키신저(후에 국무장관)와 월맹의 레둑토(黎德壽:후에 공산당 정치국원) 간
비밀협상 끝에 체결된 ‘파리 평화협정“(1973년 1월)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던
월맹의 재침(再侵)과 월남의 패망은 ‘화전양면전술(和戰兩面戰術)’의 진수(眞髓)를 보여준
사건이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을 볼 수 밖에 없다.
북녘의 어린 ‘최고 돈엄(豚嚴)’이 올해도 어김없이 좃선중앙TV에 나와
그 무슨 ‘신년사’라는 것을 주절거렸다.
내용인 즉 ‘척 보면’ 알 수 있는데도, 대한민국의 헛 똑똑이 북한 학자나 여의도 새(鳥)떼들,
그리고 ‘쓸모있는 얼간이’들의 귀와 눈에는 오로지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습네다.”만 들리고 보인다. 그러면서 그것에 걸맞는 보물(?)·숨은그림이 없나 억지춘향으로라도 찾아보고
맞춰보려고 여념이 없다. 예년에 비해 대남(對南) 부분이 엄청나게 늘어났네 어쩌네 하며...
그렇다. 그 ‘신년사’라는 것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핵 무기도, 총도 있다.
지상낙원(地上樂園)의 신기루에다가 그에 걸맞는 전기(電氣) 걱정,
어린이 학용품·식료품과 군인들 보급품의 모자람도 듬뿍 담겨 있다.
더욱이 ‘제도 통일을 추구하지 말라’ 운운하면서 흡수통일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백도혈통(百盜血統)의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막아보겠다는 ‘생명 연장의 꼼수’마저 부리고 있다. 또한 그런 주제에 한반도를 자기 수중에 넣어 보겠다는 통일전선(統一戰線)도
화전양면(和戰兩面)의 속내도 드러내고 있다.
찬찬히 들여다 보면 진짜 보물(?)·숨은그림이 있는데, 이건 놓치기 쉽다.
아니 위에 열거한 우리 남녘의 얼치기들은 그야 말로 일부러 건성건성 듣고 본다.
이른바 ‘최고위급 회담’을 위시한 ‘북남대화’라는 것을
“남쪽이 무릎을 꿇거나, 무릎 꿇을 준비가 되어 있고, 이런 것이 확실히 담보되면
함 해 보겠다.”는 주문(注文=呪文)이다.
‘화전양면전술(和戰兩面)’과 ‘통일전선(統一戰線)’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는 묘수(妙手)는 많지 않다.
우리도 화전양면과 통일전선으로 맞받아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하지만 ‘벼르다 벼르다 당하고, 그리고 나서는 또 벼르기만을 거듭하는’
자랑스럽기만(?) 한 ‘궁민(窮民)의 군대’를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최고 돈엄(豚嚴)’과 영혼의 2인3각(二人三脚)을 맺은 반역세력(叛逆勢力)이
거리를 휘젓고 다니도록 그대로 놔두고서는 게임이 안 된다.
한반도 ‘만악(萬惡)의 근원’을 제거하는 지름길인 자유통일을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특히 “통일이 이상이나 꿈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로 구현될 수 있도록”하려면
떼강도나 거지와도 대화와 협상을 해야 한다. ‘최고위급 회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실 우리끼리 얘기지만,
21세기 대명천지(大明天地)에 부끄러운 줄 모르고
인민들의 밥상에 올릴 버섯이나 생선을 올해는 기필코 어찌해 보겠다며
‘신년사’랍시고 흰소리를 늘어 놓은 집단의-더군다나 그 몸뚱이에 쌍판떼기하며-
수괴(首魁)와 마주 앉아 ‘최고위급 회담’을 해야 하는 건
진짜 쪽 팔리는 일이긴 하다.
조간 신문 한 귀퉁이에 실린 “수출과 수입액을 합한 한국의 연간 무역액이
4년 연속 1조 달러를 돌파했다.”는 기사가 왠지 처량 맞아 보인다.
<더 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