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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깨진 명예훼손 판결에 '법적안정성 위태' 지적
대법원 판례, 개별 사건에 적용하기 나름
서울중앙지법 한 형사재판부가 명예훼손 사건에서 유달리 무죄 판결을 많이 해 관심을 끈다.
피고인 입장에서 '복불복 판결'이 우려된다는 견해와 판사가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을 엄격히 지킨 결과라는 견해가 맞선다.
애당초 판사의 유·무죄 판단 재량을 폭넓게 허용한 명예훼손 사건의 법리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 전형적 주장과 다른 판단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차명계좌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처럼 강연해 실형을 선고받은 조현오 전 경찰청장.
그는 발언 내용이 허위라고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고 강연도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었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 전 청장은 오히려 국론을 분열시켜놓고 변명으로 일관했다는 이유로 항소심에서 보석이 취소돼 재수감됐다.
조 전 청장의 주장은 명예훼손 혐의자들의 전형적인 항변과 같았다. 이런 주장을 인정할 경우 무죄를 선고하도록 대법원이 정해놨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A재판부는 피고인의 주장을 비교적 잘 받아들인다. 자치구 재향군인회 회장 선거에서 벌어진 명예훼손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한 피고인에 대해 1심은 "공공의 이익과 무관한 허위 사실을 적시해 명예훼손죄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A재판부는 반대로 "피고인이 허위라는 인식 없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사항을 적시했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A재판부의 판결문에는 "선해(善解)할 여지도 있다", "속단하기 부족하다" 등의 에두른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재경지검 한 검사는 "A재판부가 조현오 전 청장의 항소심을 맡았다면 무죄를 선고했을 수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균형 무너진 형사재판 우려 = 최근 '나는 꼼수다' 패널들이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일부 정치인이 '감성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는 유죄 요건이 엄격한 명예훼손 사건의 법리를 이해하지 못한 비판이라는 분석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대법원 판례 등에 따르면 사실 적시가 아닌 의견 표명은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없다. 일부 거짓이 있어도 전체적으로 진실하면 무죄다.
허위 사실을 적시했더라도 본인이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경우 역시 위법성이 없다.
판례가 이렇다 보니 명예훼손 사건은 판사가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결할 여지가 비교적 크다.어느 정도면 전체적으로 진실한 것인지,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은 판단하기 나름이다.
법원 관계자는 "A재판부는 검찰이 입증 책임을 부담하는 형사재판의 기본 원리를 (다른 재판부보다) 엄격하게 적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같은 유형의 사건을 두고 재판부간 유·무죄나 양형 차이가 큰 것은 어쨌든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법원 안팎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법치주의의 안정성과 형평성을 고려하면 부정적인 현상"이라며 "민사소송 승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판사는 "법관의 독립을 보장하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그래도 형사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이라고 말했다.





